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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l 30. 2024

투명하지 않은 투명성

패션 산업 공급망 투명성 논의의 근본적 한계

최근 디올 가방 원가가 8만원이며, 가방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에서는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아르마니, 로로피아나 등 많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언급되었다. 그동안 패션 산업 공급망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표적인 키워드는 ‘투명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착취의 구조는 꾸준히 폭로된다. 왜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는가? 투명성이라는 개념은 어떤 한계를 품고 있는가?



투명성은 어떤 개념인가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개념은 여러 맥락에서 다루어지지만, 패션 산업에서 투명성이란 주로 공급망의 투명성을 의미한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해외 아웃소싱으로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패션 기업의 공급망이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공급망의 비가시성은 착취의 현장을 은폐한다. 이때 착취란 사람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모두 포함한다.


패션 산업 공급망의 착취가 폭로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2013년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를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에는 H&M, 베네통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의류 공장이 위치해있었는데, 피해 규모가 매우 컸고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한 인재였기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고로 노동자들의 저임금, 강도 높은 근로시간,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이 알려졌으며, 브랜드의 윤리적인 생산과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 이후, ‘패션 레볼루션(Fashion Revolution)’이라는 비영리단체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패션 투명성 지수(Fashion Transparency Index)’를 발표해 기업이 공급망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적하는지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 지수는 기업이 노동 환경과 환경적 영향 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외부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평가한다. 이외에도 ‘Good On You’나 잡지 Business of Fashion의 ‘BoF Sustainability Index(지속가능성 지수)’ 등 패션 브랜드의 투명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여럿 있다. 투명성 관리의 방법은 크게 1) 기업의 공급업체 목록과 위치를 공개하고, 2) 각 공급업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3) 각 공급업체는 그들의 공급업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투명성은 브랜드가 공급망 불투명성에 맞서고 의류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 받았다. 보이지 않는 생산의 과정을 가시화함으로써 문제 개선의 단초를 다지는 방법이다. 하지만 투명성에 대한 논의은 어떤 개선을 이루었는가? 투명성 모델은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많다.


패션 투명성 지수. 이미지 출처: Fashion Revolution.



투명성 개념의 한계


정보의 공개는 문제의 개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투명성은 여러 한계를 갖는데,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투명성은 기업에게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다. H&M은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지속가능성과 거리가 멀다. 값싼 가격 뒤에는 착취가 숨겨져 있고, 빠르게 생산하고 버리는 과잉의 시스템은 환경에 큰 부담을 지운다. 그런데 H&M은 높은 투명성 지수를 기록하고 있고, 투명성이 기업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임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H&M의 투명성은 패스트 패션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는 오히려 투명성이라는 방법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패스트 패션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진 구조적 문제는 은폐하고, 정보 공개 자체로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위한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은 투명성이라는 명목으로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숨길지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패션 투명성 지수, BoF 지속가능성 지수, Good on You의 평가는 보통 공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 투명성이 중요한 비즈니스 관행으로 주목 받으면서 여러 자료가 공개되고 있지만, 공시를 결정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은 공개 가능한 정보만 공개한다. 투명성이라는 관행 하에서 공개된 정보는 불투명한 지점을 증명할 수 없다. 오히려 투명성은 불투명성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셋째,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할 수 없다. 파타고니아는 투명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이를 추구하는 데 우수한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년 기사에서 발표된 실상은 달랐다. 패스트 패션 기업이 이용하는 저임금의 제조업체를 파타고니아에서도 함께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개된 정보로는 은폐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협소한지 또는 잘못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넷째, 정보 공개 방식은 정례화되었다. 기업은 투명성을 갖추기 위해 정책을 만들고, 책임자를 공개하며, 공급망 목록을 공개하고, 실사(due diligence)를 진행한다. 기업은 이 단계에 따라 투명성의 요구를 충족해간다. 이는 문제의 개선을 위한 진심 어린 접근이라기보다는, 투명성을 인정 받기 위해 업계의 관행에 따라 하는 일에 가깝다. 무엇을 위한 공개인지는 잊은 채, 무엇을 공개해야 뒤쳐지지 않는지에 주목하는 듯하다.


투명성 개념은 ‘투명하다’는 단어의 청렴한 이미지에 압도되어 그 한계가 잘 보이지 않지만, 기업의 사업 관행은 근본적으로 투명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Zerrin



투명성은 문제를 개선하는가


투명성은 ESG 경영에서 강조하는 공시의 개념과 연결된다. 최근 기업은 공급망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 운영 과정과 관련되는 비재무적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 받고 있는데, 정보의 공개는 곧 리스크 관리의 역량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위험 요소를 알아보고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온실가스 관련 정보를 측정하고 공개할 수 있다면, 온실가스와 관련된 기업의 성과 또한 관리할 수 있다. 이렇게 정보 공시는 기업의 역량을 입증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되었다.


투명성의 한계를 고려하면, ESG 공시 역시 같은 한계를 가진다. ESG 공시는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소극적 개선이며, 기업이 구조적으로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기업의 역량을 홍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공개 가능한 정보만을, 정례화된 방식으로, 기업의 사업 운영에 유리하도록 공개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정보 공개에 그친다면, 문제의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옷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정보가 알려지는 것은 분명 반갑고 유의미한 일이다. 복잡하게 엉켜있는 공급망을 미지의 영역으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가시화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향이다. 하지만 투명성을 추구하는 목적은 공급망에서 자행되는 인권 침해와 환경 오염을 개선하기 위함임에도, 비즈니스의 본질적 문제는 방치된다. 투명성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투명성 개념은 과연 옷과 패션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생산 및 소비 관행을 변화시켰는가? 투명성 다음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EU Business News.




공급망의 복잡성은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다. 자원과 노동에 대한 착취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다.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해 대안적 방법이 논의되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나, 그 어떤 방법도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안의 대안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gels-Zandén, N., & Hansson, N. (2016). Supply chain transparency as a consumer or corporate tool: The case of Nudie Jeans Co. J Consume Policy, 39, 377-395.

Huegten, Y. V. (2023). Sustainable clothing brand Patagonia manufactures in the same factories as fast-fashion; textile workers are being exploited. Human Trafficking Search.

Richards, H. (2021). Rethinking value: ‘radical transparency’ in fashion. Continuum: Journal of Media & Cultural Studies, 35(6), 914-929.

김지은. (2022, Dec 22). [Case Study] 공급망 투명성의 윤리. Esri Korea.






문화예술 플랫폼 안티에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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