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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lochen Jan 26. 2024

시아버지가 뿔났다.

그 독특한 이유

우리는 시부모님 하우스 2층에 산다.

부모님은 1층, 우리는 2층


처음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살자고 남편이 제안했을 때는 사실 겁나기도 했는데(솔직히 80년생 며느리로 치가 떨리게 싫은 남자 쪽 가족들),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여서 집을 알아볼 수도 없었고, 또 여차하면 남편과 상의해서 집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미 남편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았고, 열흘간 지냈던 곳이라 시부모님 성향이 파악되기도 했고, 제발 가면 쓴 모습을 본 건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이 분들에게 가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시국에 시아버지는 친구분 페터(건축업 하시는 분)와 몇 달 동안 2층을 리모델링을 하셨다. 재료 구하기도 진짜 힘드셨다고.. (진짜 대단하신 분!)

이런 좋은 시아버지가 종종 화를 낼 때가 있다.


한 번은 (아마 작년 초) 내가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던 날인데, 그날 비가 왔다. 딸은 하교 후 학교에서 걸어왔고 시아버지가 그걸 보셨나 보다. 남편이 퇴근 후 1층 가서 이것저것 말하다가 시아버지가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말했잖아,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아이가 이 날씨에 걸어오다니!!  내가 데리러 갈 수 있었는데.. 아나, 이것 참!!"


이 말을 전하며 남편은 종종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자고 했다.


그 앞에서 어리둥절한 나.???


"남편, 근데 내 생각에는 아이가 비 오는 날 걸을 수도 있지. 그리고  난 내  인생에 부모가 날 데리러 온 적도 그리고 뭘 부탁해 본 적도 거의 없어서, 너네 엄마아빠에게 뭔가를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사실 잘 안 들어. "


그렇게 말하고는 속으로 그가 부럽기도 했다. 자식이 도와달라고 안 해서 속상하셨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그리고 남편에게 말도 했다. "네가 이렇게 좋은 남자인 이유가 가인하트(시아버지)에게서 다 배운 거구나. 집안일, 요리, 아이들 스포츠 가르치기 등등.  좋은 부모가 있어서 좋았겠다 그리고 지금도 늘 도와주시려고 하고. 부럽네!"


;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계집애가 싸가지없게 내 밥을 안 차렸다"라고 욕지거리를 하며 엄마에게 전화하던 나의 아버지. 자식을 사랑해 준 적도, 관심 있었던 적도 없지만, 자식이 다 컸으니, 자식에게 아버지 대우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과는 너무 다른.. 나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인거다.


남편 왈 " 너도 이제 좋은 시아버지 있잖아. 그러니 우리 둘 다에게 좋은 거지!"


이 대답은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다. 우리 둘 다에게 좋은 거지. 나도 이제 좋은 , 날 아껴주는 시부모가 있다.



그리고 어제 또 시아버지는 화가 났다.


독일기차파업. 유명하다. 그리고 지독하다. 2024년 1월에만 벌써 두 번째다. 이유는 더 나은 임금, 더 많은 휴가, 적은 업무량이 조건이란다. 뉴스 보니 국민의 65%가 이 파업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겨우 65%만???

이렇게 파업이 시작되면 교통대란이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화를 낸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부탁을 안 해서..

이쯤 되면 시아버지가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아 깜빡했네! 싶기도 하다.


오전은 남편이 아이들 둘 학교에 바래다주고, 오후에는 내가 둘 다 픽업해서, 아이들 치과 체크업 갔다가 뭐 스케줄이 좀 바빴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기차 파업으로 고생은 안 했는지 물어보다가 남편이 "와이프가 오후에는 고생을 좀 했지. 강현이 학교가 멀잖아 어쩌고 저쩌고.." 하니 급 화를 내며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왜 나한테 부탁을 안 하냐고!! 언제든지 도와준다고!!"



시아버지는 나에게도 종종  말한다.

"언제든 도움 필요하면 말해"


나는 나이 마흔이 넘어 시아버지, 시어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 내 마음속 10살 어린아이가 이 사랑에 감동받아 눈에 눈물이 꽉 찬다.

시아버지와 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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