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아니고 진화
출산 직후 초록천에 쌓인 채 쪼그맣게 꼬물대는 아기를 보자마자 지난 10달간의 고생은 물론 배를 가르는 고통마저 잊히는 것을 느꼈다. 그 찰나의 순간 느낀 황홀감 만으로도 그 간의 모든 것이 용서됐달까? 살짝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왜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6박 7일의 기나긴 입원기간 동안 아기를 볼 수 있는 것은 하루 2번의 면회시간이 전부였다. 나는 신생아실 창문 너머로 고작 5분 남짓한 시간 동안이나마 아기를 보기 위해, 온몸에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로 남편의 부축을 받아가며 매일 신생아실을 오갔다.
신생아실 창문에 들러붙어서는 하악하악 숨을 헐떡이며 수십 장씩 아기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병실에 돌아오자마자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보냈다. 하나같이 엇비슷하게 눈을 감고 자는 모습이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지, 남편과 나는 같은 영상을 몇 십 번씩 보고 또 돌려봤다.
세상 자극적인 콘텐츠로 끊임없이 변화하던 나의 폰 화면은 한없이 느리고 지루한 영상으로 고정됐다. 조그마한 하품, 꼼지락대는 손가락, 삐죽 대는 입술, 찡긋하는 눈. 아기의 작고 보잘것없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우리는 경이에 차서 감탄하고, 울고 또 웃었다. 그게 뭐라고, 그가 뭐라고.
병원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내는 동안 남편과는 엄청난 전우애가 생겼다. 그것은 결혼하며 쌓아온 부부로서의 것과는 또 다른 결의 것이었다. 말로 다 못할 고통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오열하는 나를 남편은 말없이 끌어안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네 덕분에 지금껏 전혀 알지 못했던 임신과 출산의 고통, 엄마의 위대함과 부모 됨의 무게를 알게 됐다'며 내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터키에서 사고를 당했던 그때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나를 살뜰히 보살폈다. 오로패드를 갈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짐승처럼 신음하는 것을 지켜보고. 내 몸을 온전히 그에게 맡기며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원초적인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경험은 남편에 대한 애정은 물론 신뢰와 의존도를 한껏 높여 버렸다.
남편과 과도하게 돈독해진 나는 퇴원 후 홀로 가게 될 조리원에서의 시간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해내던 과거의 듬직한 나는 사라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당신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어'를 읊는 비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렇게 한없이 약해진 아내를 돌보는 사이 남편은 우리 집 큰 아들(?)에서 듬직한 오빠로, 아빠 같은 존재에서 한 아이의 아빠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