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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Jun 04. 2024

분노에 대한 탐구

분노해야 하는 일에 대한 기준과 원인 감정 찾기

분노를 억누르는 것과 분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중에 나는 어디였을까 생각해봤다. 최근 10년 정도를 돌아봤을 때, 분노를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분노를 억누르기보다는 분노 자체를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면서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자세히 나의 분노에 대해 탐구해보기로 했다.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면 더욱 분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1. 분노할 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누구의 것인지 생각하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누구의 것인지를 생각하고자 노력했다. 체육 시간, 준비운동을 따라 하지 않는 아이가 교실에 있다면, 몇몇 아이들은 그 아이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노를 한다. 그리고 또한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는 행동에 분노를 한다. 하지만 나는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준비운동을 하지 않아서 다칠 수 있는 문제'는 그 아이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노하지 않고 다만 그 아이의 '문제-다칠 위험이 높아짐'를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알려주기만 한다. 그 정도면 분노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아듣는다. 혹여나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도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 행동을 따라할까봐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아이들에게 준비운동의 필요성과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미리 잘 이야기해놓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올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분노할 필요가 없다. 간혹 단호하게 말하더라도 준비운동을 제대로 따라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수업 중엔 그냥 내버려두고 수업 마친 후 따로 불러서 준비운동에 대해 다시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은 태도가 많이 나아진다.


분노하지 않아도 되니 분노하지 않게 된다.



집에서도 누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구분해야 하는 비슷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누나들이 육아를 할 때 우리 어머니에게 과하게 의존하는 일이 있을 때면(주말마다 찾아와서 아이를 봐달라고 한다던지 등) 아내는 그런 누나들의 행동을 보며 왜 스스로 육아를 하지 않고 자꾸 어머니를 힘들게 하냐며 분노하지만, 나는 그 문제가 나나 아내가 가진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누나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나한테 하소연하는 어머니를 볼 때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가끔 어머니를 모시고 좋은 곳을 다녀온다던지, 우리 집에서 육아의 문제가 생겼을 땐 어머니에게 부탁하지 않고 최대한 우리 내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던지 등. 누나들의 행동에 대해 분노하는 건 어머니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분노하지 않는다.



2. 존중받을 수 있는 영역-다름-과 존중해선 안될 영역-문제-을 정의내리기

나는 '문제'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다. 아내와 살면서, 그리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문제'의 기준이 없어서 자꾸 오해가 생기고 싸우게 되는 걸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서 나온 나만의 문제 '기준'이다.

  가. 물리적인 관점

    1) 어떤 행동이 타인을 향할 때

      가) 타인 또는 타인의 소유물에 물리적인 피해를 고의로 입혔을 때 - 명백하게 문제

      나) 타인 또는 타인의 소유물에 물리적인 피해를 실수로 입혔을 때 - 문제, 그러나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해석'에 따라 용서도 가능

      -고의는 아니나 반복되지 않도록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음.

      다) 타인 또는 타인의 소유물에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때 - 문제가 아님.

    2) 어떤 행동이 타인을 향하지 않을 때 - 문제가 아님

     ※다만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행동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그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음

      → 자살, 자해 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타인을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닌 건가?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문제는 아님. 

    

  나. 정신적인 관점

    1) 타인을 향할 때

      가) 타인을 향해 비난, 욕설, 조롱, 평가 등을 고의로 해서 정신적 피해를 입혔을 때 - 명백하게 문제

      나) 타인을 향해 고의는 아니나 정신적 피해를 입혔을 때 - 문제, 그러나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해석'에 따라 용서도 가능

      - 고의는 아니나 반복되지 않도록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음.

