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에 대한 서구의 일방적인 해석과 전유
문화적 전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 열렸던 샤넬의 2016년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가 떠올랐다. 배운 대로라면 문화적 전유에 해당될 것 같았고, 이 패션쇼에 불편감을 비춘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필자의 생각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 자료도 찾지 못했고, 문화적 전유를 의심했던 생각에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잘 모르는 거겠지’하고는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한참 뒤 문화적 전유에 대한 외국 도서(Kawamura)를 읽게 되었는데, 샤넬의 한국 패션쇼가 문화적 전유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했다. 의심이 맞았던 것이다. 한국어로만 자료를 찾아봤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열린 패션쇼이고, 한국의 전통 복식에 대한 이야기니 한국에서 논의가 시작되었을 거란 가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한복의 문화적 전유에 대한 논의는, 외국에서 더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샤넬의 패션쇼를 살펴보기에 앞서, 문화적 전유의 개념을 정확히 짚어보자. ‘전유’의 사전적 의미는 ‘혼자 독차지하여 가짐’이라는 뜻이다. 문화적 전유란, 이전 아티클 "히잡은 여성을 억압하는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외부의 문화 요소를 창작 과정에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다. 빌려 쓰는 ‘차용’의 개념과는 달리, 전유는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맥락이 있다. 그렇다면 패션 분야에서 문화적 전유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패션은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독창성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 속에서 영감의 발굴이라는 과제를 항상 수행해야 했다. 영감을 찾는 시선은 주로 타국의 문화로 향했다. 외부는 새롭고 낯선 대상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폴 푸아레는 일본이나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복식을 디자인에 참고했고, 마르지엘라는 일본의 타비(Tabi)를 활용했다. 서구의 디자이너들은 외부의, 특히 동양의 문화를 쉽게 가져와 영감으로 활용했고,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둘째, 패션은 서구 중심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패션은 다양한 국가가 비슷한 시기에 복식의 현대화를 겪고 동등하게 교류한 것이 아니라, 서구 국가에서 ‘먼저’ 구축한 패션 시스템을 통해 비서구 국가의 문화를 ’자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서부터 이어진 세계의 권력 구조가 존재한다. 문화적 전유는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지배적 맥락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비서구권 문화가 이질적이라고 여겨지는 것 자체가 서구 중심적 사고이며, 동양의 문화는 그동안 타자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영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로 비서구 문화의 주변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샤넬의 2016 크루즈 컬렉션에는 어떤 문화적 전유가 나타났을까? 샤넬에서 한복을 잘못 표현한 방식을 세 가지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한복에 대한 논문 「현대 외국인 작가의 삽화에 나타난 한복 이미지」에서 제시된 기준을 활용했다. 본 논문에서는 아동도서 삽화를 분석하여 서구의 시각에서 인식된 한복 이미지를 유형화했는데, 샤넬 컬렉션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사례가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1) 구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형태의 변형
한복의 요소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서구 복식과 달리 평면으로 제작되는 한복의 구성*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조를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다. 예를 들어,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떨어지는 선은 평면으로 제작된 저고리가 입체적인 인체에 입혀졌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인데,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여 솔기처럼 표현했다(사진 1). 깃도 목 부분의 가장자리를 마감한 형태가 아니라, 추가적인 장식 요소로 변형되었다(사진 2). 오른쪽 사진은 언뜻 보면 배자를 표현한 것 같지만 구성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실루엣이 나타난다(사진 3). 배자는 평면으로 재단되어 직각의 어깨선이 나타나지만, 사진은 동그랗게 어깨의 입체적 형태를 따르고 있다.
*구성: 의복의 구성이란, 디자인, 제도, 재단, 봉제에 이르는 의복 제작 작업을 의미한다.
2) 서구 복식의 실루엣과 디테일
전체적으로 서구 복식 기반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따로 놓고 보면 한복에 대한 컬렉션인지 모를 만한 디자인도 많다(사진 4). 재킷과 셔츠가 자주 등장하고(사진 5), 심지어 저고리의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깃이 칼라와 라펠**처럼 표현되어 테일러드수트의 요소가 드러나기도 한다(사진 6).
**칼라(collar)와 라펠(Lapel): 칼라는 양복에서 목 주위에 두르는 옷깃을 의미하고, 라펠은 코트 앞몸판이 칼라와 연결되며 접혀진 부분을 뜻한다.
3)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일반화
서구의 시각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문화는 ‘동양적인’ 느낌으로 일반화된다. 각 문화별 고유한 특징은 배제되고, ‘동양풍’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치환된다. 이 컬렉션에도 중국과 일본 문화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우선 좌측 사진은 머리와 화장 스타일로 인해 중국의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또한 우측 사진은 나전기법이 연상되는데, 옷의 형태 때문에 치파오와 같은 느낌이 난다. 나전처럼 삼국에서 모두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은 각 국가별 고유한 차이에 더욱 주의해서 표현했어야 한다.
