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리수거장 뒤편 으슥한 공간에 캣대디인 남편이 정성껏 챙기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 주말 아침, 이곳 사료 그릇 옆에 처음 보는 대형 박스가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박스 안에 담긴 것은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 두 마리. 인기척을 느낀 고양이들은 우렁차게 소리를 내며 꺼내 달라는 듯 쉴 새 없이 점프를 한다.
엄마 고양이가 외출한 것인지 버리고 간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빽빽거리는 고양이들이 딱했던지 사람들이 오가며 박스 안에 불린 사료를 넣어주기도 하고 우유도 담아준다. 수시로 주변을 살폈지만, 엄마 고양이는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고양이가 있는 곳이 비가 드는 장소는 아니어도 습기와 한기가 걱정이 됐다. 밤새 어미가 데려갔거나 또는 주민에게 입양되었기를 바라며 아침 일찍 급식소에 가보았다. 여전히 두 마리가 축축한 상자 안에 웅크리고 기대어 있다. 목이 쉬어 어제만큼 소리가 크지 않다. 심지어 한 마리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
겁이 나서 박스째 들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의사 선생님은 생후 한 달 정도로 보이는 두 녀석의 얼굴, 이빨, 귓속, 항문을 육안으로 체크하며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양이의 건강이 걱정은 되지만 집에 들일 의사가 없는 사람임을 알아본 선생님은 최소한의 처방으로 회충약을 두 봉지 내어주셨다. 날이 따뜻하니 야생에서 적응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다시 원래의 자리에 박스를 가져다 놓고 반나절을 더 지켜봤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이 닿아서 엄마 고양이가 데려갈 것 같지도 않다. 우선은 며칠째 답답한 박스 안에서 종종거리는 녀석들을 꺼내야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고양이를 풀어줄 만한 장소를 탐색하다가 우리 아랫집 1층 정원의 커다란 나무 데크를 떠올렸다.
아래층에 사는 노부부는 외출이 잦아서 모르실 수도 있지만, 나무 데크 아래의 어둑한 공간은 동네 길냥이들의 서식지다. 점심 무렵이면 데크 위로 스멀스멀 올라와 대자로 뻗어 잠을 자는 고양이, 일광욕하는 고양이, 정원을 내 집처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2층 우리 집 베란다에서 스토커처럼 내려다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새끼 둘을 박스에서 꺼내 데크 아래에 뚫린 개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사냥에 익숙해질 때까지 먹을 사료도 출입구 앞에 놓아주었다. 의외로 사료를 제법 잘 씹어 먹었다. 1층에 자주 내려와서 챙겨주면 되겠지. 이틀 동안 박스를 보며 부담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머리로는 그랬다.
고양이와의 밀당에서 패배한 결과
개구멍으로 힘들게 집어넣은 아깽이 하나가 계속 데크 밖으로 나와 떼를 썼다.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고 다리에 매달리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았다. 독하게 마음을 먹은 다음 간신히 떼어내고 집에 들어왔다가 그렁그렁한 아기 고양이의 눈망울이 아른거려서 다시 나가기를 여러 번. 결국 들쳐 안고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더니 이번에는 밖에 남은 한 마리가 동네가 떠나가라 애옹거린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버티다가 결국 밀당에서 패배하여 두 녀석을 모두 집으로 들였다.
청소에 대한 집착이 있어 열심히 쓸고 닦았던 우리 집 거실 바닥은 모래와 사료 부스러기로 초토화되어 간다. 아깽이들이 배설물을 모래에 묻는 기술이 아직 변변찮아 응가를 발로 밟는 것은 예사이고, 화장실 모래더미 위에 드러눕고 비비고 난리가 따로 없다. 두 녀석은 밥그릇 앞에서 당당하게 사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의자 밑에 앉아서 어서 위로 올리라고 호통을 친다. 허둥지둥 밥을 챙기고 식사가 끝난 솜덩이 두 개를 조심조심 의자 위에 올리며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혼란에 빠진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도 알고 보면 마음이 약해서 둘리에게 동거를 허락한 평범한 중년이었겠지. 주인같은 객식구를 보며오만 생각이 다 든다.
고양이가 생존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던 중 속으로 '그냥 내가 데려가 키울까'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 이 생각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머릿속은 복잡하나 모처럼 갖난 생명이 들어오니 집안에는 활기가 돈다. 집을 얻었으니 밥값을 하려는 캣초딩의 애교는 수시로 심장을 공격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고양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혀 짧은 소리로 말을 걸고 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