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게 객관적인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무심결에 푹하고 찔려버릴 때가 온다.
화를 내기도 그렇고 화를 안내기도 그런 속상한 말! 속상하다고 말하면 예민하고 네가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 같은 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다.
순간 '훅' 하고 들어 온 말에 대한 대응을 그 당시 내가 잘했다면 기억이 안 남겠지만 혹여 그 말에 대한 대답을 못했거나 방어를 못했을 땐 어김없이 후회가 남는 것이다.
'나 상처받았어'라고 느낄 때면 이미 늦었다.
스스로 내 가슴에 대한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하는데 그 상처 치료법을 몇 가지 나열한다면
- 그 사람이 잘 몰라서 그런 거야. 남에 말은 무시하자. (외면)
-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상처받나봐 (자존감을 높이자)
-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봐 (좀더 실력향상을 하자)
- 괜찮아, 그런 말을 상대가 할 수도 있어. (강해지자)
뭐 이런 말들로 자기 위로를 한다. 계속해서 남들의 말에 나를 성찰 해야 한다는 사실에 딜레마에 빠진다. 그렇게 남들이 내놓은 상처는 칼로 푹 쑤셔 놓은 깊은 상처도, 총으로 맞아 당장 죽을 것 같은 상처도 아니다. 겁나 기분 나빴거나 피가 철철 흘렀다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 같은 시늉이라도 하며 맞서 싸웠을지도 모른다. '네가 잘못했다고 말해! 너 그거 네가 잘못한 거야!'라는 대답을 들을때 까지.
하지만 생활 속에서 오는 상처들은 책 읽다가 스쳐서 생긴 종이 베임 같고 맞은편에서 급하게 걸어오는 사람이 어깨를 툭하고 친 것과 같이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는 상처들이다.
어쩌면 급하게 달려오던 사람은 뒤돌아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내가 바쁘니까 네가 이해하세요'라는 말을 전달하려고 할 수도 책 속에 하얀 종이는 '나를 보려면 그 정도도 못 견뎌? 감내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차라리 크게 한방쳐! 똑같이 한방 날려 줄테니 ' 나는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폭탄같기도 했고 누군가가 티나게 나를 공격할땐 똑같이 갚아주겠다고 칼을 갈기도 했다.
그렇게 모여버린 상처가 한두 해가 아니라 자그마치 10년은 족히 넘겨 버린 듯하다. 이런 기간은 '내가 언제부터 상처받았어' 하고 남겨둔 기억이 아니라 당돌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버리던 20대를 넘겨서부터인 것 같다. 30대가 무엇인지 어른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20대의 당돌함을 서서히 털어내고 있었다. 화가 나도 상대에게 화내지 않는 것. 두리뭉실하게 넘겨버리는 것으로 그것이 어른임이 아닐까 기준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20대의 솔직함을 잃어버린 것은 상대 기분 나쁘게 하지 않기를 포함해서. 사람 많은 곳에서 큰소리로 소리치지 않기, 욱하지 않기, 시비 걸지 않기, 남들 보는 앞에서 울지 않기 등등.. 인 것 같다
내가 왜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30대 중반을 넘어 달려고 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내 속에 감정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숨기는 것일 테다. 좋은 것은 좋다고 방방 뛰거나 싫은 것은 싫다고 그 자리에서 울고 불고 바닥에 드러눕기를 시전 하지 않을 뿐. 일하기 싫다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징징대지도 남편 월급으로 산 신발이 좋다고 신발을 들고 방방 뛰지도 않듯이. 늘 일상은 다이나믹 했지만 항상 평온한 하루인 듯 조용한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렇게 감정을 조금씩 숨겨가는 것이 어른이 아닐까? 그래. 싫은 소리도 잘 참아오고 있으니 나는 점잖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다. '
[ 소소한 오늘의 일기 ]
오늘 어떤 손님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손님 : 문 필름 시공에 85만 원이라고 하셨죠. 그거 계약하려고요
나 : 제가 85만 원이라고 했나요? 문자나 전화 내역이 있으신가요? 제 핸드폰에는 고객님의 통화기록이나 문자 내용이 없어서요.
손님 : 뭐라는 거야. 나한테 당신 연락처가 있고. 당신이 나한테 말한 거 기억 안 나?
나 : 제가 기록을 5년 전에 것도 기록하고 삭제하지 않는데 고객님의 문의 내역이 없습니다. 시공 견적 문의가 많아서요. 사실 고객님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데.. 연락 기록이 있으시면 보여주시겠어요?
