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국제선 비행기. 승객 두 명이 좌석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있다며 동료 승무원이 급히 나를 찾았다. 장거리 비행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에도 경험을 했기에 동료 승무원을 안심시킨 후 나도 물 한잔을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비행기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다.
잠시 후 해당 승객들에게 찾아가 사무장임을 밝힌 뒤 불편사항을 물었다. 다툼의 원인은 다름아닌 좌석 젖히기(Recline). 앞 좌석 승객은 좌석을 뒤로 젖히고 싶은데 뒷좌석 승객이 방해를 한단다. 식사 때야 당연히 원위치 해야겠지만 그 외 시간에는 좌석을 눕히든 세우든 자기 권리가 아니냐며 화를 내신다. 공감을 표시하며 화도 가라 앉힐 겸 주스 한 잔을 권했다.
이번에는 시원한 물 한 잔을 들고 뒷좌석 승객에게 갔다. 승객은 “앞 승객이 좌석을 뒤로 젖히면 다리를 펴기 힘들다. 다리가 불편한 상태로 10시간이 넘게 어떻게 가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좌석을 변경해 주든지, 앞 승객이 좌석을 젖히지 못하게 하든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사실 규정에 따르면 식사시간 외에는 앞 좌석 승객이 뒤로 좌석을 젖히는 것에 대해 승무원이 뭐라고 할 입장이 못된다. 한 분이라도 자리를 옮겨 드리면 좋겠지만 좌석이 꽉 찬 상태로 운행되고 있어 자리 변경도 여의치 않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마침 눈이 마주친 한 20대 여성이 살짝 웃어준다. 그 웃음의 의미는 나의 고민에 공감하고 있다는 표시일까? 조심스레 다가가 상황을 설명한 후 좌석 변경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바꿔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본인은 인천공항 도착할 때까지 기내 AVOD 영화를 볼 것이기 때문에 좌석을 뒤로 젖힐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수십번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후 좌석을 뒤로 젖히려던 승객과 좌석을 변경해줬다. 그리고 담당 승무원들에게 비행 중 세 분에게 다른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이후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마침 우리 회사가 만든 공익 광고인 ‘글로벌 에티켓’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해외 여행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켜야 할 에티켓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한 광고였다. 광고를 보며 문득 ‘다음에는 비행 중 지켜야 할 기내 에티켓을 주제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 좌석에 발 올려놓지 말기, 다른 승객들 쉴 때 창문 덮개 열지 말기, 휴대전화 매너모드로 바꾸기, 화장실 깨끗하게 쓰기 등 담을 내용이 참 많은데…. 참! 좌석 젖히는 걸로 서로 다투지 말기도 추가하면 좋겠다.
* 비행 중 좌석 규정은 '이 착륙 시간과 식사 시간에는 원 위치, 그 외 경우에는 좌석 점유 승객 맘대로'다. 식사 시간 외에도 앞 좌석 승객에게 좌석 원위치를 요구하는 뒷 좌석 승객들이 종종 있다. 우선, (뒷 좌석) 승객 요청대로, (뒷 좌석)승객 대신 앞 좌석 승객에게 원위치를 조심스럽게 부탁해 보지만 승객이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 좌석을 젖히느냐 원위치 하느냐는 앞 좌석 승객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뒷 좌석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며 "손님도 뒤로 젖히시면 좀 더 편하게 가실 수 있습니다"고 안내한다. 그치만 본인은 뒷 좌석 승객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앞 좌석 승객의 비매너를 탓한다. 서로가 조금만 더 배려해 주면 좋을 텐데....이쪽 편도, 저쪽 편도 들 수 없는 참 애매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