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써보긴 하는데, 글이 별로예요.
퇴직자 모임에 신규 회원이 발생했다.
퇴직동기 7명이 시작한 모임인데 퇴직 7년 차를 지나는 동안 5명의 퇴직자가 더 모여서 12명이 되었다.
더러는 다시 직장을 잡고 일을 하고 있고, 나처럼 방황하는 백수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여러 가지 배움 활동을 하는 이도 있다.
무직자인 여럿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이 너무 좋다에 서로 동의하지만,
각자에겐 드러내지 않더라도 자기 계발과 자아발견의 고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게 돈을 버는 일일까.
정당하고 보편적인 노동으로는 큰돈을 벌 수는 없는 나이이다.
리스크 회피는 은행원의 가장 우선적인 사고회로 이므로 은행원의 기질이 강한 나는 사업을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 시간을 쓰는 일이 가치 있고 스스로 만족하거나 기꺼이 좋아할 일을 찾는 일이 우선이다.
자기 효용성.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모임 속 우리는 묘한 결속감과 허술하고 무심한 듯 하지만 단단한 의리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다.
퇴직 5년이 넘어가는 데 아직 좋아하는 걸 찾지 못했다는 후배직원의 고민에
“아직 급하지 않다며, 천천히 좋아하는 걸 찾으면 된다 “고 이야기해 주시는 어른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게 좋다.
시간을 번 기분이다. 아직 급하지 않구나. 더 생각해 봐도 되는구나.
그때, 갑자기 다른 선배님이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김 차장은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예? 갑자기요? 나는 많이 당황했다.
은행에서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은행에서 글씨는 쓴 적이 있어도 글을 쓴 적은 없는 것 같은데……퇴직 후에도, 뭐라도 싶다는 이야기를 한 지인은 극히 소수이다.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글을 쓰면 좋겠다고, 본인도 글을 쓰고 싶어 할 것 같은데,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좀 많이 놀랐다.
게다 요즘 나는 내가 글을 못쓰는 사람인 걸 알게 되어서 또다시 고민하는 중인데,
글을 쓰면 좋겠다는(지나가는) 말씀에 오만 생각이 스친다.
내가 글을 지속해서 쓰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 좋겠다는 그 말에 나도 모르는 모습을 봐준 것 같아 힘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어차피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이나 목표는 없으니, 그냥 쓸 때까지는 써볼까 싶다.
내가 독자가 되는 글을 쓰지 뭐. 계속.
(아울러 제 비루한 글을 매번 세심히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