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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m Aug 01. 2020

피터 캣의 자기만의 방

출입문에 걸려 있는 애드워드 호퍼 그림 'Room by the sea'


'피터 캣'에는 두 개의 방이 걸려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the sea'라는 그림과 버지니아 울프의  'A room of own's one(자기만의 방)' 포스터이다. 이 책방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그림(위 그림)부터 눈에 띈다. '방'을 콘셉트로 운영되는 듯한 '피터 캣'은 책을 판매하는 상점이라기보다 주인의 방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책장에는 서점 주인이 소장한 책이 꽂혀있다. 그가 우리에게 건넨 인사는 '어서 오세요.' 한마디뿐이었으나,  '저는 이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이 책을 당신도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듯했다.

북카페 주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보인다.


 방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들 간의 유사성이나 차이점을 드러내는 법칙, 그들의 매력이 담긴 은은한 향기, 그들의 영혼의 비밀을 간직함과 동시에 폭로하는 친구이자 그들의 과거를 간직한 신전이 된다.
  
                                                                                               - 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중

 



그의 취향은 김영하와 김연수 작가 같은 대중작가부터 몽테뉴의 '수상록'까지.. 다양했다. 얼마 전, 방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극 중 윤세리(손예진)가 리정혁(현빈)의 책장을 구경하며 "책장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 알 수 있다"라고 했을 때,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글을 읽고, 즐겨하는 지를 보면 이 사람의 취향부터 어떤 사람인지까지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그 사람이 걸어온 역사와 닮아있기 마련이다. 그가 소장한 책의 제목을 살펴보는 행위는 마치 그와 정면으로 앉아 눈을 마주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판매중인 책들이 평대에 올라와 있다.

반대편 벽면 서가에는 현재 북카페에서 판매 중인 책이 놓여있다. 판매 중인 책은 대부분 서점 주인이 직접 읽어본 책이라고 한다. 북 큐레이션에 인상적인 부분은 프루스트와 관련된 책들이다. 그가 프루스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전권을 비롯해,  이번에 피터 캣에서 구매한 '독서에 관하여', 프루스트 번역가의 저서까지 놓여있었다.  수년 전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알게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접하게 되니 꽤나 반가웠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책들은 피터 캣에 잘 들여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친구가 주인 분과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다.) 책 덕후들은 알겠지만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밌으면서 좋은 책들이 참 많다. 그런 책들을 손님에게 소개하는 것도 북카페의 소명이자 운영 콘셉트라고 여기는 듯하다.


 

(좌) 버지이나 울프 'A room of one's own(자기만의 방)' 북커버로 만든 포스터 / (우) 피터 캣에서 구매한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


다시 처음 마주친 '두 방'으로 돌아가 보자.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주로 고독한 분위기의 사람과 건물을 주로 그린 사실주의 화가이다(아래 그림 참조). 버지니아 울프는 19세기 영국 소설가 및 비평가로서, 불운한 시절을 겪고 요절한 작가이다. 그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유명한 데, 저서 '자기만의 방'은 그가 당대 여성 지성인으로 살아가기 얼마나 외로웠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고독'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두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은 건 피터 캣의 의도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애드워드 호퍼



서점 '피터 캣'은 그가 지닌 취향에 대해 은밀하게 주고받는 대화의 장이자, '자기만의 방'이었다. 그가 구축한 작은 세계를 통과한 뒤, 집에 돌아와 고요한 새벽에 추천받은 '독서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늘도 나만의 취향이 하나 생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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