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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26. 2020

예민한 유튜버의 엄마로 살기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들이 유튜브를 시작했다.


한동안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 영상을 찾아보며 뉴에이지나 K-pop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휴대폰을 켜고 유튜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설프지만 영상을 하나씩 찍는 것이 제법 진지해 보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주었다. 여름에 시작한 채널은 어느새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HylnJHuUrpy8o87CMfMI6A


영상을 촬영하는 날 아들은 아주 뾰족해진다. 한 곡을 여러 번 연습하고 통째로 외워 원테이크 녹화를 하는데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수십 번 반복해서 촬영을 하다가 이번엔 끝까지 가나보다 싶어 환호성이 나오려고 할 때, 집중력이 떨어져 막판에 한 곳을 틀려버리면 분한 마음에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실수를 해도 보는 사람들은 모르니 그냥 업로드하자 구슬리지만 갓 유튜버가 된 아들은 무결점 연주에 집착한다.


살벌한 분위기를 파악한 가족들은 이날만큼은 알아서 눈치껏 행동한다. 전화 통화 목소리가 큰 소음 유발자 아빠는 옷을 챙겨 입고 등산을 하러 나간다.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간 누나는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볼륨을 낮추고 숨죽여 드라마를 시청한다.


응원에 힘입어 이를 악물고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유튜브에 올릴만한 영상이 하나는 나오기 마련이다. 틀린 부분 없이 악보의 마지막 마디를 끝내고 촬영 종료 버튼을 누를 때. 그때의 후련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아들은 피아노를 치다가 이번엔 성공하겠다는 느낌이 오면 그때부터 온몸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말한다. 이런 긴장과 성취감에 중독된 녀석은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할 것 같다가도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새로운 곡을 연습한다.


촬영을 마친 영상은 내 손으로 넘어온다. 영상의 수평 맞추기, 불필요한 부분 자르기 등 자잘한 수정을 한다. 그러는 동안 과업이 끝나 홀가분해진 아들은 식탁에 앉아 오물거리며 치킨을 먹는다. 닭날개를 뜯는 뒷모습만 봐도 벅차고 뿌듯한 마음이 전달되는 듯하다.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자마자 구독자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이제 막 60명을 넘긴 구독자는 가족이거나 친척이거나 또는 그들의 부탁에 의리로 구독 버튼을 눌러준 사람들이거나, 그 외 몇 안 되는 아들의 친구들이다.


아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신비주의를 고집하기 때문에 친지들 사이에는 지나가던 사람인 척 댓글을 달아주는 불문율이 있다. 친분을 드러내지 않고 '연주를 잘하시네요', '연습을 많이 하셨나 봐요', '다음 곡 기대할게요' 정도의 말투로 댓글을 달면 만족해하는 것 같다. 이 분위기를 모르는 아들의 친구가 어느 날인가 반가운 마음에 댓글로 '형아 나야!' 하고 아는 척을 했다가 손절당할 뻔했던 시트콤 같은 일화가 있다.


구독자수, 조회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아들은 매일 브리핑을 한다. 어떤 동영상의 조회수가 늘었는지, 구독자는 몇 명 늘었는지, 어떤 영상을 통해 구독자가 생겼는지, 무슨 댓글이 달렸는지... 혹시 이 녀석 동영상의 통계를 외우고 있는 것인가 궁금하다. 한동안 코로나 통계에 꽂혀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매일 들여다보던 열정이 요즘은 유튜브로 넘어왔다.


아들의 목표는 채널 구독자 100명을 달성하는 것. 목표를 달성하면 갖고 싶어 하던 <쿠키런 어드벤처 42권 전집>을 사주기로 손가락을 걸었다. 오늘도 무한 엔지를 반복하며, 의자를 주먹으로 때리고, 바닥에 누워 몸부림을 치고, 눈물 콧물을 흘리고, 생각처럼 되지 않아 끙끙 앓는다. 잘 될 것 같은데 자꾸 실수를 하니 짜증이 밀려와 눈물을 흘리는 뒷모습을 본다. 그만하자고 끌어내려도 끝까지 고집 피우는 고약하고 징글징글한 성격. 너랑 똑 닮은 자식 낳아 고생 좀 해보라던 울 엄마의 저주가 또 이루어지려고 한다.


오열하는 뒷모습


상전께서 이틀째 초 예민 상태인 것을 알기에 키보드 소리가 방해된다는 원망을 듣지 않게 한 자 한 자 천천히 타이핑을 한다. 방문 밖으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몇 번씩 틀리긴 하지만 점점 끝까지 연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치킨을 시켜도 될까... 초조함을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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