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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Sep 05. 2020

옻 알레르기

보름이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


피부에 침투한 옻독은 약의 힘으로 조금씩 파괴되어 간다. 만신창이가 된 피부는 한 고비를 넘어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발악을 하며 발진과 가려움을 일으키는 옻 알레르기를 겪으면서, 오컬트 영화에서 보았던 인간의 육신을 빠져나갈 때 온 힘을 다해 발악하는 사탄의 몸부림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주변 피부에 수포를 하나라도 더 퍼트리고 떠나려고 기를 쓰는 생명체 같다고나 할까.


옻칠을 다가 알레르기 발진이 생겼다. 옻나무에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며 칠의 은은한 광택을 만들어주는 물질이다. 그런데 이 성분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옻칠 선생님께서 '처음에 몇 명은 고생을 좀 할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게 나일 줄은, 그리고 그 고생이 이렇게 지독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옻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통영에 놀러 갔다가 옻칠미술관에 들렀다. 우연히 방문한 그곳에서 거대한 옻칠 회화 작품을 보고는 압도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넋을 놓고 보다가 꼭 옻칠을 배우겠노라 무작정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자라면, 일을 그만두면, 여유가 생기면... 기회를 보다가 올해 초 드디어 형편이 되어 수업을 신청했다. 등록은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거듭 개강이 연기되던 옻칠 수업은 사람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다가 정말 어렵게 시작되었다.


그릇, 소반, 가구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칠장(漆匠) 무형문화재인 선생님은 60년 가까운 세월을 옻칠과 함께한 분이다. 국빈이 방문할 때, 국가 원수가 해외를 순방할 때 선생님의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물이 되었다. 정교한 나전칠기 작품이 전시된 공방의 갤러리는 알라딘에 나오는 금은보화 가득한 마법사의 동굴 같았다. 얼마나 실력을 쌓아야 이런 작품을 비슷하게라도 흉내 낼 수 있을까. 60년까지는 못해도 20년은 실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20년 뒤면 내가 몇 살이더라. 노안이 와서 나전을 오려 붙일 수나 있을까... 맹랑하고 터무니없는 생초짜 교육생의 상상이지만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백골 상태의 주발 세트를 받아 들고 옻칠을 시작했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기물에 칠을 하고 표면을 고르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한 주는 칠을 하고 한 주는 사포질을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연마 작업은 대부분 사포를 쥐고 손으로 살살 문지르는데 양이 많을 때는 물레를 사용했다. 진공 물레에 기물을 올려 샌딩을 하면 일의 속도가 빠르고 균일하게 연마되는 장점이 있지만 나무 가루가 대책 없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렇게 날린 가루들이 땀으로 축축하던 팔과 목에 닿아 발진이 시작된 것이다. 옻이 묻은 먼지 가루의 무서움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맨 살이 노출되지 않게 중무장하고 전투에 나섰을 텐데. 붓질하는 날이 아니라고 방심했다가 이런 사달이 났다.


처음 물레질을 한 이후로 사흘 정도 지났을까. 팔에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한두 개 생겼다. 벌레에 물렸나 보다 생각했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주일쯤 되니 좁쌀이 산모기 물린 자국만큼 커지며 개수가 늘었다. 발진이 생긴 부분은 엄청나게 가려웠고 긁으면 주변으로 번졌다. 매일 새로운 곳에 수포가 생겼다. 피부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열흘째 되던 날이 정점이었던 것 같다. 궁극의 가려움을 동반한 발진은 팔과 목에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괴물 같은 생명체들이 내 피부에서 가장 연약한 곳을 찾아서 그 자리를 뚫고 나오려 했다.

 

이틀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러 갔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한 움큼씩 복용했다. 하루에 한 통의 연고를 발랐다. 스테로이드를 몸에 들이부으며 가려움 증상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밤에는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잠들었다가 깨서 긁고 깜빡 잠들었다가 다시 긁으며 깼다. 냉찜질이 가려움을 완화시킨다고 하니 수시로 냉수 마사지를 했다. 아이스팩을 올리고 해열시트를 붙이고 쿨토시와 냉각 스카프를 둘렀다.


내 꼴을 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이 주워들은 다양한 옻독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어르신들이 야유회에서 옻순 나물을 먹고 생식기에 두드러기가 생겨 단체로 고생한 이야기, 남편이 옻나무를 베고 돌아왔는데 엉뚱하게 부인에게 옻독이 오른 이야기, 장인이 달여준 옻물을 마시고 호흡곤란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간 사위 이야기... 옻으로 고생한 에피소드가 이렇게도 많았던가. 얘기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겁 없이 대하다니 참으로 미련했다. 이제 나의 옻독 에피소드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겠지. 칠을 배우던 학생이 사포질을 하다가 옻칠 가루를 뒤집어쓰고 발진이 생긴 이야기.


알레르기가 극심하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여 수업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칠 작업을 하지 않으니 회복에는 도움이 되는 셈이다. 쉽게 낫지 않는 이 지독한 알레르기를 보며 의사 선생님도 혀를 찼다. 앞으로 수업은 나가지 말 것이며 옆에서 구경도 하면 안 된다는 경고도 덧붙이셨다. 맞다, 팔과 목에서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지 생식기에 발진이 생기고 호흡곤란이 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솟는다.


숙원이었던 공예가의 꿈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일까.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옻을 오래 다룬 사람들은 처음엔 발진이 생겨 고생을 해도 점점 강도가 약해진다고 조언한다. 옻에 내성이 생겨 알레르기가 기적처럼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특별한 케이스일 뿐 나에게도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옻 말고도 수많은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나는 두 번째 접촉에 증상이 더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모양 빠지게 몸을 긁어대는 나를 가족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다. 할 말은 많으나 참고 있는 가족들 앞에서 그럼에도 계속하겠다는 당당함을 보일 낯이 없다.


아쉬운 대로 유튜브에서 장인들의 작업 영상을 찾아 본다. 나전으로 장식된 칠기에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신비함이 있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분야에 매력을 느끼고 꿈을 가져본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운에 기대는 행동을 경멸하지만 이번만큼은 우주의 기운이 도와 타고난 체질의 약점을 극복하는 기적이 생기기를 바라본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중년의 묵직한 진로 고민에는 이렇게 변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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