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비 Dec 23. 2021

그녀는 왜 Bitch가 되었나

내 커리어 인생에는 잊을 수 없는 두 명의 Head of Marketing (한국어로 하면 마케팅 팀장? 본부장급? 정도겠다) 이 있다. 이 둘은 모두 금융권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어린 나이에 꽤나 빠르게 리더로 승진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둘이 타인에게 주는 인상, 그리고 성격은 극과 극이다. 



출처: https://www.collegefashion.net/inspiration/regina-george-style/


먼저 첫 번째, 나의 전 회사 Marketing director 인 Jane (가명)은 하이스쿨 드라마에 나오는 Mean girl의 전형이었다. 겉보기에는 외모도 호감형이고 외향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30명이나 되는 마케팅팀 팀원들을 잘 챙기는 것 같아 보이고 일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그녀는 교묘히 사람들을 조종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 이런 여성 혐오적인 단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그녀는 Bitch 였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는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내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라며 연락처까지도 나눠주지만 정작 필요할 때 연락을 하면 절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굳이 답장하지 않아도 되는 이메일을 주말에 답장하고 CEO 앞에서 자신이 휴가 중에도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것을 은근히 피력하곤 했는데 가끔은 이 사람이 정말 일에 열정이 넘쳐서 이러는 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러는 건지 참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미팅 때마다 하하호호 웃으며 사람 좋은 척을 하고 서로의 슬랙 메시지에 매번 하트를 보내고 말 그대로 둘도 없는 죽마고우마냥 지랄 염병(?)을 떨어놓고 다음날 갑자기 사람을 자르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차 없이 자르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그녀를 두려워했다. 그녀는 부하직원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두려움, 스트레스, 불안을 자신의 권력으로 이용했다. 모두가 잘리기 싫어서 그녀 앞에서 항상 웃고 사람 좋은 척을 했지만 다들 마음속으로는 내가 다음이 될 수 있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다들 시간이 지나자 우르르 이직했음은 물론이다. 이 일을 알 길이 없는 새로운 마루타들이 금세 그 자리를 채우긴 했지만.



출처: Unsplash


그리고 두 번째, 나의 현 회사 Head of Marketing 인 Paulina (가명)가 있다. 그녀는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녀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팀원을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아무리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타인에게 공격적인 말투나 태도를 취하는 법이 없었다. 소위 말로 'Too good to be true'인 그녀를, 난 처음에는 의심했다. 그 전 회사에서 Jane을 바로 겪고 난 후라 Paulina가 내게 칭찬을 하는 것이 정말 진심인지 그냥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하는 척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1년을 넘게 일한 지금, 나는 그녀가 정말 진심으로 따듯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 곁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남자든 여자든, 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주니어든 시니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제 30분 정도 Paulina와 전혀 일과 상관없는 대화를 하다 그녀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불과 몇 년 전에는 내 전 회사 마케팅 디렉터 Jane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자신보다 좀 더 높은 직위의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그다지 도와주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백인 남성이 주류인 금융권에서, 그녀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을 택했다. 남성의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 그녀는 남자들처럼 행동하고, 웃기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그런 농담에 상처 받는 사람들을 예민하거나 여자애 같다고 폄하하는 이들의 무리에 끼어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동료들은 그녀를 인정해줬다. 그녀는 금세 남자들 사이에서 '보통 여자애 같지 않은' 인기녀가 되었다. 하지만 동료 여성들은 그녀를 불편해하고 피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된 자기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분야를 가나 C 레벨 Executive급으로 올라가면 백인 남성들이 주류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상당히 고달프고 외로운 일이다. 남성들끼리의 끈끈한 동료애, 그들끼리 통하는 농담들, 항상 타인의 말에 끼어들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남성들이 미팅을 장악하고 (Facebook COO 인 Sheryl Sandberg의 책 "Lean in" 에도 서술돼있지만 보통 여자들은 미팅에서 타인의 말을 잘 끊지도 않고 발표자가 질문하라고 하기 전까지는 질문도 먼저 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다.) 그러다 결국 목소리가 제일 큰 남자동료가 아이디어를 이끌고 팀을 이끌고 승진을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이 남성이 되어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하고 결국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이들을 나는 나라를 불문하고 굉장히 많이 보았다. 


