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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sumer Aug 27. 2022

목포는 항구다!

험난했던 제주도 상륙작전

 내가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만든 이어폰을 제주도의 한 리조트 대표가 관심 있어한다며 공동 창업자에게 연락이 온 것은 몇 달이 지난 일이다. 연락을 준 리조트를 찾아보았더니 골프장이었는데, 다른 스포츠도 할 수 있도록 리조트를 리뉴얼한다고 했다. 리뉴얼을 하고 인플루언서들을 불러서 행사도 한다고 했고, 행사 때문에 출장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후에 연락이 뜸했기 때문에 지난주까지는 이 행사는 내 머릿속에서 잊힌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리조트에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어폰도 30개 구입하겠다고 했다. B2B 판매로 매출이 증대되는 좋은 일인데 문제는 행사 전날인 금요일까지 제주도로 이어폰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연락을 받고 택배로 발송을 하려고 했더니 금요일까지 제주도 리조트로 도착한다고 개런티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비용이 발생해도 어쩔 수 없으니 항공 특송을 알아보았는데, 이어폰과 이어폰 휴대 케이스에 포함된 리튬이온 건전지 때문에 국내 항공 운송이 불가능하다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요일, 제주도 리조트 행사 때에 맞춰서 이어폰 30개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것이었다. 대중교통과 연계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은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KTX 혹은 SRT를 타고, 목포에서 제주까지 배를 타야만 했다. 배를 먼저 알아보니 목포에서 토요일 자정에 출발해서 제주도에 새벽 6시에 도착하는 배편이 내 출장 일정에 적당했다.


 배를 타본지 참 오래됐다. 해외에서는 홍콩과 태국에서 강을 건너는 유람선을 타본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배를 탄지는 10년 정도 전이다. 아웃도어 회사에서 근무할 때, 대한적십자사 직원들과 함께 연평도로 봉사활동을 갔던 것이 가장 오랫동안 배를 탔던 기억이다. 이번 출장 때는 목포에서 제주까지 6시간을 배 위에 있어야 한다니... 요즘 유행하는 아예 차를 가지고 배를 타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포기했다. 차 때문에 돌아올 때도 배를 타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네이버로 검색을 해서 목포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예약했다. 군대 내무반 닮은 다닥다닥 붙은 이코노미 선실 사진을 보니, 저기서 잠을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KTX 티켓은 목포 20시 48분 도착인데, 승선이 시작되는 22시까지 아니 승선을 해도 배가 출항하기 전까지는 뭘 해야 될지 막막했다. 이제 회사라는 곳에 다닌 지가 곧 20년이 되는데 아직도 모르는 일도 많고 막막한 일도 많은 것이었다. 이놈의 배는 소중한 금요일 오전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하면 선박회사 웹사이트에서는 예약 조회가 불가능했다. 통화가 잘 되지 않는 선박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확인했다. 전화를 받은 남자 직원이 '성식'이라는 이름으로는 예약이 없다고 했고, 다행히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니 예약이 되어 있고, 점심이 지나면 안내 문자가 갈 것이라고 했다.


