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안 보여.
언젠가부턴 새로운 가게에 가면 그 가게의 메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리에 앉고 어찌어찌 대충 주문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천천히 메뉴판과 가게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카운터에서 선 채로 주문하는 카페에 가면 그 많은 메뉴판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어차피(다행히) 내 커피취향은 늘 “뜨아”다.
나: (둘러보는 척 하지만 막상 읽힌 건 없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직원: 원두 골라주시겠어요?
나:(두리번두리번) 원두요? 뭐 있는데요? (보는 척은 한다. 빨리 주문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으므로 안 읽히는데 대충 말한다) 산미 있는 거 있으면 그걸로 주세요.
직원 :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글씨 안 보여? 이 아줌마 뭐야... 속으로 한숨을 쉬는지도 모르겠다) 네. A타입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맞으시죠?
나: 네. 그거 주세요.
직원 : 사이즈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레귤러, 그란데 골라주세요.
나: 네~! (내 귀에는 레귤러만 들린다. 진짜로) 그거 주세요.
직원 : 사이즈 골라주세요. (강조한다. 아니 아줌마야 고르라고....) 레귤러와 그란데 뭘로 드릴까요?
나 : 아, 레귤러 주세요....(많이 머쓱하다)
직원 : 영수증 필요하세요? 블라블라... 친절하지만 기계적인 응대....(이게 그들에게 최선임을 알고 있다. 내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첫눈에 메뉴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직원의 응대멘트가 다 들리지 않는 것.
이것은 시력과 청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감각이 둔해져서 주변의 소리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나이
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 안 늙어본? 젊은 직원들은 알리가 없다. 아줌마 참 답답하네. 하는 마음도 들 테고,
어쩌면 나처럼 사소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대답을 하는 아줌마들을 상대하느라 지치지 않을까 싶다.
행여 오해할 까봐 덧 붙이자면, 나... 염치없고 몰지각한 아줌마는 아니라는 점 미리 밝혀둔다. 오히려 민폐인 상황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에 속한다.
최근에 아이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커피와 티라미수 케이크가 맛있는 집이라는 후기가 있었다.
티라미수 케이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동네 신상카페도 소개해주고, 티라미수 케이크로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다.
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어리바리 음료를 주문을 하고 난 후, 카운터 옆에 케이크가 놓여있는 유리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큐브 케이크하나를 가리키며 이게 티라미수냐고 물었는데, 직원이 오늘 티라미수는 품절이라고 답하고, 아이는 티라미수 없네라고 동시에 말했다.
티라미수 주문을 못해 아쉽지만, 음료만 주문하고 편한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진지하고 조용히 묻는다. (아이도 엄마가 이해가 안가는 눈치다. A냐 B냐를 물었는데, 예라고 대답하는 엄마. 뻔히 보면서 물어보는 엄마) 엄마 아까 글씨 못 봤느냐고... 진열장 위에 글씨가 있었다고.
난 거기 쇼케이스가 있는 걸 알아차린 내가 대견하던 차였는데, 글씨가 있었다니... 다시 돌아보니 쇼케이스 위에 화이트로 각각 케이크의 이름과 가격이 쓰여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텅 비어있는 티라미수 케이크 자리.
식당에 가도 메뉴와 가격이 눈에서 뇌까지 전달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동행이 알아서 시켜주면 그게 그렇게 고맙다. 주문 후엔 따로 메뉴판 정독에 들어간다. 그때는 편하게 읽힌다.
언젠가부터 이런 행동 패턴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해졌다.
나도 이런 내가 편치 않지만, 천천히 나를 이해했다.
감각이 둔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나처럼 정보인지 속도가 둔해진 독자가 있다면 그 사실 만으로 큰 위안이 될 것 같고,
혹시 서비스 응대를 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중년들의 버둥거림을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는 마음이다.
나이 드는 건 싫지 않은데, 나이 듦에 포함되는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