나 또한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미팅에서 조용히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다가 나는 결국 말 한마디도 못하고 미팅이 끝나는 걸 나도 자주 겪었다.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맘대로 끊는 남자 동료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미팅을 이끄는 상황을 나도 겪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 "아, 나도 좀 시끄럽고 나대고 권력 있는 모습을 좀 보여줘야 하나?" "결국 회사는 권력싸움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e과 Paulina의 차이를 만든 건 무엇일까? 나는 Self-awarness (자기 이해 또는 자기 인식)라고 생각한다. Jane 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방식으로 승진을 하고 돈을 더 받고 리더급 자리에 빠르게 안착했을지는 모르나 부하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자신과 일한 팀원들과 계속해서 신뢰, 우정을 쌓아가는 Paulina 와는 달리 Jane의 곁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속 용품 같은 팀원들만 있었다. Jane 은 아마 한 번도 그녀의 부하직원들이 그녀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어 하거나 스스로가 어떻게 비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토바이가 분노의 질주를 하듯,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계속 그렇게 자신을 맞추고 살아온 것이다. 


반면 Paulina는 자신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음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돌아봤다. 시간을 들여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했고 그를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미디어에 나오는 '싸가지 없고 인정머리 없지만 일 잘하는 상사'의 전형적 이미지보다는, 서로에게 다정하고 착하면서도 팀원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리더가 되는 길을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능력 있는 상사'들이 판타지화 되어 그려지는 미디어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싸가지 없음 = 일 잘함' , '착함 = 능력 없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분법적 공식을 은근히 퍼뜨리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인에게 존경받고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싸가지가 없어야 하나? 이런 환상에 빠져 부하직원을 막대하는 상사들에게 한 마디하고 싶다. 당신이 일터에서 싸가지없는 건 당신이 일을 잘하고 말고 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삶을 사는 건 정말 쉽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진짜 강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싸가지없지만 능력있는 상사의 대표 캐릭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와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Paulina는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자신이 "Kind" 했기 때문에, 즉 남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3년간 3번의 승진을 통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Paulina는 누구든 공평하게, 친절하게 대한다.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직위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주는 편안함, 친밀함, 안정감 때문에 그녀를 좋아한다. 심지어 그녀의 마케팅 팀에 있는 팀원 중 한 명은 그녀와 함께 일하기 위해 전 회사에서 현 회사까지 따라온 케이스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포정치를 하는 상사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직위가 가진 파워로 사람들을 제압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모든 사람과 격의 없이 편하게 지내고 장난도 치면서 상사로서 부하직원들에게 존경도 받으려면, 그럴만한 능력이 따라줘야 한다. 보이는 지위가 아닌 능력과 스킬 자체로 존경을 받는 방식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물론 Paulina는 겸손하니까 자신이 타인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승진했다고 말하지만, 1년간 지켜본 그녀의 의사결정 능력이나 업무처리 능력, 프리젠테이션 스킬은 정말, 탁월하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압도적인 능력과 경험치가 없는 상사들이 자신의 능력 자체로 존경을 받지 못하니까 사실은 그게 무서워서 공포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 일을 하는지를 항상 과시하려고 하거나. 




물론, 경쟁과 약육강식보다는 선함과 친절함, 협동과 같은 가치들을 인정해주고 보상해주는 회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항상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고 내 능력을 항상 과시해야만 나를 승진시켜주는 회사라면 그 회사를 오래 다니는 건 또 고민해봐야 한다. 동료들에게 불신임을 받고 팀워크를 깨서라도 무조건 빨리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게 진정으로 행복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진 출처:

https://gointothestory.blcklst.com/script-to-screen-the-devil-wears-prada-aa2a612ee405 , Google pl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