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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Jul 27. 2022

매버릭, 만약 회사원이었다면…

40대 남성들이 돌아온 ‘탑건’에 열광하는 이유

 요즘 주변에 카톡 프로필을 탑건 매버릭으로 변경한 분들이 꽤 있다. 카톡 프로필의 소개 문장 한 줄까지도 ‘중요한 것은 파일럿이다’인 탑건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40대 남성이 꽤 많다.

<H부장님, 카톡 프로필 무단 캡처 죄송합니다!>

주말에 극장에서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을 봤다. 40대 남성들이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탑건’의 국내 개봉일자가 미국보다 1년 늦은 1987년인 것을 고려하면 35년으로 볼 수도 있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40대 남성이다보니, 문득 '매버릭이 만약 회사원이라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매버릭이 만약 회사원이라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성공한 회사원은 아니다. 동기들은 진급을 해서 별을 달았는데, 만년 대령(영화 자막에 '대위' 나오는데 해군에서 captain 대령이 맞습니다)이다. 회사원으로 치면 만년 부장쯤 될까? 좋게 말해주자면 남들이 못하는 일을   있는 능력있는 회사원이다. 해군의 전투기 테스트 파일럿으로 마하 10 돌파하는 영화 도입부는 아주 강렬하고, 매버릭의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매버릭은 마하 10까지만 테스트를 하라고 했는데, 욕심을 부려서 결국 실험용 전투기를 전소시키지만 배려심 많은 동기의 배려로 불명예 전역당하지 않고, 탑건 교관이 된다. 별을 못단 매버릭은 진급에는 실패한 회사원이지만, 실력은 인정할 만하다. 18년간 회사를 다닌 나도 진급에는 실패한 회사원이다. 이런 내가 봐도 진급에는 실패했지만 뛰어난 비행 실력으로 해군이라는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매버릭의 모습은 부럽다.


 매버릭의 동기로 가장 성공한 콜사인(call sign) ‘아이스맨(iceman)’인 발 킬머. 영화를 보면서 아이스맨이 나이에 맞지 않게 왜 계속 매버릭과 휴대전화 문자만 주고받는 것일까 궁금했다. 실제로도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발 킬머와 매버릭이 재회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도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아이스맨과 매버릭의 포옹 장면을 보면서 ‘진급하면 뭐하나? 건강해야지’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이렇게 보면 만년 대위라고 해도 아들뻘인 탑건 교육생들과 해변에서 웃통을 벗고 미식축구를 하는 매버릭이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1986 영화 ‘탑건에서 매버릭은 베트남전에서 행방불명된 아버지 듀크 미첼에 사로 잡혀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군생활을 같이 했던 탑건 교관에게 행방불명의 진실을 알게 된다. , F-14 전투기를 함께 조종하던 가족같은 동료 ‘구스 비행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지만, 소련(그때는 러시아가 아니었다) 미그기와 화끈한 공중전에서 승리하고 항공모함에서 구스의 군번줄을 바다로 던져버리는 장면을 보면 매버릭은 과거로부터 완벽하게 탈출한 것 같다. 2022 ‘탑건:매버릭 매버릭과 탑건 교육생이  구스의 아들인 브래드쇼의 갈등이 핵심이다.


 매버릭을 회사원이라고 생각해보면 다시 과거에 연연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번만큼은 매버릭도 과거에 얹매여 자신의 길인 ‘인생 직진’을 실천하지 못한다. 동료인 아이스맨의 “It’s time to let go”라는 명대사에 매버릭은 고백한다.


“나는 교관이 아니다. 전투기 조종사다”


매버릭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과거에 얻매인 브래드쇼와 갈등도 본능에 따르는 전투기 실력으로 해결한다. 영화의 결말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브래드쇼와 갈등도 해결이 되었고, 적의 위험시설도 완벽히 파괴했으며 인생의 동반자까지 만나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한다.


