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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Jan 02. 2021

코로나와 검색어


수도권의 거리두기 2.5 단계가 다시 연장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 가장 강력한 조치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1차 유행이 시작됐던 2-3월, 서울을 중심으로 2차 유행이 고개를 들었던 8월, 그리고 전국적으로 확산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규 확진자 그래프는 총 3번의 피크를 찍었다. 

출처: 구글 코로나 통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증가하는 시기마다 함께 증가하는 검색어가 있다. 검색이 일상이 된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검색창에 입력하는 키워드에 집약되어 있다. 확진자가 늘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사람들이 검색한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떠오르는 키워드를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DIY명화그리기


'DIY명화그리기'는 캔버스에 인쇄된 숫자를 따라 물감을 채색하면 명화나 영화 포스터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그리기 키트로, 피포페인팅(Pipo paint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색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컬러링북과도 유사하지만, 완성했을 때 실제 작품과 유사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만족도나 성취감이 크다. 


이 검색어는 확진자가 증가했던 시기와 일치하며 검색량이 증가한다. 외출을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엄두도 못 냈던 취미 생활을 이 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내 여가생활과 관련하여 '프랑스자수' 검색어와 보드게임 '루미큐브' 검색어도 명화그리기처럼 거리두기가 강화되었던 시점에 검색량이 증가했다.


아주 가끔 한 번씩 명화 그리기 키트를 주문한다. 오로지 손끝에 몰입해서 숫자를 따라 물감을 칠하면 머릿속이 맑게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일자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취미이기도 하다. 굽은 자세로 장시간 있다가 목이나 어깨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중간중간 스트레칭이 필수다.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층간소음매트 


아파트 거주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은 전 국민의 골칫거리이다. 아랫집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윗집에서도 나름의 고충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 때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던 아랫집 할머니가 윗집의 윗집에 가서 실컷 뛰며 복수했다는 유머가 떠돌았던 기억이 난다.


안팎을 들락날락할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발 망치소리가,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뜩이나 예민해진 사람들에게 크나큰 스트레스였다는 것을 검색량의 추이를 보면서 깨닫는다. 관리사무소에서 보내는 층간소음 안내방송의 빈도 역시 부쩍 늘었다. 같은 내용으로 자주 방송하는 것이 듣기 괴로울 때도 있지만,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그만큼 많은 것이라 생각하며 발소리에 조심하게 된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의 콩콩 딛는 소리가 아래층에는 소음이 된다는데, 대한민국에서 거리두기와 외출 자제 권고를 누구보다 잘 지키고 있을 영유아들이 가장 안쓰럽다. 어린 자녀들의 에너지를 방출시키기 위한 실내 놀이기구인 '미끄럼틀', '그네' 검색어도 코로나 확산 시기에 맞춰 증가한 것을 보면 부모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가정용프린터기 


온라인 수업이 1가구 1 프린터 시대를 가속화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과제를 출력한다. 엄마 아빠까지 재택근무를 하니 출력뿐 아니라 스캔 작업이 필요한 일도 은근히 많다. 사무실에서 대형 복합기로 쫙쫙 뽑아내던 것에 비하면 답답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비실비실한 잉크젯 프린터라도 하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프린터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에는 모두의 학업과 업무가 마비되어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노트북' 검색량도 트렌드가 비슷하다. 수업도 미팅도 기본이 화상 통신인데, 데스크톱 PC에는 카메라가 없고 휴대폰은 화면이 작으니 난데없이 노트북이 인기다. 데스크톱 모니터, 패드, 휴대폰, 노트북까지, 방마다 반짝이는 화면 몇 개씩은 기본이다. 기기가 늘어날수록 느려지는 와이파이 속도는 감수해야 한다.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비비고만두


비비고의 만두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검색하며 알았다. 고기만두, 왕교자, 김치만두, 한섬만두, 물만두, 얇은피만두, 감자만두...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만두였던가. 고향만두, 풀무원만두의 검색 횟수도 코로나 확산에 맞춰 증가했지만 비비고에 비할 바가 못된다. 비비고는 만두의 왕국이다.


먹성 좋은 가족들의 세 끼를 챙기다 보니 냉동식품, 간편식, 밀키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축복이다. 냉동이라 영양 손실이 많다거나 포장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온다거나 하는 걱정은 '간편함' 앞에서 잊는다. 최근 1년간 밀키트의 종류와 퀄리티는 또 얼마나 좋아졌던지.


비비고의 사골곰탕, 육개장 같은 즉석국도 확진자가 증가할 때 검색량이 따라서 늘었다. CJ의 외식과 극장 사업은 불황을 겪지만 가공식품과 택배는 최고의 호황을 만났다.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코로나로 얼룩진 한 해를 기억하게 해주는 검색어는 넘쳐난다. '노래방마이크'라던가 '와플메이커'라던가 '가정용게임' 같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사랑받은 수많은 검색어가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했던 시대에 열심히 검색했던 2020년의 키워드이다. 


처음 겪어보는 긴 터널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아직 2020년의 연장선에 놓인 기분이다. 이 환경이 '끝난다'는 것을 바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떨치고 현실로 돌아와야 할 텐데, 상황 좋아지고 만나자는 무의미한 인사를 수없이 건넨다. 2020년이 코로나의 시작이었다면 2021년은 적응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검색어를 보면 사람들은 어느새 포스트 코로나에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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