이외에도 쪽진 머리를 두 쪽으로 나누어 양 갈래로 땋아올린 모습이나(사진 9), 금발의 모델이 검은 가채를 써서 가채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점(사진 10) 등 의미와 기능이 달라진 지점이 있다. 또는 전통적인 색채가 두드러지는 착장에서는 유독 시스루나 신체를 노출하여 섹슈얼한 표현이 눈에 띈다는 점(사진 11)에서도 동양에 대한 신비스러운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향이 나타난다.
이 컬렉션에서는 배씨댕기 등에 쓰이는 꽃 장식이나 나전칠기, 조각보와 같이 한국의 여러 전통문화 요소가 나타난다. 시각적 모티프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구가 한복을 ‘대강’ 바라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색채와 문양 등의 시각적 효과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유도했을 뿐이다. 한복의 형태와 무관하게 ‘임의로’ 변형한, 서구의 방식으로 이해한 일방적 해석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샤넬의 컬렉션을 통해 한복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면 좋은 일 아닐까? 이미 기울어진 서구와 동양의 권력 구조에서 우리의 전통이 더 주목받고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긍정적인 흐름이 아닐까? 노르웨이의 가수 오로라(Aurora)는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수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직접 입어서 알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겐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오로라가 입은 한복은 그 어디에도 한국의 문화와 역사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한복을 입은 거라면,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복의 이질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이는 일방적인 서구 중심적 시각이다. 그렇다면 타국의 전통문화는 상업적 목적으로, 충분한 맥락의 제시 없이 활용해도 괜찮은가? 우리의 전통문화는 외국 사람의 상업적 전략으로 활용되어도 괜찮은가? 문화에 대해서는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지만, 타국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은 권장될 만한 것인가? 영감이라는 명목으로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누군가는 쉽게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구 국가이기 때문에 더 쉽게 타국의 문화를 선점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타국의 문화를 빌려오겠다는 결정이 가능한 것 자체로 서구의 디자이너/아티스트가 누리는 권력적 위치와 선진화된 시스템을 드러낸다. 왜 우리는 직접 한복을 일상화하지 못했고, 샤넬이 한복을 재해석하는 것에 환호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샤넬이 한복을 해석하는 것에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는가? 우리는 주체적인 시각을 잃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국의 문화만 활용해야 할까? 서로의 문화를 쉽게 접하고 교류하는 다문화 시대에, 자국의 문화를 창작에 활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를 통해 더 활발한 문화 예술 활동을 펼쳐나간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장려하는 동시에 문화적 전유를 지양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현하고 진정성 있는 노력을 전개한다면, 오히려 소외되어온 문화권에 새로운 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로에베(LOEWE)의 ‘모노크롬 컬렉션’이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은 사례다. 모노크롬 컬렉션은 중국의 단색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핸드백 컬렉션으로, 중국의 도예가와 박물관 교수가 참여했다. 지역의 장인과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중국 도자기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시하고 외부의 일방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 또한 로에베는 중국의 도자 대학에서 단색 도자기 교육 프로그램을 후원한다. 주변화되어온 문화에 주목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문화 계승을 위한 노력까지 연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충족되더라도, 권력적인 배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서구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수용하게 된 동양권과는 달리, 이들은 자발적으로 타국의 문화를 선택하고 수집하고 변형할 수 있다. 패션을 형성할 수 있는 기준과 권한이 마치 서구에만 존재하는 듯한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방적인 시선과 선택에서 벗어나 진심 어린 존중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전유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다소 모호하고, 지나친 검열이 창작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걱정하기엔 비판적인 의견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서구 중심적 시각은 우리의 뼛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외부의 시각이 섞인 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 때문에 우리 문화가 갖고 있는 내재적인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 또한 샤넬의 한복 디자인에 대해 아무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환영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우리는 한복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과 노력을 요구해야 했다.
참고문헌
Yuniya Kawamura, 『Cultural Appropriation in Fashion and Entertainment』 Bloomsbury, 2022
고윤정, 임은혁. (2023).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한국 전통문화 활용에 나타난 진정성 분석 - 구찌를 중심으로.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23(1), 35-51
고윤정, 임은혁. (2021). 현대 외국인 작가의 삽화에 나타난 한복 이미지 - 2000년대 이후 출판된 아동도서를 중심으로. 복식문화연구, 29(3), 328-345
이명선, 임은혁. (2020). 현대 패션산업에 나타난 문화적 전유와 재현. 한국복식학회, 70(4), 54-64
이 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안티에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