 이상하게 점심에 한솥도시락이 먹고 싶어서 한솥도시락 돈가스 카레를 후다닥 먹고 안내 문자를 기다리는데 문자가 오지 않았다. 이놈의 배! 배! 다시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다가 바빠서 전화를 하지 못했다. 강남에 있는 사무실에서 용산으로 KTX를 타러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아니고 카톡이 왔다. 이 메시지를 받은 분들은 목포항으로 승선을 하러 오면 된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배 때문에 골머리가 아파서일까? KTX에서는 책을 좀 보다가 아주 숙면을 했다. 목포역에 내려서 길을 건너서 검색해둔 2번 버스를 타려고 했다. 5분 정도 지나니 2번 버스가 도착했다. 혹시 모르니 여객터미널을 가는지 기사님께 여쭈어보니 기사님께서 무뚝뚝하게 안 간다고 하셨다. 1.5km 정도 거리라서 택시를 타기도 좀 애매했고 걸어서 목포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 KTX역과 가까운 거리에도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아서 활기가 없었다. 먹자골목 쪽에는 루미나리에처럼 예쁘게 조명을 켜 두었지만 가게들에서 나오는 불빛이 없으니 을씨련스러워 보였다. 항구 쪽으로 가는 거리의 건물들은 예전에 가본 군산에서 본 건물들과 느낌이 좀 비슷했다. 금방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발권은 21시부터 시작이라서 씩씩하게 발권을 하러 갔더니 창구 직원이 예매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예매번호를 여행사에서도 선박회사에서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을 하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고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발권을 해주었다.   티켓을 하나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여객터미널의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가족 여행, 고등학교 동창 여행, 자전거 동호회 모임  나처럼 혼자 배를 타는 사람보다는 단체 손님들이 많았다.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승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화통화 내용으로 추측해보면 화물차 운전기사들인  같았다. 22 승선이 시작되자마자 승선을 해서 이코노미 객실로 가지 않고, 카페테리아로 가서 오뎅이  꼬치 들어간 우동과 맥주 한잔을 급하게 마셨다. 허기가  가시고 나니 기분도  좋아졌다. 22 30분에 아빠는 출장을 갔지만, 엄마가 있어서 즐거운 아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이코노미 객실로 가니 다이빙 동호회 분들로 보이는 분들이  있었다. 문에 가까운 자리가 비어 있어서  싸게 매우   더플백을 자리에 놓았다. 가방에서 베개를 꺼내어 잠자리를 완성한 뒤에 배를 구경하러 갔다.


 5, 7층에 올라가서 출발하기  야경을 보았다. 야경은 시커먼 바다와 바쁘게 움직이는 목포 항구의 사람들이 대조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이미 의자를 야경이 보기 좋은 곳이나 인원수에 맞게 옮기고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7층에 올라가서 측면 쪽으로 가니 전라도 사투리를 겁나게 쓰는 아저씨  분이 하굣길 여고생들처럼   없이 떠들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 누구 탓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들이라서 별로 아름답지는 않았다. 나의 출장의 동반자 무선 이어폰을 꽂고 기네스 흑맥주 캔을 들고 망망대해를 보면서 촉촉한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바다 야경도 좋았지만 문득 하늘을 보니 밤하늘도 참 예뻤다.

배가 나오는 영화들을 생각하면서  영화음악들을 이어서 들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영화는 제인 마치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했던 영화 '연인'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제인 마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였다. 국내에서 김지호 씨를 광고 모델한 화장품 광고는 영화 '연인' 콘셉트를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었으니... 영화 '연인' 영화음악은 가브리엘 야레가 작곡했는데, 잔잔하고 좋았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영화 '베티 블루' 삽입된 'C'est le vent Betty' 생각났다. 촉촉하지만 쓸쓸한 바람 같은 음악이었다. 다음에 생각난 영화는 '포세이돈 어드벤처'였는데 삽입된 영화음악이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나  상상력의 한계는 영화 '타이타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평소에  자주 듣던 영화 '그랑블루' 있었는데, 셀린 디옹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선실로 갔다.

 선실에는 다이빙 동호회 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전거 동호회 분들이 쭉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수화물로 적재했겠지만 자전거 헬멧이 머리맡에 놓여있으니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배가 계속 흔들려서 잘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한 4시간 정도 잘 잤다. 하지만 이후에 과음을 하고 돌아온 자전거 동호회 아저씨가 떠들어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선실에서 나가면서 보니 이미 화물차들부터 해가 뜨는 제주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분들도 신나게 시동을 걸고 계셨다. 술 취한 자전거 동호회 아저씨만 빼면 걱정이 많았던 제주도 상륙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영화 '퍼펙트 스톰' 같은 날씨가 아니었던 것에 감사하며 '부두 4'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내가 타려는 버스는 첫차였다. 버스 도착 안내판에 '곧 도착'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내 걱정만큼 큰 더플백을 잠시 바닥에 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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