       예) 자기 딴에는 위로 또는 조언을 해준다고 말하였으나 상대에겐 간섭으로 느껴질 때 - 문제라고 볼 수 있음

   ※타인을 향한 말은 그래서 매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함.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

      다) 타인을 향한 말이나 행동이 기분나쁘지 않은 경우 - 문제가 아님

    2) 타인을 향하지 않을 때

      가) 타인을 향하지 않은 행동인데 제 3자(문제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 문제가 아님 → 존중받아야 할 부분

       예1) 바바리맨의 노출은 타인을 향한 행동이기 때문에 명백하게 문제임. 그러나 1살 아기가 옷을 입지 않고 집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것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님. 아기가 옷을 입히기 전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보고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건 아기가 타인을 피해입힐 목적이 없었으므로 존중받을 수 있는 범위의 행동이라고 생각함.

      예2) 남성 커플의 동성애를 보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경우, 남성 커플이 그 사람들을 비방하는 등 피해를 주기 위해 사랑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사랑으로 인해 물리적인 피해도 없었으므로 문제가 아님.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님 그러므로 존중받아야 함. 

      예3)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혼자 욕설을 하는 경우 - 문제가 아님, 누군가를 향하지 않았고 아무도 듣지 못했으므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음. -존중받을 수 있는 행동

      나) 타인을 향하지 않았으며 피해를 입힐 의도도 없었을 경우 - 문제가 아님

위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분노해야 할 문제가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나. 1)의 나)와 다)의 경우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사실 구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관계를 맺는 상대를 더욱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들이 책을 읽는다고 밥을 먹으러 늦게 올라오는 상황의 경우 나를 힘들게 하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저녁 일정을 꼬이게 해서 내가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면 문제라고 볼 순 있다. 다만 고의가 아니기 때문에 분노하지 않고 알려만 주면 되는 일이니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내가 남자사람친구랑 연락을 주고받을 때, 나와 한 약속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은 나를 향한 어떤 영향도 없고, 피해를 입은 것도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지만, 나와 한 약속(아내의 가장 친한 동성 친구보다 적은 횟수로 연락하기)을 지키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거나 한다면 나에게는 '나와의 약속을 깼다.'라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므로 정신적 피해를 준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고의로 나를 괴롭히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면 문제를 알려주고 용서해주면 되는 일이고, 일부러 나를 괴롭게 하려고 약속을 저버리거나 바람피는 것 등의 행동을 했다면 명백히 문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기준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하니 생각보다 분노할 일이 많지가 않았다. 용서할 수 있는 일도 많았고, 문제가 아니라 존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3. 분노가 2차 감정임을 인지하기

교사역할훈련(T.E.T.)을 다룬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노는 2차 감정이며 분노에 숨어 있는 1차 감정을 알아내서 그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읽은 후 나는 분노할 일이 생길 때면 그 전에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알아보고자 노력을 했다. 아내가 나에게 분노해서 나도 분노할 때면, 나는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아내에게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말해주었다. 2차 감정인 분노에 숨어 있는 1차 감정(원인 감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감정)을 찾는 연습, 그리고 그 감정을 차분하게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 주었다. 그랬더니 분노하는 일은 많아도 분노를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표출해서 상대애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이 줄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생에 있어 정말 실용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책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교사역할훈련 관련 책들을 꼽고 싶다. 그 책 덕분에 나는 화를 마구잡이로 내던 교사에서 (아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천사 선생님으로 바뀔 수 있었다. 천사 선생님이라 불리면서도 교실 붕괴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분노하지 않고도 아이에게 단호하게 규칙을 말하고 내 마음은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4. 정리

문제를 누가 가졌는지를 바라보고, 내 문제가 아닌 일에 분노하지 않으려 하는 것. 그리고 올바름의 기준을 세우고 존중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것. 마지막으로 분노에 가려진 원인 감정을 찾는 것. 


그렇지만 그럼에도 분노하게 된다면, 그 분노를 신호로 여기고 분노가 가리키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알아주도록 하자. 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선 점차 분노할 일을 줄여가고, 분노를 바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사회적으로 분노할 일이 있을 땐 분노를 에너지 삼아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바른 쪽으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해나가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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