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것들에 대하여
맑은 날이 그리웠던가.
일없이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
내 눈으로 보는 이 파란색이 보이는 것의 끝이어야 하는데, 저 파란색 뒤에 까만 우주가 있다는 상상은 할 수 없다.
‘저 파랑이 끝이어어야 해. 까망은 없어.’
그런 감성도 아닌 멋도 아닌 헛소리가 담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 때리는 중에도 생각은 떠오르고 그런 잡생각들은 그냥 떠다니게 두라고 했던 글귀도 머릿속을 스쳐갔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랑으로 완벽하게 채워진, 아니 비워진 하늘이 파랗게 빛나는 것.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또 스치는 생각들.
그러다 비행운이 생겼다. 어떤 비행기는 흔적 없이 하늘을 가르고, 어떤 비행기는 비행운으로 여정을 남긴다.
비행기가 내뿜는 고온의 배기가스가 영하 4,50도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생긴다는 그 비행운을 바라보며 파랗고 투명한 하늘 뒤에 까만 우주라는 명제를 가진 대자연의 신비와 맨 몸으로도 내 몸하나 허공에 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거운 철과 의자로 만든 기계에 사람과 짐과 화물들을 싣고 하늘을 날아가는 인간의 위대한 기술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이런 생각들이 또 머릿속을 떠다니게 냅두다가 대개는 직선인 하늘길이 눈앞에서 커브로 바뀌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반대방향으로 주행하는 비행기 두대. 마치 도로 위 신호등이 켜진 사거리를 교차하듯 날아가며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각도로 커브를 꺾고 날아간다.
이제 그만 멍 때리고 간단한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운동 삼아 걸어 도서관에 좀 다녀와야 하는데, 눈앞에서 펼쳐진 신기한 비행쇼에 잠시 더 넋 놓고 앉아있어 본다.
이내 곧 사라질 테지, 이 신기한 비행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있었을 지도. 어쩌면 매주 목요일 이 시간대 하늘에선 늘 있어 온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차한 후 커브를 튼 비행운이 사라지기 전에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본다.
어쩌면 살면서 다시는 못 볼 순간일 수도 있고, 우연히 하늘을 보다 다시 이 교차하며 커브 하는 비행기들을 다시 보더라도 그때는 오늘 만큼 신기하지는 않을 테니까.
매번 직선인 비행운만 보다가 여행지 이태리에서 곡선으로 나르는 비행기가 만든 비행운을 보고 한국에선 비행기가 직선으로 나는데, 이태리 비행기는 곡선으로 난다며 신기해했던 후로 내가 사는 하늘에서도 곡선비행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던 것처럼, 이 교차하며 커브 하는 비행을 다시 볼 가능성이 높지만 또 보게 되더라도 오늘만큼 신기해하지는 않을 테니 오늘의 신기함을 글로 남겨본다.
오십이 다 돼도 매일 신기한 것들이 생기는 것이 참 신기하다. ‘오십이 다 돼도’를 쓰고 바라보는 마음이 낯선 것도 참 신기하다. (이제 오십에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