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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Oct 06. 2024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 리뷰

1년 전, 전시를 감상하고 작성한 글을 뒤늦게 발행한다. 




롯데뮤지엄에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전시를 관람했다. 운 좋게 들어가자마 도슨트 설명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전시를 훨씬 깊이 이해했다. 


전시 구석구석 마르지엘라의 의도가 담겼다고 한다. 특히 블라인드로 전시관 구조를 미로 같이 구현했는데, 작품 하나에 시선을 유도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작품의 수나 광활한 공간감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하나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품 하나하나 담긴 의도가 깊고 탁월해서 기록한다. 



1. Deodorant(데오도란트)

전시 티켓, 팜플렛, 입구를 모두 장식하는 오브제다. 억제를 의미한다. 자연스러운 체취를 억제하는 물건이자,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범위에 속하기 위한 장치를 상징한다. 도슨트 선생님은 이미지 메이킹으로 점철된 현재 사회를 말씀하셨다. 만들어진 자아의 시대. 이렇게 전시는 나와 사회와의 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놓고 시작한다.


티켓 사진



2. Hair Portraits(머리카락 초상화)

대여섯 개의 잡지가 벽에 걸려있고, 수백개의 잡지가 바닥에 쌓여있다. 벽에 걸린 잡지의 표지는 유명한 연예인들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머리카락으로 뒤덮여있다. 사람의 얼굴을 알리기에 가장 효과적인 표지에 익명성이 생겨버린 아이러니. 여기에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잡지가 아래에 쌓여있는 잡지 위로 옮겨졌다. 언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 불가능한 요즘 시대를 의미하는 퍼포먼스라는데, 다른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모든 퍼포먼스가 이런 식이다. 작품을 치우고, 가리면서 의외의 상황을 연출한다. 마르지엘라는 항상 그 자리에 준비되어 있는 예술 작품에 예측 불가능하고 지속되지 않는 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재 보이는 작품에 집중하게끔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3. Phantom Series(유령 시리즈)

전시장 곳곳에 위치한 팬텀 시리즈. 있다가 없어진 예술작품의 흔적을 표현했다.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도슨트 선생님의 설명에 전시란 관람객의 상상으로써 완성되는 매개적인 매체임을 생각했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듣지 않고 혼자 관람한 동행인은 상상력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한다. 미친듯이 궁금했다고. 그리고 내 설명을 듣고 나서는 생각보다 별 거 없어서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어쩌면 마르지엘라는 호기심 그 자체를 의도하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해석은 미결된 것으로 남겨놓고 온갖 가능성이 풍부한 상태 그 자체로 팬텀 시리즈가 완성될 것이다.  




4. Dust Cover(먼지덮개)

마르지엘라의 예술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Man Ray의 'The Enigma of Isadore Ducasse'를 재해석한 거라고 하며, 뭔지 모르는 무언가에 먼지덮개를 덮어놓고 작품이라 명명한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이 작품의 의미라고. 도슨트 선생님이 자기가 직접 봤는데 너무 별 거 아니라고, 보는 순간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마르지엘라 전시는 대체로 엄청난 호기심을 의도한 듯하다. 



5. Film Dust(필름 먼지)

이 작품도 Man Ray의 'Dust Breeding'이라는 작품을 재해석한 거라고 한다.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확대한 그림 같아보이는데, 그 재질이 독특하다. 설명을 들으니 플라스틱을 곱게 갈아 그 가루를 스프레이로 분사한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아주 작은 모래들이 반짝이는 듯하다. 도슨트 선생님은 일상에서 아주 하찮게 느껴지는 먼지로 의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흔하고 당연한 명제를 부수는 작품이었다. 




