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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Jun 05. 2020

# 승무원과 '코로나'

- 코로나가 바꾼 비행 풍경 -

사진 제공 - 구글님 / 사무장님, 선배님, 후배님, 형, 누나들....그리고 구글님....사진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낀다. 그리고 비행 가방에 여분의 마스크가 있는지 확인한다. 장거리 비행을 간다면 가방에 서너 개의 마스크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텅 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착찹다. 타는 사람이 없으니 버스도 쌩쌩 달린다.  공항에 도착지만 역시 사람이 없다. 행을 가는사람, 여행을 오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떠나보내고 맞이하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활기찬 공항이 너무 그립다.


예전에는 비행을 갈 때 회사에 먼저 들렸다. 회사에서 음주 검사를 하고 동료 승무원들을 만나 사무장이 주관하는 비행 브리핑에 참여했다. 브리핑이 끝나면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 비행을 시작했다.


이제는 공항으로 바로 출근한다. 음주 검사가 없어졌다. 음주 측정을 할 때 '훅'하고 숨을 불어야 하는데 이때 침이 튈 가능성이 있다. 이 침이 동료 승무원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당분간 중지됐다.


게이트로 가서 동료 승무원을 만난다. 사무장이 사무실에서 받아온 가운과 마스크를 나눠준다. 간단하게 비행 브리핑을 하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 체온을 잰다. 37.5도가 넘으면 회사에 보고해야 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오늘 비행은 갈 수 없다.


비행기를 타기 전 장갑을 낀다. 고글을 써도 된다. 마스크에 고글까지 쓰면 마스크 입김 때문에 눈 앞이 흐려진다. 고글은 보통 승객 탑승 때 쓴다.


승객 탑승이 시작됐다. 승객들도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마스크와 장갑은 애교 수준, 얼굴의 1/3을 가리는 수영 안경, 얼굴의 반 이상을 덮은 '쉴드 마스크', 심지어는 어떤 바이러스도 내 몸에 묻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TV에서나 볼 수 있는, 의료진이 입는 방호복을 입고 타는 승객들도 자주 목격된다.


승객이 승무원을 호출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대세인데 왜 자기 옆자리를 비워놓지 않느냐고 불평하신다. 국제선 비행은 승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카운터에서는 승객 간 충분한 거리를 두고 좌석을 배정한다. 국제선은 1명의 승객이 3자리를 차지하고도 좌석에 여유가 있다.


밖으로 못 나가니 안으로 돌아다닌다. 제주 노선은 만석에 가깝다. 거리 두기를 해드리고 싶어도 할 수 가없다.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을 수밖에 없다. 기내는 생각보다 안전하다. 비행이 끝나면 등에 분무기를 멘 아저씨가 올라와 기내 구석구석에 소독약을 뿌린다.


기내 서비스는 축소됐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경우 예전에는 3 종류의 식사가 실렸다. 비빔밥, 소고기, 닭고기.... 지금은 2종류만 실린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경우, 와인은 4종에서 2종으로 줄었다. 종류가 많으면 그만큼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 대화가 길어질 수 록 침이 튈 가능성이 높다. 승무원도 승객도 서로 부담스럽다.


비행 중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승객도 있다. 서너 시간은 참을 수 있겠지만 열 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은 어떻게 견디는지..... 비행기 타기 전 많이 먹고 탔겠지? 속으로 생각해 본다. 그래도 승무원은 비행기 타는 게 일상이니 잘 먹는다. 승무원들도 밥을 먹을 땐 거리 두기를 한다. 예전에는 같이 먹고, 맛있는 건 나눠 먹기도 했는데...


밥 먹을 때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마스크를 쓰고 비행을 하다 보니 실제 얼굴을 보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보고 서로 깜짝 놀란다. 눈빛이 '너도 마스크 미인 (혹은 미남) 이구나'하는 것 같다.


지난번 호텔 복도에서 승무원과 마주쳤는데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걸 보니 같이 비행을 온 승무원인 것 같은데, '누구시죠?'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4개월을 함께 한 팀원이었다. 그동안 마스크 쓴 얼굴만 봤더니 얼굴을 잊어버렸다. 팀원도 못 알아보냐고 그녀에게 혼났다.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이 항공과 여행업계일 것이다. 앞으로 4달 동안 비행을 쉰다. 이미 2달을 쉬었는데. 이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4개월 후를 기약할 수 없다. 올해의 반을 쉬는 셈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 치료약이 나와 비행이 정상화돼야 할 텐데.


각자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승무원은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멋지다. 그날을 대비해 유니폼을 구김없이 다려놓은다. 구두도...삐까뻔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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