손님 : 아~ 뭐라는 거야. 내가 작년에 여기 와서 물어보고 갔다가 이제 시공하려고 온 건데.
[찾아보니 고객폰에도 나랑 이야기 한 내용이 없다. 전화번호는 전화부에 저장되어 있는 상황이 오긴 왔었나보다. 작년에 한번 나를 봐놓고 내가 자기를 알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손님 : 아 뭐라는 거야! 그때는 85만 원이라고 해놓고 정말! 계약하려고 내가 이곳 까지 왔잖아! 그때는 된다고 해놓고 ㅇㅎㅇ미러 미 럼ㄴ얾 넒 ㅇ러나ㅣ얼. 다른 가게 가야겠다.
그렇게 매일매일 상처인 듯. 상처 아닌 말을 듣는다. 어디가 잘못됐냐고?
나는 왜 모르는 사람에게 '뭐라는 거야?'라는 말을 3번이나 들어야 하지? 실제로 '뭐라는 거야.'라는 말은 우리집에서 남편과 크게 싸울때나 듣는말이다. '당신 무슨말인지 모르겠고 내 말 들어.' 할때 쓰는말 아닌가? 정말 내 말을 들을 가치도 없는 말처럼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손님과 맞짱이라도 뜨고 싶다.
'뭐라는지 모르겠으면 다른 가게 가서 알아보세요. 그 썩어빠진 문 교체해야 될 거예요.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정중하게 말해야 했고 어른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야 했다. 이 정도 쯤이면 별일 아닌 양 넘겨야 하고 남의 짜증도 받아주어야 한다.
" 나는 자신감은 넘치지만 되돌아보니 자존감은 약한 사람이에요 "라고 글쓰기 모임 글로 나를 성찰하는 글을 적었다. 내가 자신감이 얼마나 뿜 뿜 하는지 빠져서는 안 될 내용이라 그 글에 자신감 한 스푼을 넣었고 자존감이 어떻게 약한 사람인지 자존감 빠진 내 모습도 한 스푼 담았다. 그렇게 글이 완성되고 모임 게시판에 그 글을 남겼을 때 글이 그러하듯 위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사이 한분은 "당신은 힘숨찐 이네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오잉. 힘숨찐이 뭐지?'
네이버 창에 바로 검색을 했더니 '힘을 숨기고 있는 찐따'라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도 검색하고 저렇게도 검색해서 네이버 지식사전에 없는 신조어의 뜻을 여러 모로 모아 보았더니 힘을 숨긴 능력자는 맞지만 그 능력자는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찐따'가 아닌가.. 흠.. 좋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찐따' 이기는 싫다. 왜냐면 나는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적어도 남들보다 대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중간' 은 되었으면 좋겠다.
뭔가 찝찝한 상황.
"검색해보니 찐따네요. 긴 피드백 감사합니다ㅎㅎ"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을 달기 전까지 내 마음에는 한동안 요동이 쳤었다.
' 능력자라고 하고 싶으셨을 거야. 그 뜻을 잘 몰라서 그러셨을 거야. 그것도 아니면 찐따 정도는 뭐 그렇게 나쁜 말도 아니야! 자기 위로를 해본다' 그 뒤 그 밑에 달린 댓글에 그분은 그런 뜻이 있는지 몰랐다고 하시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머! 그래서 나를 비하하려고 하신 건 아니셨어! 다행이다. '
기분 좋게 "괜찮습니다."라고 댓글을 달고 그 밑에 또 하나의 댓글이 달렸다.
정확한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 이래서 어영부영 아는 것이 문제다. 사과드린다.라는 말씀이었는데.. 한 번의 사과는 [그래, 내가 잘못 말했네.] 인정이거나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옛다 사과해준다.]라고 형식 치레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본인의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실생활에서 몇 년 만의 일인지 기억도 안 난다.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에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오는 말에 걸러서 잘 알아 듣는것이 한편으론 숙제같다.
상처를 준 사람이 진정으로 '그래! 이건 내가 잘못한 거야'라고 인정을 함으로써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사과를 통해 모든것은 평온해 졌다.
그것도 이해 못 하는 애냐? 그런 눈빛과 뉘앙스에서 나는 얼마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가!
한편으로 우리는 얼마나 당당했는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 그래, 말실수 좀 할 수도 있지'
계속해서 누군가의 실수조차 화를 내기도, 안내기도 이상한 상황들이 반복되어 쌓여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다독거릴 필요가 없어졌고 이것이 진정한 평온이라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