6. Vanitas

Vanitas는 사전에서 '삶의 덧없음을 표현한 예술작품'이라고 나온다. 네덜란드 대항해 시대에 유행했던 정물화로, 부와 기쁨, 죽음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함께 담기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의 소용없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마르지엘라의 Vanitas는 다섯 개의 머리통으로 구성됐다. 얼굴 없이 전체가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머리통 다섯 개. 머리카락의 색과 탄력과 윤기로 점점 나이 들어가는 변화를 표현했다. 도슨트 선생님은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이 어느 머리통에 속하는지 가늠해보게 된다고 했는데, 젊은 머리통이라며 기뻐하고 늙은 머리통이라며 슬퍼할 것 없이 그저 예측불가능한 죽음 앞에 현재 살아있는 기쁨을 마주하라고 했다. 마르지엘라의 의도인지, 도슨트 선생님의 해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삶을 돌이켜보게 되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7. Scrolling Image(위아래로 움직이는 이미지)


인간의 체모를 사진 찍고 유화그림으로 그려서 이를 다시 복사한 작품이다. 버스정류장 광고판과 같은 스크린에 그림이 있었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흰 여백과 그림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첫째, 자꾸만 움직이는 그림으로 인해 이번에도 역시 시선의 집중을 유도했다. 정말로 언제 그림이 사라지고 흰 여백이 나타날지 모르니 눈앞에 그림이 있을 때 열심히 뜯어봐야 했다. 둘째, 이 광고판 같은 스크린 이름은 빌보드라는데, 광고를 보여주는 매개인 만큼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예술의 매체로 활용했다. 여기까지 도슨트 선생님이 설명하셨다. 예술은 보통 돈이라는 세속적 가치와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에 속하고,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자본주의로 생존하는 예술을 떠올리게 한다. 





8. Bus Stop(버스정류장)


털로 뒤덮인 버스정류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도슨트 선생님은 질문부터 던지셨다. 무슨 느낌이 드냐고. 따뜻하다, 쓸쓸하다, 부드럽다. 여러 대답이 나왔다. 그러자 도슨트 선생님은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버스정류장을 다르게 인식하는 기회가 마련됐다고 했다. 덕분에 이 작품으로 우리가 버스정류장을 다르게 생각해보고 있다는 사실이 한눈에 보였다. 마르셀 뒤샹이 생각났다. 변기가 전시관에 놓였기 때문에 예술작품이 된 순간. 이 버스 정류장도 마찬가지였다. Meret Openheim의 'The Fur Tea Cup'을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오른쪽 사진이 Meret Openheim의 'The Fur Tea Cup'. 이미지 출처: NPR



9. Torso Series(몸통 조각 시리즈)


몸의 부위를 확대한 조각들이다. 여섯 개의 조각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퍼포먼스가 있었다. 여섯 개 중 하나에 흰 천이 덮여있었는데, 그 천을 다른 작품으로 옮겨버리는 것이다. 갑자기 못 보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어김없이 다른 작품을 열심히 봐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가려지기 전에. 마르지엘라는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고 감탄했던 것은, 몸을 조각한 작품과 그 작품이 올려진 받침대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도슨트 선생님님은 예술과 부자재의 경계를 없앴다, 일상으로 예술이 확장됨을 설명했다. 받침대까지 작품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마르지엘라는 경계를 없앴는데, 경계의 부재 덕분에 평소엔 발견하지도 못했던 경계가 갑자기 눈에 드러났다. 





10. Monument(기념물)


널찍한 네모난 공간에 사진이 인쇄된 천이 한 벽을 모두 채우고, 그 앞에 디귿 자 모양으로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었다. 사진엔 2017년 롯데타워가 공사 중일 때 창밖의 정경이 담겨있다. 파리에서도 전시 장소의 과거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트롱프뢰유(Tromp-loeil),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하는데, 같이 보여준 사진이 더 인상 깊었다. 공사 중인 건물에 건물 사진이 인쇄된 천을 덮은 모습. 그리고 디올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예술이 일상에 손을 뻗는 순간과, 이걸 또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자본의 모습이었다. 


소파는, 보통은 회전율을 높이고자 소파를 두지 않는 보편적인 전시와는 정확히 반대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르지엘라의 의도라고 한다. 정말 푹신한 소파가 넓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뛰노는 듯한 발자국 소리, 부딪히는 소리 등등이 스피커로 나오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 감각이 생기긴 했지만, 사진과 소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른쪽 이미지 출처 - http://palagret.eklablog.com/-a167181376



