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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후 3달간 있었던 일들

내 세상은 책을 만들기 전과 후로 나뉜다

최종편집본을 인쇄소에 넘긴 것이 11월 초였으니 책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3달이 지났습니다.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벌써 2월이라니 믿기지 않네요.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갔는지 놀라워 스케줄러를 펼쳐봤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일정에'이 모든 것이 정말 3달 동안 일어난 일인가' 싶더라구요.

 

무언가에 홀린 듯 스스로를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 속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때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꼭 그리 분주했어야만 했나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돌이켜보며 정리해 봤어요. 하나씩, 차근히, 곱씹으면서 기록하고 싶었던 순간들에 관해 써보려구요. 영원히 놓쳐버리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붙잡아 놓아야 할 것 같아요.




1. 터키 가족들과 한국여행

책을 인쇄소에 맡기자마자 터키 가족들을 마중하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2주에 걸쳐 5명의 가족들과 함께 서울, 부산, 경주를 여행했다. 매 끼니 밥을 챙겨 먹이는 것과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여행을 구성하는 것, 그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도 그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서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화장실 1칸짜리 좁은 집에서 부모님과 언니 둘, 청년이 된 조카에 우리 부부까지, 7 식구가 함께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집에 붙어서 아옹다옹 사는 것에 익숙했던 우리는 큰 논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돌봄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가족들과의 여행을 통해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인 여행가이드와 게하운영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책을 개봉하여 내밀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생각지 못한 선물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자기 사진이 나온 페이지를 찾아 책장을 넘겨가며 소리 지르던 그들의 모습. 그것은 그 자체로 내게 나의 책 보다 귀하고 감격스러운 선물이었다. 터키 가족들에게 한국 가족과 친구들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했던 깜짝 북토크 역시 성공적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만큼이나 많은 품이 들었지만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행복했다.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며칠간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지난 몇 년 간 마음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짐을 덜어낸 듯 홀가분하고 뿌듯했다. 아직도 그들이 이곳에 머물다 갔다니 마치 꿈을 꾼 듯 믿기지 않는다. 얼마 간은 사진을 보듬으며 그 순간들을 그리워할 것 같다.


2. 책 발송준비 및 방문배달

북토크를 찾아준 이들 외에도 책을 주문해 준 분들이 많았다. 급히 만드느라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을 찾아준 감사한 독자분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맞춰 책을 배송하고 싶었다. 책을 포장하기 위해 주변 인력들을 총동원하여 가내수공업을 했다. 주문해 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짚어가며 정성스레 사인을 하고, 우리 부부의 얼굴이 들어간 도장을 찍었다.


 책을 발송하고 돌아와 모든 독자들에게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보내었다. 고맙고 또 감사하다고. 책이 배달완료되었다는 한 통 한 통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 책을 읽은 후기들이 속속들이 도착할 때마다 가슴 먹먹히 고마웠다. 책을 받은 것은 그들인데 되려 그들보다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듯했다.


지금껏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온 감사한 분들께 한 분 한 분 직접 책을 들고 찾아갔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그들에게 지난 5년 간의 삶을 선물하고 싶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육아 중인 엄마들에게도 직접 찾아가 책을 배달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맘대로 움직일 없는 음이 이해됐고, 소중한 새 생명의 탄생을 직접 축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책과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랑스런 조카들에게 책과 함께 생애 첫 신발과 장난감을 선물했다. 내 책도 그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 멀리멀리 나아가기를 바란다.


3. 북페어 참관 및 독립책방투어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페어에 참관하여 다양한 작가님들과 독립출판물을 만나보았다. 이틀 내내 행사장에 살다시피 하며 수십 개의 부스를 촘촘히 돌아보고 공부했다. 권의 책을 만드는 것에 얼마나 많은 공과 품이 드는지 알기에 섣불리 두 번째 책을 언제쯤 완성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멀잖은 날에 첫 책의 개정판과 두 번째 책을 완성해서 올해에 있을 2번째 북페어에는 손님이 아닌 부스 작가로 참가하고 싶다 이 생겼다.


책배송을 모두 마친 뒤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의 독립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책방투어를 시작했다. 독립출판의 메카와도 같은 서울시 마포구,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서점이 있는 제주, 내게 가까운 경주, 대구, 창원의 몇몇 서점들까지. 전국에 있는 많은 독립서점들 중 내 책과 잘 어울릴 서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장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그냥 입고메일만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책을 보낼 서점이 어떤 곳인지, 책방지기가 어떤 분인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다짜고짜 내 책을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다. 얼굴을 비추고 인사를 드리며 책을 선물하고 온 곳들은 거진 결이 비슷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거나 여행과 심리학을 테마로 하는, 애살많은 책방지기 분들이 마음을 들여 가꾼 따뜻함으로 가득 찬 곳들이었다.


나는 내 책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책'이기보단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없는 귀한 책'이 되길 바란다. 지금껏 다녀온 27곳의 서점과 카페들 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공간들을 발굴하고 한 곳 한 곳 애살있게 찾아다니며 씨를 뿌리듯 내 책을 심고 싶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만나고 싶은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2쇄 편집 및 입고 준비

2쇄는 특별한정판으로 만들었던 1쇄를 재편집하여 개정증보판으로 찍으려 했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무수한 오타들과 불필요한 사진들을 걷어내고 글을 다시 다듬는 과정 중에 있다. 책을 고치기 위해 붉은 펜을 들고 책을 펼쳐 보니 처음 책을 만들었을 때의 그 성취감과 뿌듯함은 오간데 없고 부족한 부분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손 데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을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내 책에 대해 애정으로 가득 차 서점마다 자랑스레 내밀고 다녔던 책이었건만, 막상 서점에 입고문의 메일을 보내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를 아는 이들에게 건네는 책이 아닌 나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책으로 나를 설명하려니 떨리다 못해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나의 글이, 내가 만든 책이 과연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면서도 겁난다.


아마 이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 세상에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두렵고 겁이 나더라도 계속해서 이 과정을 이어나가야 한다. 세상에서 멀어져 첫 책과 함께 어딘가로 숨어버리고픈 내 마음을 붙잡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지난 3달 정말 고생했고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부디 힘을 내어 나아가보자고. 떨고있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등을 토닥인다.


부디 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거나 이 과정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발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어서 앞으로 한 발자욱 더 내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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