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도발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정말로, 해외생활-주로 서양문화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한국식 사고방식과 문화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식 문화와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게 부끄럽지 않다. 항상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면 내가 한국에서 왔음을 당당히 밝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영국을 합친 지난 4년간의 해외생활 동안 내가 가진 한국식 백그라운드가 장점이었던 순간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 앞길이 더 꼬였던 적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서양권의 학교나 회사 같은 공식적인 단체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 (Diversity & Inclusion)을 강조한다. 다양한 나라 출신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교류한다면. 음, 듣기에는 아주 좋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직 100% 완벽하지 않다. 그 나라가 어찌 됐든 서양문화권에 속한다면, 개인주의가 좀 더 지배적인 나라일 것이고 그런 나라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동양인인 우리가 새롭게 배우거나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는 나의 초등학생 때 일화가 있다. 당시 국어 시간에 교과서를 읽고 나머지 결말 내용을 상상하는 시간이었는데, 전설 속 영웅이 한 왕국의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악당을 물리친 영웅이 왕에게 큰 칭찬을 받고, 자신의 딸인 공주를 내어 주며 결혼하는 것으로 결말을 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주도 자신의 의견이 있을 거 아닌가? 그 영웅이 자신의 배우자감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해? 영웅이 공주를 구해낸 거와 공주가 영웅과 결혼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공주가 영웅과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냈다. 강제로 영웅과 결혼하라는 왕의 말에 반발해 공주가 집을 나가는 이야기로 발표를 했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남들과 유일하게 다른 결말을 발표한 나를 이상한 아이 취급했다. 그 외에도 몇몇 담임 선생님들은 내가 그들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고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문제아 취급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굉장히 싹수가 노란 아이였다. 지금 해외생활에 잘 적응해 사는 것도 내 싹수가 노란(?) 면이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잘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영국에도 나보다 높은 직위의 사람, 윗사람들의 말에 좀 더 동의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심하진 않다.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가 활발하다. 주장을 할 때 좀 더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이들의 의견을 더 수용한다. 여기서는 토론과 대화를 할 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활발히 나서서 내 생각과 의견을 열심히 들려주는 것이 좋다. 그것이 다른 의견이든, 논리가 빈약하든 두려워하지 말고 우선 의견을 말하는 것이 좋다. 영어가 부족해도 상관없다. 우선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 영국 사회는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이런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타고나길 내향적으로 태어나서 이런 나의 싹수 노란면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 특히 높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의견을 잘 내지 못하는 편인데, 아, 서양문화권에서 인정받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룰을 따라야 한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익숙하지 않아도 계속 연습하고 말하다 보면 자신감을 가지는 날이 온다. 영어가 부족해도 계속 말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핵심을 알아듣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내 영향력이 회사에서 커져가고, 내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사들이나 동료들이 내가 그들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내가 억지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말이다. 어찌 보면 '다른 의견'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인성문제이다. 만약 해외생활을 하는데도 다양한 의견이 배척되고 무시당하는 곳에 있다면 그 회사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아아, 한국인이라 나는 아무리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도 남 눈치 보는 것, 남의 기분을 생각하는 게 너무 몸에 배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문화권에서 자라 서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 '나'를 먼저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특징은 자기만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동양보다 많은 서양 사회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협동하는 사람, 타인의 기분을 배려하는 사람, 자신보다는 팀을 생각하는 팀 플레이어로 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점들이 동양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다른 인종보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도 성공적으로 이민한 사례들이 많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말하는 상대방의 기분을 내 욕구보다 우선한다는 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대하거나 내 기분대로 사람을 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어려워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해도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기분 나빠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퇴근시간이 다 되면 눈치 안 보고 퇴근해도 된다. 한국처럼 상사에게 허락받듯이 퇴근 인사를 한다면 오히려 상대방 쪽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퇴근시간 가까이 메시지가 온다면, 급한 게 아니라면 바로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 한두 번은 처리해줄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진지하게 HR이나 관련 당사자에게 문제를 제기해도 된다. 당신을 '한국인처럼' 일해야만 써주는 고용주는 장기적으로 큰 가치가 없고 그 회사에 들어올 한국인에게도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일의 양이나 시간이 아니라 질로 평가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야 한다.
몸이 꼭 죽을 것처럼 아프지 않아도, 내가 몸이 아프다 느끼면 회사를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쓰러질 것처럼 아파야만 병가를 쓰는 분위기가 있는데, 감기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다고 회사에 나오면 오히려 당신은 병균을 퍼뜨리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친구나 연인의 메신저를 읽었다고 바로바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의 휴식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자유가 있다.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에 늦게 답했다고 화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파티나 술자리에 가서 재미가 없거나 몸이 안 좋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
내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나 약속을 거절해도 된다.
영국이나 스웨덴 같이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과 교류하다 보면 '~~ 나라 사람은 원래 이러나요?' '~~ 나라 사람은 이렇게 행동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또 하게 된다. 근데 이런 질문은 별로 쓸모가 없다.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은 개인의 다름과 고유성을 집단주의 사회보다는 훨씬 더 보장받기 때문에 그냥 이 사람들은 개개인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서양인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한국인 친구끼리 서양사람들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어차피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질문의 해답은 상대방만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저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다른 이유는,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경향성을 알았을 경우. 그렇다고 내가 그 기준에 맞출 거냐는 거다. 그래, A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일주일에 한 번 답장을 하는 경향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고 하자. 근데 내가 이미 저 질문을 했다는 거 자체가 내가 이미 그 사람의 행동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쿨하고 그게 별 개의치 않았다면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지 내 기준이 제대로 잡혀있다면 저 사람이 어떤 문화권에서 와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그래서 저 일주일만 답장을 하는 것이 나에게 괜찮냐는 것이다. 지금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관심의 빈도와 비슷한 상대를 찾아가면 된다. 서양 사회는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꼭 동양인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교류하면 된다.
단체를 위한 희생,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평생 배우고 자란 동양 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의 기준에 자신의 기준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보편화되어있다. 그런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서양문화권에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외에서 나를 잘 지키려면, 나의 기준이 무엇인지 - 그것이 직장에서의 일하는 방식이든, 연애든, 친구관계든 간에 - 그것을 우선 먼저 정립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과 잘 지내기 위해서 그 사람의 기준에 내가 맞출 필요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어찌 됐든 내가 어떤 배경과 문화를 가졌든 간에,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내 기준에 뭔가 맞지 않고 어긋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그냥 그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 서양 사회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좀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 그걸 원해서 많이들 서양문화권으로 이주하지 않았나? 그 사회에서 잘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동양에서 억압돼있던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나만의 기준, 생활방식들을 잘 고집하고, 그에 맞는 사람들과 잘 교류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