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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y 23. 2022

철이 든다는 건

약속할게요

엄마와의 여행, 거기에 홈파티까지 최근 열흘 정도 계속 긴장 상태였던 데다가 마음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오늘 정말 오랜만에 마음 놓고 푹 잤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이번 달 생활비는 얼마를 보내주면 되냐는 연락이 와 있었다.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친구들의 SNS에는 온통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드렸다는 글들이 올라왔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는 어떤 선물을 드릴지 고민이라는 메시지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나는 카네이션은 달아드리지 못할 망정, 한 번 안아드리며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할 망정 생활비를 보내 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진짜 불효녀가 따로 없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월세 내는 날과 생활비 보내 달라고 하는 날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일주일 전쯤 생활비를 받은 것 같은데 벌써 4주가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하필 오늘이 어버이날이라 더 죄송해진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돈이 들지 않았을 텐데, 직접 얼굴을 보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조금 더 좋은 선물을 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이런 것들도 다 핑계라는 것을 안다. 나는 한국에 있었을 때도 나보다 부모님이 먼저였던 적이 없다. 나를 위한 30만 원짜리 비행기표는 구입했으면서 아빠를 위한 30만 원짜리 선물은 고민 끝에 결국 사지 못했다. 아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내게 30만 원은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건 잔뜩, 해야 할 일도 잔뜩. 지금까지 너무 나만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 것 전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은 것, 부모님과 함께 해야 할 것들은 없었다. 스무 번의 어버이날을 맞으며 몇 번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몇 장의 편지를 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 뿐인 효도였던 것 같다. 늘 내가 우선이었던 부모님과는 달리 난 내가 더 중요했다. 


엄마의 손 끝에 매달려 걷던 꼬마가, 지하철 손잡이를 이제는 잡을 수 있다며 까치발을 들고 신나서 자랑하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만큼 성장했고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출가하여 혼자 생활해보니 사람 하나 키우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당연하면서도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월세, 핸드폰 요금, 식비, 교통비 기본적인 의식주에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몰랐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물가 비싼 호주에서 소주를 마시려면 식사 한 끼와 맞먹는 15달러는 줘야 한다. 알코올을 거부하는 유전자 때문에 나는 한 잔만 마셔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빨개졌고 주량을 조금이라도 넘겨 마시는 날에는 온몸이 간지러웠다. 덕분에 자연스레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정말 필요한 것들만 샀는데도 돈이 이렇게 많이 든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공개적으로 약속할게요.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여행지를 찾아서 꼭 모시고 가겠다고. 우리 네 명 행복한 추억 언젠가 꼭 만들어드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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