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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y 12. 2022

WHO AM I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살아가다 보면 정말 모순되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질 때가 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 자꾸만 내 공간을 파고드는 사람들에게 질려 차라리 이럴 바에 혼자 있는 것이 덜 외롭겠다 싶은 마음. 그걸 교과서에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런 마음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선을 긋고 벽을 쌓는데 어떤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벽을 단단히 쌓은 사람들을 요즘은 개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사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두에게 선을 긋는다. 내가 먼저 털어놓기 전에 빨리 이야기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들이 싫다. 내 꿈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겠다며 1%의 가능성보단 99%의 불가능을 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내 성향을 짐작하는 사람들이 싫다. 진짜 내 모습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너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그리고 그렇게 선을 그어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내 자신도 싫다. 


이유를 물으면 ‘귀찮으니까’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솔직히는 ‘상처 받기 싫어서’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기대를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않고,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고, 나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매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개인주의자 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속하게 되었다. 


운이 좋다. 사람들은 그 말을 내게 정말 많이 했다. 너 참 운 좋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했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정말 가지고 싶은 거 하나 갖겠다고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그렇게 아둥바둥,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할까 말까. 그럼에도 결론은 늘 포기할 수 없다 였기에 마음 편히 쉬어 본 날도 없었고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너무나 불안했다. 그런 내게 운이 좋다. 모든 것이 운이었다 말하는 그 말은 나를 정말 아프게 찔렀다.


결과가 아닌 노력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었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믿고 싶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지금 대학교. 내가 받은 수많은 성적표 그 어디에도 과정과 노력에 대한 평가는 없었고 사람들은 나의 결과에만 관심을 보였다. 내 노력은 나 혼자만 알아도 괜찮다고, 나 혼자서만 떳떳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저런 애가’, ‘너는 안된다, 포기해라’그런 말들로 또 다시 나를 아프게 찔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 난 한국에서 보다 훨씬 편하게 살고 있다. 훨씬 여유롭고 스트레스도 적고 과목 당 과제는 한국보다 많아도 과목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과제가 정말 적게 느껴진다. 부모님께 용돈 받아 쓰는 주제에 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으며 간만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세 끼를 거의 혼자 해결한다. 혼자 먹는 밥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보다 훨씬 맛이 덜하다. 마냥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다가 갑작스럽게 소름 끼치는 외로움이 나를 덮쳐버린다. 사람들 틈에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빛 바랜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친구들과 만나더라도 늘 서로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즐겁기는 하지만 이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제, 한국과 다른 방식의 과제가 주어진다. 한국에서 였다면 정말 즐겁게 했을 것 같다. 정말. 직접 이벤트를 개최하고 잡지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돌려 예측을 하는 그런 과제들. 그런데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알아듣는 것도 벅찬 내가 그룹활동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망쳐버릴까 선뜻 먼저 하겠다고 말할 수 없어서, 자꾸만 위축이 되어 도저히 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서 그렇게 얼굴은 익혔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어쨌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야 해서. 어려운 강의보다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그룹활동이 정말 힘들었다. 내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없을 때 정말 답답하고 속상했다. 다른 건 다 적응할 수 있어도 이 비참한 기분만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에 대해 잘 몰라줄 때, 가장 속상한 말을 나에게 할 때, 그 사람에게조차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을 때, 그냥 맥이 빠져버려 누구에게 무엇을 털어놓아야 할지 모르겠을 때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막막했다. 

한국에 돌아가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도 없다. 그러다 혼자가 익숙해진 어느 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지고 싫어질까 봐 그게 더 두렵다. 나는 행복도, 인간관계도 모두 발버둥치며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속 시원하게 뱉고 보니 참 이상하다. 나는 늘 친구들과 내가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행복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나의 행복에 죄책감을 느끼며 어쩌면 스스로를 더 힘들게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정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힘들기 위해 애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상황이라면 내 스스로를 풀어주고 싶다. 운이 좋다는 말도, 행복해 보인다는 말도 내게 과분한 말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이 감정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는 만큼 어쩌면 나 자신과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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