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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실이하늘 Jun 15. 2024

직장생활 속 감정이야기_책임감

직장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들을 다루는 우연한 계기

출처 : Pixabay (Peggy_Marco)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부정적이거나 불편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긍정적이면서도 모두가 느꼈으면 하는 아름다운 감정이다.


우리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에는 말 그대로 학업이 업(業)이니 학생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은 곧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책임감이라는 말을 더욱 자주 듣게 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관리자로서, 책임자로서, 또는 가족의 가장으로서, 장남으로서, 며느리로서 등등 그 책임감을 어느 정도의 무게로 느끼느냐의 차이일 뿐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책임감(責任感)이란 사전적으로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풀이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사안에 대한 결과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이 일이 잘 마무리되지 않으면 너 책임이야!”라는 식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자발적인 마음으로 생성된 것이든, 특정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책임이든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른바 ‘책임감을 망각’하는 사례들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처음에는 분명 어떠한 상황이나 입장, 사안에 있어 책임감을 느낀다. 마치 본능적으로. 그런데 주변 분위기나 관행, 또는 비뚤어진 감정으로 인해 단단하게 매어진 끈을 놓을 때가 발생한다. 바로 ‘책임 떠넘기기’ 또는 ‘나 몰라라’이다. 흥미롭게도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책임은 그런 식으로 떠넘겨지지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팀은 타 부서에 있던 사 팀장과 고 과장이 차출되어 최근에 만들어진 팀이다. 하지만 사실상 동일한 직군이기에 업무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로 팀을 꾸리게 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보름 정도 진행하던 어느 날 사 팀장과 고 과장은 퇴근 후에 술 한 잔을 하고 있었다.     


“고 과장, 요새 어때? 솔직히 나는 의욕이 잘 안 생기네.”

“그러세요?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 팀을 주시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아주 기대에 부풀어서요.”

“알지. 우리가 지금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회사의 미래 먹거리이니까 다들 관심을 가질 수밖에.”

“맞아요. 다들 팀장님께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았어요.”

“그걸 왜 나한테 책임을 지우는지 모르겠어.”

“저희야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사실 고 과장도 알다시피 나는 이런 쪽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그저 비슷한 일을 했거나 동료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좀 보았던 게 전부지.”

“그래도 팀장님은 산전수전 다 겪어보셨으니 잘하실 겁니다.”

“글쎄다…….”     


사 팀장은 휴가도 안 쓰고 매일 출근해서 무언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종종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고, 일의 경중이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는 듯 전체 맥락보다는 하루하루 급한 건을 겨우 처리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그동안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었다면 틈틈이 학습해가며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데 팀장이라고 하기에는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 팀장 한 사람을 쳐다보며 일하고 있는 고 과장도 서서히 불안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왜 저러지?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분이 지시하는 것도 딱히 없고, 표정도 무기력해 보이고…….’     


프로젝트 1차 중간보고일이 다가오는데 사 팀장은 마치 준비가 끝난 사람처럼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고 과장은 아니었다. 고 과장은 지금까지 정리한 자료를 몇 번이고 검토하면서 코앞에까지 다가온 중간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시기에는 팀장이 그동안 진행해왔던 활동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남은 과제와 계획을 중간보고 시에 보고해야 했다. 이제 중간보고 하루 전이다. 고 과장은 며칠 동안 야근을 하며 준비한 자료를 사 팀장에게 전달하였다.     


“팀장님, 내일이 중간보고일인 건 아시죠? 제가 준비한 자료입니다. 검토하시고 내일 보고를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래, 수고했어. 내가 검토할게.”     


드디어 1차 중간보고의 시간이 찾아왔다. 대표이사는 물론 전 임원들이 모두 출동하여 착석했다. 사 팀장이 간단히 경과를 보고하고, 실질적인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보고하였다. 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에 사 팀장은 “보완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옆에서 불안하게 이 상황을 보고 있던 고 과장은 몰래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렇게 1차 중간보고는 끝이 났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나마 고 과장이 진행했던 부분에 대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위안이었다. 보고가 끝난 후 두 사람은 회의실에 앉았다.    

 

“고 과장, 준비하느라 수고 많았어.”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가다가는 다음 보고 때는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 같던데요.”

“그러게. 에휴~ 열심히 해봐야지.”     


누구나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해야 하고, 그 결과에 상응하는 상벌 또한 겸허하게 수용하면 된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의미를 두겠지만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임했느냐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책임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책임감과 책임은 엄연히 다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실무자는 업무 수행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관리자나 책임자는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에서는 업무 수행의 책임, 고객 만족의 책임, 사내 화합의 책임, 의사결정의 책임, 기밀 보안의 책임, 법적/윤리적 책임 등이 있다. 크든 작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책임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성장하기 어렵다. 


한편 책임감은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아니다. 앞서 두 차례 언급했지만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 책임감이다. 결과의 성패 여부를 떠나 자신을 믿고 부여한 과업을 소중하고, 귀중하고, 중요하게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부정적이거나 불편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긍정적이면서도 모두가 느꼈으면 하는 아름다운 감정이다. 더 이상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감정이 바로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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