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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Jun 21. 2024

농식품 산업 - 왜 성장이 더딘가

두들겨 맞아도 일어날 용기가 있는가


자신이 아는 것을 아는 만큼 설명하는 것도 큰 재주이고, 그만큼 하고 살아도 충분히 잘 산다. 


다른 말로, 잘 모르는 것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 실제로 뛰는 사람들에 조언을 하는 사람이 실천하는 자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 


한편으로, 앞서가는 자의 흠을 잡는 사람은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관심을 몰아줄 뿐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권투와 씨름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통 넘어뜨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것이 첫 번째 인식이리라.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승리자다.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졌을 때, 일어서는 자에게 승리를 선언하며, 씨름은 버티는 자에게 승리를 선언해 준다. 상대는 흔들고 때리며 괴롭힌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면 호적수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호적수'. 사람들은 왜 어설프게 아는 것을 들이밀어 안다고 주장할까. 상황의 단편을 보고 전체를 안다고 할까. 그것은 자신의 지향과 목표에 대어 보는 행동 만으로도, '호적수'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격이 같다고 보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호적수'의 '호'는 '좋을 호(好)'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글자 모양이 그렇다. 보통 학생들에게 자신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살펴보라고 한다. 아무 일도 안 생기고 있으면, 내가 너무 고립되어 있거나 너무 못나서라고 생각하면 보통 맞다고 했다. 누군가 대항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권투 챔피언의 '타이틀 디펜딩' 같은 것이다. 


성장이 늘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그런데, 또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같은 적수와 오랫동안 싸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볼 때 하찮은 적수가 옆에서 괴롭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자리는 피해야 한다. 그것은 그 적수의 사회적 경제적 위상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질 의미이기 때문이다. '호적수'는 결국 친구가 될 운명이므로, 시시한 무기로 싸우면 오히려 실례가 된다. 최선을 다해 싸워 줘야 한다. 


적수가 종종 바뀐다면 아주 좋은 것이다. 그건 내가 성장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내가 명성이 생긴다는 의미다. 나의 성장과 함께 적수가 바뀐다. 


그런데, 적수가 꼭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지'와 싸우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기는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 '의지'다. 속어로 '흑화 된 의지'를 가진 자는 만나서 싸우면 안 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립이고 무시다. '흑화 된 의지'란 어떤 상황을 한편에서만 보고 해석하여 강조하여 동조자를 끌어모으는 행태를 보여 준다. 


농식품 산업계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나 팽배하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것이고. 시야의 범주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 일이 많다. 어느 부분도 전체의 관점을 통합하여 보지 않는 한 늘 맞을 리가 없고, 이해관계자가 다양하고 다수여서 늘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따라서, 어떤 단편적인 접근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그래서 어느 논의도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공무원으로서도 인기 없는 보직이고, 학자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식과 경험의 규모에 질리기 일쑤다. 학생으로서도 진로가 막막한 것이 당연하고, 사업을 하는 경영자로서도 개별 판매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과 보조금 등 간접 수익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농식품업은 국가, 세계 수준의 수요는 엄청나게 크지만, 기반 산업으로서 부가가치를 낮게 책정하는 것은 정책의 기조다. 따라서, 어느 곳이든 산업 최종 단계의 초과 이익을 정책적으로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가진 곳이 선진국이다. 


농식품 정책 중 난이도 최상의 것 중에 식량 정책이 있다. 가장 필수적인데, 가장 관여자가 많으며, 가장 저소득층에 위치하면서도, 국가적 안위에 가장 직접적이고, 국제적으로 정치적 요소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결정 요소가 너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으로 응대하는데, 기업은 투자와 투기로 응대한다. 그런데, 변화는 끊임없다. 기후는 변화하며, 자원은 고갈되고, 타산업은 자원 경합을 하며,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는 끝이 없다. 생산은 주기적인데 생산량의 변화는 완만하다. 저장과 유통은 복잡하며, 그 이면에 생산과 소비 간 시공간적 격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체화하고 녹여낸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야 제대로 의논이 되는 것이 자원과 농식품, 기후 등의 영역에 해당한다. 다들 정책과 지식 소비자로서는 관여자이나, 코끼리 코만 만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작 코끼리 그림을 그리는 자는 아주 소수일 것이다. 


혹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믿고 맡기기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의 수직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순환보직제, 집중 연구를 불가능하게 하는 공모식 연구 개발 체계, 직불금에 길들여져 생산 유통 시스템의 전환을 꺼려하는 이해관계자, 그리고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위기감. 


위기와 단점을 까발려 부르짖는 자는 잃을 게 없지만, 혁신과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잃을 것이 많은 것이 '대중의 심리학'이며, 그 실체를 알고 수요해야 할 정보의 흐름은 왜곡되고 늘 반응이 늦다.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과 선을 바라지만, 늘 선택의 합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다. 일어나야 할 것들이 모두 일어난 '머피의 법칙'을 모두 경험한 뒤에야, 조금씩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 사람이나 사회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기다림이 없는 사회는 늘 위기이며, 달콤한 사탕에 길들여진 아이는 '무보상의 고통'에 울고 짜증 내며, 철학 없는 교육은 결국 모두를 부패하게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야가 밖에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아끼기보다 남의 인생에 더 관심이 많고, 내 걱정보다 세상 걱정에 더 열심이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인생의 선택에 대한 교훈을 들은 적이 있다. 최고의 승자는 늘, 'Tit-for-tat' 같은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잘하면 잘해 주고, 못하면 못 해 주면 된다. 그리고 잘못 대하면 무시하면 된다. 남에게 그것을 떠벌리고 다닐 필요도 없고, 잘못한 자를 함부로 용서해도 안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전제가 이 게임에 남겨져 있었다. 처음 시작은 '내가 먼저 주는 것'. 그것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보고 게임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시사점을 남겨 놓았다. 혁신은 늘 혁명적이며, 이해하기 힘들다. 과학자들은 비판을 늘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어느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내 얇은 지식으로 비판을 받아 억울할 수도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을 하느니, 묵묵히 연구하고 개발하며, 그 선택지는 늘 상대에게 남겨 놓는다. 너무 많은 추론과 가정은 늘 음모론을 낳으며, 그 음모론의 대가는 가장 좋아서, '아무 일 없음'. 그리고 그러한 무대책의 끝은 절망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인내'다. 그 수없이 무너지는 나의 기대, 그리고 부질없이 낭비되는 것 같은 연구비, 한없이 갉아먹히는 나의 호주머니. 그런데, 학생들의 미소는 천진난만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저 학생들이 내가 어떻게 자신들의 미소를 지켜주는 지를 정말 이해할 때가 있다면, 내 자리에 저 학생들이 있겠지. 그래서 가끔 말해 준다. 내가 이번 일로 얼마의 손해를 봤는지, 물자가 얼마나 쓰였는지. 그리고 꼭 남겨 준다. 그래서 얼마의 진보가 생겼을까. 너는 무엇을 배웠는가. 


문제는 늘 그렇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은 늘 말씀하셨다. 


'내 탓이오'.


문제는 늘 안에 있는 것. 밖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 힘을 받쳐주는 '정신의 맷집' - 속어로 '멘털'이라고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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