11. Body Part Black&White(흑백의 신체 일부)


말 그대로 신체의 일부가 흑백으로 그려져있고, 확대되어 어느 부위인지는 잘 모르겠다. 강의실에서 사용되는 스크린에 인쇄된 그림 작품이다. 위아래로 올렸다 내릴 수 있는 스크린. 역시나, 퍼포먼스가 있다. 스크린을 위로 올려버려서 더 이상 작품을 못 보게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그림 두 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똑같았을 두 작품이, 스태프가 랜덤으로 위로 올렸다 내리면서 서로 다른 역사가 새겨진다. 같은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으나, 서로 다른 세월의 풍파를 맞이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12. Cartography(지도제작법)


재밌는 작품이었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인조모와는 달리, 자연모는 부분부분마다 머리카락이 휘고 흐르는 방향이 다르다고 한다. 구역의 구분과 방향은 사람마다 모두 달라서 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작품은 사람의 뒤통수를 찍은 사진에 마커로 구역을 구분하고 화살표로 머리카락의 방향을 표시했다. 머리카락 지도를 그린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네 개의 작품이 있었는데, 모두 다른 지도였다. 여기서도 퍼포먼스 있었다. 작품을 옆으로 치워버리는...





13. Mould(s)(거푸집(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어떤 조각 작품을 만든 거푸집이라고 한다. 작품 이름은 까먹었다. 알 수 없는 나무 구조물에 하얀 석고가 덕지덕지 묻어 있고, 빨간색으로 글씨가 적혀있다. 이 자체로 독창적인 재질과 인상을 주는데 과연 쓰고 버려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나왔다고 한다. 마르지엘라는 역시, 예술의 범위와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왜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지 알겠음. 






14. Red Nails, Red Nails model(빨간 손톱, 빨간 손톱 모델)


빨간 손톱이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로 다섯 개 놓여있다. 그런데 블라인드를 여니까 우리 몸만큼이나 거대한 똑같은 작품이 놓여있다. 우리 손톱보다는 많이 크지만 작았던 작품을 감상하는 위치에서, 우리만큼이나 거대한 손톱 작품으로.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경험자의 위치로 변환되는 지점. 작품보다 설명이 더 인상 깊었다. 






15. Light Test(빛 테스트)


'Mould(s)' 관람할 때부터 자꾸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처음엔 관람객의 웃음인 줄 알았는데, 전시 속 영상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었다. 이 작품은 영상이었고, 머리카락만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만 보이다가, 뜬금없이 데오도란트 광고 같은 영상이 나오고, 다시 여자가 나와 앞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이 온통 머리카락이다. 도슨트 선생님은 익명성과 상상력,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무엇보다도 그저 웃음소리가 전시장을 채우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웃음소리가 너무 호탕해서 전염되는 웃음이었고, 덕분에 심각하게 전시를 관람하다가 마스크 안에서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덕분에 유쾌한 전시가 되었다.






16. Wig Mask


'Light Test'에서 나왔던 가발이 바닥에 툭 떨어져있는 모습이다. 전시장을 나가면서까지도 전시의 인상이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르지엘라의 의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설명 못 들은 작품들





첫 번째는 'Lip Sync', 독순술을 표현했다고 한다. 저 자체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을 텐데, 몇몇 개 작품이 비워져있는 걸 보니까 이것도 나중에 오면 다른 작품이 치워져있고 그럴 것 같다. 그러면서 입술이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고, 오히려 무의미해질 수도 있고... 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고, 세 번째 작품에서는 사진 속의 그림을 현실에서도 보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래는 메이킹 사진 






입구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전시 관람 이후에 보니까 작품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아, 전시설명조차도 글자 스티커가 아니라 문단별로 인쇄된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던데 컨셉인가 싶다.





마르지엘라의 첫 패션쇼는 할렘가 놀이터에서 이루어졌고, 선착순이라 엄청난 유명인만 앉는다는 그 '프론트 로(front raw)'에 할렘가 사람들이 앉았다. 브랜드의 가장 상징적인 로고조차도 옷에 기워박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업계의 암묵적인 규칙을 뒤집어버렸던 디자이너. 이번 전시도 역시나, 보편적 정의에 굴하지 않았다. 흔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요소를 이상하게 뒤집어버리는 시도가 곳곳에 배치된 전시였다. 


이 전시에 패션은 하나도 없었지만(가발과 손톱이라는 복식 요소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는 패션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마르지엘라의 예술 작품이지만, 그의 패션 작품과 긴밀히 연결된다. 따라서 이 전시는 예술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출발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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