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한국인에게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걸까. 휴가 기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딘가로 떠난다. 몇 년째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에겐 혹시 이유가 있는지 묻는다. 마치 사람은 누구나 여행을 좋아한다는 명제가 있는 것처럼.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하고 국내여행은 수시로 다녀야 워라밸과 풍류를 아는 사람 축에 낄 수 있을 것 같다.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다.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라고 늠름하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 아쉽다. 여행을 좋아했었고 지금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떠날 동력이 없어졌다. 장소를 물색하고 교통편을 예약할 의욕과 열정이 없다. 그 골치 아픈 과정을 예전엔 다 어떻게 했을까.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떠난 곳에서 한 시도 빠짐없이 맹렬한 소비자가 되었던 것도 꺼림칙하다. 나는 소비자가 아닌 다른 정체성으로 더 오래 존재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왜 이렇게 변했을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육식을 멀리하게 된 이유도 크다. 전통을 자랑하는 현지 특산물은 대개 육류다. 동물을 먹고 싶은 욕망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안 먹자니 아쉽다. 답답한 비행기에 갇혀 몇 시간을 날아왔는데 괜히 손해 보는 기분. 먹는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산뜻하지 못하다.
스마트폰의 보급도 괜한 아쉬움을 더한다. 부끄럽지만 라떼는, 그러니까 내가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때는 반드시 현지인과 부딪쳐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공통의 언어가 없어도 손짓 발짓보다는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물론 그 덕분에 더 많은 편리를 누리게 되었으니 발전된 기술을 쓰지 않을 깡도 없다.
여행을 꺼리게 된 이유는 많고 많지만 여행으로 인해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말할 수 있다. 집에 도착한 순간. 짐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든, 바닥이든, 내 집의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내 몸을 아무렇게나 부려 놓은 그 순간. 나는 가장 큰 행복을 만끽한다. 오, 내 집에 왔다!
그 집 자체가 나의 모국이 아닌 때도 있었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월세방인 경우도 있었지만 정말 그러했다. 마치 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위해 떠났던 것처럼. 내 여행의 백미는 그 순간이었다.
어쩌면 사람들도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미 내 집의 소중함을 신기하리만큼 매일 인식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홀린 듯 도쿄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꽉 채운 만 4년 만의 해외여행이다. 이번엔 무엇을 느끼고 돌아오게 될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에는, 이번에도 글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