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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Aug 05. 2022

[육아일기 20220804-5] 안돼! 정신 차려!

아들의 열경련

 오후에 아내에게 톡을 받았다. 어린이집에서 아들이 낮잠을 자고도 피곤하다고 해서 선생님이 열을 제어 보니 열이 좀 있다고 했다. 보육 이모님이 병원에 데려가시기로 했고, 나는 태권도 학원 관장님께 오늘은 태권도를 못 간다고 연락을 드렸다.


 오후 6시 ‘땡’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왔다. 의외로 아들은 말짱했다. 아들은 택배가 도착했지만 내가 바빠서 뜯어보지 못한 턴테이블이 뭔지 궁금해했다. 옷도 못 갈아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택배 상자를 열고 턴테이블을 연결했다. 가지고 있던 레코드판 중에서 카펜터즈(carpenters) 싱글즈(The singles 1969 - 1973) 앨범으로 테스트를 했다. 소리가 잘 나는 것을 확인하고 뒤집어서 B사이드를 틀었다. B사이드 첫곡은 Yesterday once more이었다.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 for my favorite songs ~”


내가 카펜터즈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들의 열경련 사건을 예고하는 복선 같다. 열경련이 절대 다시 반복되면 안 되니 ‘Yesterday once more’은 이제 나에게는 금지곡이다.


 아들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샤워 없이 세수랑 손발만 씻고 잠을 자게 했다. 아들 옆에 누워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도 되지 않았다. 아들이 곧 잠이 들었고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새벽 2시쯤이었다. 아들이 열 때문에 힘든지 몸을 뒤척였다. 아내랑 함께 물수건으로 열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별 효력이 없었다. 오전 6시가 되니 아들 몸이 뜨끈뜨끈했다. 부랴부랴 열을 재어보니 40도. 황급히 아들 옷을 벗기고 열심히 물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갑자기 아들의 얼굴에 아니 입술에 청록색이 보였다. 이미 아들의 열경련을 한번 경험한 아내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너무 놀래서 좀 멍한 상태였다. 아들이 침대에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떨림이 길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의식이 없어 보이는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고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다. 아들이 입을 앙다물고 몸을 떨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구토를 하면서 기도가 막히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손가락을 아들 입에 넣었다. 아들이 이빨로 내 손가락을 깨물었지만 참고 손가락을 넣어서 입을 벌리도록 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아들이 점점 내 손가락을 세게 물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가락을 뺐다. 아내가 황급하게 스마트폰으로 119로 전화를 해서 구급차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아들을 침대 아래로 데려와서 앉히고 계속 말을 시키고 있었다.


"안돼! 정신 차려!"


 아들에게 아빠를 보라며 계속 말을 걸었는데, 아직도 아들의 입술은 약간 청록빛이었다. 아내가 통화를 하면서 119 구급대원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해야 할 일들을 듣고 있었고, 나는 한 손으로는 아들의 등을 받치고, 필사적으로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빠를 보라고 몇 번을 외쳤는지도,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나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행히 넘어질 듯 앉아있던 아들이 눈동자를 움직여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힘이 들어 보였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눈동자를 움직이려고 힘을 쓰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 주무시던 보육 이모님도 달려오셔서 할머니를 보라고 하셨다. 이제 아들이 의식은 있는 것 같아서 아내와 함께 아들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달려 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소방서 구급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아들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가 아들의 마스크와 크록스를 가지고 돌아왔고, 구급차에는 보호자 1명만 동행할 수가 있어서 아내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집에 돌아오자 맥이 풀렸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나도 아들이 가는 응급실로 따라가야 하니까... 옷만 갈아입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혹시 아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있으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아들의 청록색 입술이 떠올랐다. 이렇게 무력한 느낌은 아들의 영아산통 이후로 처음이다. 저녁에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새벽에 아들이 두 번이나 찬물을 달라고 말해서 찬물을 가져다주었던 것도 자기 딴에는 열을 내려보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내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고 아내는 우선 아들이 상태가 나쁘지는 않고, 집 근처 아산병원 소아응급실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멍한 상태로 전화를 끊고 주섬주섬 차키와 전화기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블랙커피 한 캔을 챙겨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소아응급실이라고 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스마트폰 네이버 지도에 목적지를 아산병원 응급실로 입력하고 출발했다. 주차장은 장례식장 옆에 송파구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에 차를 주차했다. 아산병원은 예전에 자전거 배달을 할 때 자주 와서 건물 위치를 대강 알고 있는데, 소아응급실은 신관 옆에 따로 있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주차한 차를 옮기기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걸어서 소아응급실 앞으로 갔다.