 진급은 못했어도 본능에 따라서 전투기를 조정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평생 지키며 사는 매버릭. 정말 멋지고 부럽다. 하지만 현실에서 매버릭 같은 회사원의 실존 가능성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만큼이나 낮다.


첫째, 회사에서는 회사원으로 지켜야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매버릭은 규정을 자주 위반한다. 탑건 교육생들을 교육할 때도 비행 제한 최저고도를 위반하는데, 교육을 위해서 미리 비행 제한 최저고도 완화 요청이 포함된 교육계획서를 제출했다면 규정을 위반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영화에서는 매버릭의 동기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아이스맨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매버릭의 수호신, 아이스맨이 숨을 거두고  뒤에도 매버릭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회사에서 과연 규정을 위반한 직원에게 그렇게 관대할  있을까? 점점  냉혹해지는 현실의 회사에서는 처벌이나 진급 누락으로 끝이 아니다.  직원은 정리해고나 자발적 퇴사로 집에  확률이  높다.


둘째, 회사에서는 직급에 따른 관리 책임이 부여된다. 어떤 직군이라고 하더라도 연차가 높아질수록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보고라인에 속한 직원이 실수를  것의 최종 책임은 나다. 특히 위계질서가 중요한 군대라는 조직에서 더욱 그렇다. 부대 내에서 사소한 사고가 한건만 있어도 해당 부대 지휘관이 무사히 진급할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그래서 영화 속의 매버릭은 아무런 관리 책임이 없는 개발 중인 전투기 테스트 파일럿으로 등장한다. 회사에서 직급은 있지만 관리 책임이 없는 자리가 있을 확률도  자리에 있는 직원을 정년까지 고용해줄 곳은 많지 않다. 대행사, 대기업, 중소기업, NGO, 스타트업까지 다녀본  직장생활을 되돌아봐도 회사는 그렇다. 역시나 영화니까 매버릭은 대체 불가능한 전투기 조종사라는 것이 잘리지 않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전투기가 아니다. 파일럿이다. 5세대 전투기라는 수식어가 붙는 F-35 공중전을 1970 개발된 F-14 전투기로도 이겨버리는 매버릭이니까!


 40대 남성들이 ‘탑건:메버릭’에 열광하는 이유는 매버릭 같은 회사원은 현실에 없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X세대로 불리고 영화 ‘비트 나온 혼다 CBR 600F 같은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던 청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혼을 했다는 가정 하에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기 보다는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들의 직군과 직급에 관계없이 회사생활은  외롭고 힘이 든다. 가족 때문에 오토바이는 처분하고 자출을 하고 있다. 40 남성들도 매버릭은 동화 속의 왕자님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회사원과 아빠라는 역활에 묻힌 자신을 생각하게 해주는 피터팬 같은 존재다. 네버랜드에서 늙지 않고 영원히 소년으로 살아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버릭이 회사원이라면이라는 우울한 상상을 잊게 만든다. 매버릭은 결혼을 안 해서 그런 것인지 모하비 사막에서 혼자 산다. 커다란 개라지에는 클래식카와 가와사키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2차 대전 때 활약한 P-51 머스탱도 갖고 있다.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머스탱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버릭을 보면서 역시 군인이라서 오래 복무하면 호봉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 군인 연금을 당겨서 받은 것인지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이은 멋진 프로펠러 비행기 비행 장면이었다. 이제 배우인지 가수인지 구분이 모호한 레이디 가가의 주제곡이 그 몽환적인 느낌이 더했다.

<주말에 집을 뒤졌더니 ‘탑건’ DVD가 한장이 아니라 두장 나왔다. 꺼낸 김에 아내와 한번 뵜다>

어차피 회사원이 아닌 영화 속의 매버릭 걱정은 그만하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18년째 회사원인 원이 아빠는 빨리 출근해야겠다. 회사원들의 아침 최우선 과제, 지각은 하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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