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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oult Feb 19. 2016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 10

2009년 영국, 크리스마스 1위 곡은 해체한 밴드의 랩메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모두에게 축복이 되어야 할 크리스마스에 욕으로 도배된 곡, 심지어 1992년 싱글이 1위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2009년 영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영미권은  오래전부터 앨범과 싱글 순위 차트가 따로 있잖아요. 순위를 결정하는 건 전화, 인터넷 투표가 아닌 순수 판매량을 기준으로 형성되고요. 보통 크리스마스가 낀 주의 직전 일요일에 발표하는 싱글 1위 곡을 크리스마스 넘버원(List of UK Singles Chart Christmas number ones)이라고 부르는데, 크리스마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와 더불어 소비 심리도 상승해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2004년 9월부터 방송된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팩터(The X Factor)의 기획자 겸 심사의원 그리고 98년 결성된 아일랜드 5인조 그룹 웨스트라이프(Westlife)와 싱어송라이터 개러스 게이츠(Gareth Gates)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이 2005년부터 엑스팩터의 우승자의 싱글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매해 이후 2008년까지 같은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넘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한두 번이라고 매년 크리스마스에 사이먼 코웰의 거대한 힘을 등에 업은 엑스팩터 우승자의 노래를 듣는다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식상할 수밖에 없겠죠.

RATM, 잭 드 라 로차 -  팀 커머퍼드 - 브래드 윌크 - 톰 모렐로

2009년, 여기저기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졌고  그중 몰터 부부(존 몰터, 트레이시 몰터)에 의해 혁명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1위 곡으로 만들자' 캠페인을 벌인 것이죠.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볼까요?


당시 엑스펙터의 우승자인 조 맥엘더리(Joe McElderry)의 인기가 상당해서, '캠페인은 무슨... 잠깐 저러다 말겠지' 분위기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문제는 그놈의 독설!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이 '바보 같고 저급한 캠페인'이라는 의견을 밝히자 이 한마디가 기폭제 역할을 해 수많은 사람과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힘을 모아 90만 네티즌이 참여했고, 결과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도 될 만큼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는데, 생각해 보죠. 1992년 발표한 RATM의 싱글곡과 해마다 당연하게 1위에 오른 엑스팩터 우승자의 따끈따끈한 신곡 대결. 이것은 결코 단순한 곡 대결이 아니었죠.



RATM이 어떤 밴드인지 알아볼까요? 

90년대 초반부터 하드코어의 흐름을 이끌었던 밴드로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그리고 RATM 등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런 디엠씨(Run D.M.C.)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를 비롯해 랩과 록의 결합을 시도했던 선구 뮤지션들이 있었고요.

RATM의 데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1992)의 커버를 보시면 1963년 6월 11일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분신하는 베트남 승녀의 충격적인 사진으로 실제 상황을 AP뉴스 사진기자 말콤 브라운(Malcolm Browne, 1931~2012)이 찍은 것입니다. 앨범 커버에서도 보시듯 이들이 실천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보입니다.


레드 제플린의 고전 'Kashmir'의 멜로디를 샘플링한 'Wake up'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과 말콤 엑스(Malcolm X) 등 흑인운동가를 주제로 했는데, 진지한 내용임에도 영화 '매트릭스' 사운드 트랙으로 쓰여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번 트랙 'Freedom'은 FBI 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인권 운동가 레오너드 펠티어(Leonard Peltier)를 소재로 하였으며, 이후 2집은 티벳의 독립을, 3집은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인권운동가 무미아 아부 자말(Mumia Abu-Jamal)에 대한 석방운동 그리고 뉴욕 증권거래소의 셧다운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3집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 (1999)의 5번 트랙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 게릴라 공연을 하는 모습과 빈부 격차에 대한 퀴즈쇼를 내용으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이 맡았던 뮤직 비디오입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으로 유명하고요.


이들은 적극적인 행동주의자이고 매우 정치적이며 급진적 좌파로 꼽히는데,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의 아버지가 영국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벌인 케냐의 게릴라(테러 단체 Mau Mau)였고, 

- 톰의 큰아버지는 케냐의 초대 대통령인 Jomo Kenyatta 였다고 - 어머니 또한 검열제도에 반대하는 사회단체에 몸담았던 영향으로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앨범은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발매를 하였죠. 이것을 두고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았고요. 이러한 의문에 보컬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대형 출판사를 통해 책이 팔린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라고 역설했습니다.


2000년 가을 보컬 잭 드 라 로차가 음악적, 정치적 이상이 맞지 않아 탈퇴하고, 사운드가든(Soundgarden, 시애틀 그런지 4인방 중 하나)의 보컬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이 만나 오디오슬래이브(Audioslave)라는 밴드 명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합니다. 랩 메탈과 그런지의 조합이 뭔가 안 어울리는데, 1집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2, 3집은 뒷심이 약간 부족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와 함께 2007년 해체합니다. 이후 RATM은 재결성해 최근 활동으로는 2010년 런던의 핀즈버리 공원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DVD와 블루레이로 제작, 2015년에  발매(Live at Finsbury Park)했습니다.



RATM을 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톰 모렐로는 현대판 '지미 헨드릭스'라고 불릴 만큼 연주 실력도 갖추었지만 '하버드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져 특히 유명한데, 농담으로 '내가 하버드를 졸업해 득을 본 것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번쯤 생각해야 할 것이, 학력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죠. 학력이 우월하다고 남들보다 밥을 한 끼 더 먹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뜻한 바가 있고 그걸 이루려고 노력할 때 '학력'이 '신뢰'가 되어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거예요.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작은 긍정적 실천들이 모이면 분명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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