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dew May 07. 2022

응급실 옆 장례식장

삶과 죽음의 결코 하찮지 않은 경계에 서서

연휴 사이에 낀 토요일 오후, 반포 대교 남단은 여느 주말보다 훨씬 심한 정체로 30분이 넘도록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강남 성모 병원 옆을 지날 때 즈음, 고 강수연 배우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기사를 본지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누구나 아는 영화계 대표 인물이 아닌가. 66년생이니 갑자기 떠나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애도의 마음으로 무심히 창밖의 성모 병원 간판을 보는데 몇 년 전 이곳 응급실을 찾은 일이 떠올랐다.


눈을 의심하다

아이가 셋째쯤 되면 엄마는 웬만한 일에는 그닥 놀라지 않게 된다. 특히나 설사나 장염은 종종 찾아오는 감기만큼이나 흔한 일이라 좀처럼 약을 쓰지 않는 미국 엄마들은 그저 며칠 조심하며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막둥이는 돌이 되기 전 ‘장중첩증’으로 응급 시술을 한 적이 있어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랐을까? 한국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두 돌을 앞둔 아기가 끈적한 콧물 같은 녹빛 설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일 년 전 기억이 떠오르며 등골 서늘한 식은땀이 나는 것이라. 바로 아이를 들처업고 가까운 성모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경황없이 운전을 하는 중에 응급실보다 먼저 눈에 띈 장례식장.

다시 보니 응급의료센터가 장례식장과 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장중첩증: 한마디로 장이 꼬이는 현상(의학 용어가 아닌 일반인 대상 쉬운 설명임을 말씀드립니다). 장의 운동이 원활하지 않은 신생아들(백일 전후 아기들)에게 종종 발생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장이 꼬여 장의 운동이 막힌 상태로 복통, 설사, 구토 등을 유발하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장폐색 등으로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풍선처럼 장에 바람을 불어넣어 장이 펴지게 하는 비교적 간단한 응급 시술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상태에 따라 위급해질 수 있기 때문에 대가리에(거친 표현 죄송합니다) 총알 하나 박혀 오는거 아니면 꿈쩍도 안하는 미국 응급실에서도 바로 구급차를 대기시켜 시술실로 이동시킬만큼 위중한 일이다.
삶과 죽음의 하찮은 경계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건 아니던 급한 맘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일반적인 진료 시간이 아닌 시간에 응급실에 와야 할 만큼 무언가 급박한 이유로 이곳을 찾았을 때 눈앞에 장례식장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충격이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간절한 삶이 이토록 죽음과 가깝게 느껴질 수가.

블랙 코미디 같은 장면에 긴장했던 마음이 욱하고 올라왔다.

응급실 왔다가 죽으면 바로 길 건너 장례식장으로 가라는 것인가.

설사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성모 병원은 최고급 시설을 갖춘 서울 시내 몇 개 주요 병원 중 하나이다. 다른 병원은 유심히 보지 않아 일반화할 수 없지만 이 병원을 설계했던 수많은 고급 인재 중 누구 하나 이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다른 나라에서 살다 보면 익숙한 내 나라의 문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상대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다 보면 선진 문화를 찬양하며 마치 내 나라는 다 부족한 것처럼 비하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익숙하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은 물론 장례 문화 자체가 우리와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응급실을 수없이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급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일개 아줌마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일인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개 아줌마는 정작 이런 일에 관여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인 걸까.


새 나라의 어른들에게

우리나라도 먹고살만해진 지 오래다. 먹고 살만한지가 아니라 사실 K-문화는 시대를 앞서 나가 트렌드를 이끌 정도로 전 세계 곳곳에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을만큼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이민자들은 매일의 삶으로 체감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적인 인류애적 접근이랄까? 구석구석 외적인 발전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의식이 엿보일 때가 있다.


며칠 후면 나라의 수장이 바뀐다.

누가 되면 새나라가 열리고

누가 되면 나라를 말아 먹는다고 난리였지만

지금이 무슨 하늘에서 내린 왕정 시대도 아니고

국민이 스스로 그들의 리더를 뽑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리더는 결국 그 국민의 수준일 것이다.

그러니 자랑스런 이 나라의 수장이 누가 되던 그 나라는

기술과 시스템, 효율성과 발전 다 필요하지만

작은 일에도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결코 작지 않게 다루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응급실을 향해가며 간절하게 쾌유를 빌었을 고 강수연 님의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쪽 가정의 반쪽 어린이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