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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y 23. 2023

11시 30분

어떤 뒷골목 풍경

"후, 이제 끝인가"


털썩. 가게 구석의 의자에 몸을 던진다. 11시 30분. 술을 같이 파는 곱창집치고는 마감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주택가 뒷골목의 가게에서 이런 시간에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면서 가게를 열어 두기엔 인건비나 전기세 같은 비용이 더 문제다.


벽쪽으로 머리를 기대면서 눈을 슬쩍 감는다. 오늘 하루 얼마를 팔았더라? 알바비는 나왔나? 하아.. 재료비나 제대로 뽑았는지 모르겠다. 처음 가게를 오픈할 때에는 의욕적이었는데 말이다.


처음 가게를 오픈했었던 때가 생각난다. 호기롭게 회사를 관두면서 마누라한테 호언장담했다. "내가 그동안 마신 술이 얼만데, 특히 곱창은 내가 자신있는 분야라고!" 사실은 마지막 부장 진급 찬스를 놓친 이후 등 떠밀리다시피 퇴사를 결심한 것이었지만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 그런 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에겐 그것이 중요했다. 무너지고 있다고, 이미 무너졌다고,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 생각해둔 것이 있다며 마누라를 안심시켰지만 사실은 아무런 준비도 없던 내게 우연히 들렀던 그 카페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외지고 조용한 동네이긴 했지만 바로 앞에 꽤 큰 기업의 본사가 있었다. 크고 작은 보습학원들이 있는 곳이었고, 작은 길을 하나 건너면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하지만 식당의 숫자는 현저하게 적었다. 마치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곳이었다. 문제는 '당시의 나'에게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사실, 좋은 주변 환경인데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추론이었을텐데, '당시의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을 나에게 맞추어 받아들였다.


가게를 내놓았다는 카페 주인장의 말에 그렇다면 내가 인수하겠다는 얘기를 바로 꺼냈다. 그래, 굉장히 성급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나의 상황은 더 급했다.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기간은 너무나 즐거운 기간이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함께 뛰었던 그 시간들. 지금 생각해보면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고 알바들을 관리하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가게를 오픈했다. '오픈빨'이라는 단어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가게를 오픈하니 그런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나의 안목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가게 앞에 길게 줄이 드리워지지는 않았지만 이 외진 동네에서 테이블이 꽉 차고, 두 번 이상 회전된다는 게 놀라웠다. 모두 다 내 덕이었다. 백종원이 부럽지 않았다. 이렇게만 계속 매출이 나오면 중학교에 올라가는 쌍둥이 두 딸 아이에게 최신형 핸드폰을 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핸드폰이 문제겠는가, 마누라에게 명품 백이라도 선물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오픈빨'은 6개월도 가지 않았다. 두 명이나 뽑았던 알바도 한 명으로 줄였다. 겨우 다섯 개 밖에 없는 테이블이지만 '만석'을 채웠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두 테이블에 동시에 불을 피웠던 게 언젠지도 기억이 안 난다. 한 명 남은 알바의 근무 시간도 줄여야 했다.


그렇게 6개월이 더 흘렀다.


가게를 정리하고 혼자 남아 소주를 기울이는 것도 한 달 전부터는 그만 뒀다. 처량해보이는 내 모습이 싫기도 했고, 소주 한 병이라도 아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도 피곤하다는 것이 더 컸다. 손님이 꽉 찰 때도 느끼지 못했던 피곤함을 손님이 전혀 들지 않는 날에 느낀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언젠가부터 2시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 11시 정도면 가게 정리를 시작한다. 10시 이후에는 '절대'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11시 정도에는 알바를 들여보내고 혼자서 가게를 정리한다.


11시 30분 정도면 정리가 끝난다.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 정리할 것도 없으니까 빠르게 끝나는 거다. 그러면 가게 불을 모두 끄고 오늘처럼 가게 구석에 앉아서 눈을 감는다.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잠이 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집에 갈 수도 없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닫았어?"라고 웃으며 물어보는 마누라에게 아직은 가게의 상황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쯤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소주 한 잔도, 담배 한 개비도 태울 수 없을 정도인 지금. 가게 구석에서 이렇게 앉아서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다.


- 집에 오다가, 집 앞에 얼마 전에 오픈한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았는데, 그 안에 아저씨가 한 분 앉아 계셔서... 그냥 막 상상해서 써본 글. (그 가게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전혀 모름 -0-)




- 2018.10.30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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