 소아응급실 앞에서 '소아응급실'이라는 간판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들과 함께 저문 너머에 있었고, 나는 기다려야만 했다. 요즘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미친 듯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참 미안하고 괴로웠다. 별일이 없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다독여보았지만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해주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의 열경련을 오늘 처음 본 것인데, 아내는 이게 두 번째 하는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고 미안했다.

 

 아마 2년 전, 아들이 처음 열경련이 났을 때는 나는 밖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아들이 현관문 앞에서 열경련이 났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귀담아듣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아내는 아들이 열이 날 때마다 열경련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너무 미안했다. 제발 이 미안함을 보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아응급실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역시나 나는 가끔은 무기력한 애아빠 아니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가호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나약한 인간...


 오전 7시 15분, 드디어 아내와 아들이 진료를 받고 소아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아내에게 안겨있기는 했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는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은 똘망똘망했다. 의사에게 처방을 받은 경련을 막아주는 약은 병원 약국에서만 받아갈 수가 있다고 했다. 아침이지만 더웠고, 병원 약국이 문을 여는 오전 7시 50분까지 기다려야만 해서 병원 신관 건물로 갔다. 아침이지만 인파가 북적이는 신관 건물 안은 생각보다 후덥지근했다. 청소를 하는 병원 직원이 정전기포로 바닥 먼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의자에 앉은 우리 일행에게 발을 좀 들어달라고 했다.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저편에서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엇 때문에 울먹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할머니의 일행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이동했다. 역시 나에게는 병원은 언제 와도 유쾌하지 않은 곳이다.


 아내가 더우면 아들이 열이 날 수 있으니, 차로 가자고 했다. 내가 차를 주차한 주차장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아들은 무등을 태워서 걸어갔다. 내 어깨 위에서 아들이 까불거리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아들이 들썩들썩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무등, 자주 좀 태워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차를 타고 신관 지하 2층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를 하고 에어컨을 틀어야 해서 자동차 시동을 끄지 못했다. 아내가 혼자 약을 받아오겠다고 했다. 운전석에서 백미러로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 아들을 보았다. 안도감과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들이 물놀이를 좋아해서 수영장이 있는 캠핑장을 2달 전에 예약해 두었는데, 이번 주말 캠핑도 취소라고 생각하니 허탈했다.

 아내가 회사에 오전 반차를 사용해서 아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출근을 하고 나서 아내가 보낸 사진을 보니 아들은 죽을 먹고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다짐을 해본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다 보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40세가 되면 달리기 선수들의 생체시계는 한물갔다는 뜻에서 '언덕을 넘었다'라고들 말한다. 이 나이가 되면 궁금해진다. 힘을 다할 수 없는데도 계속 달려야 할지, 아니면 쉬어야 할지 말이다. 최선을 다해 뛰는 건 어렵지만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어렵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죽는 날까지 계속 열심히 달려볼 수도 있지만 지금껏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 '뛰는 사람: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 저 135페이지 중에서 -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이제 언덕을 넘은 나이다. 하지만, 계속 달릴 거야. 네가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빠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아빠가 최소한 거기까지는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 달리려고 해. 너 혼자 세상으로 달려 나가려면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해. 그때까지는 아빠가 코치이자 페이서(pacer)가 되어줄게. 빨리 다 나아서 이번 주말도 아빠랑 재미있게 놀자.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누구?

그래, 바로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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