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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Jun 27. 2023

우연한 구마모토의 하루

예약 실수가 불러 일으킨 예상못한 경험

2017년 8월, 친구랑 둘이서 [후쿠오카 - 구마모토 - 아마가세] 를 다녀왔을 때의 얘기다.


그저 '같이 일본이나 한 번 가볼까?'로 시작된 여행이었는데, 친구가 좋은 료칸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검색을 해보고는 아마가세에 있는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료칸을 (비록 남자 둘이었지만) 예약했다. 실제로 접근하기에 교통이 좀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아주 대만족인 료칸이었는데,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니 일단 패스.


친구가 료칸을 선택했다면, 나는 구마모토를 선택했다. 사실 구마모토는 그리 볼 게 많은 동네가 아닌데도 2박을 계획했는데, 이유는 '다카치호 협곡'을 다녀오기 위한 일정을 포함했기 때문이었다. 다카치호 협곡은 '미스터 초밥왕'의 전국대회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곳이다. 만화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고, 궁금해서 검색해보고는 '꼭 가보고 싶은 곳'에 포함시켜 두었었다.


그리고 구마모토는 당시 여행하기에 비용이 저렴한 지역이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구마모토 성(거의 유일하다고 봐도...)이 지진으로 무너져 공사 중이라 호텔 가격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매우 싼 시기였다. (지금은 공사가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다.)


어쨌든 여행 첫 날, 구마모토에 도착해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는데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렌터카 예약에 대한 알림이었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내일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모레 아침이라고 알림이 온 거다. 어? 이게 뭔 일이지? 렌터카 앱을 켜서 예약을 다시 확인해보니...


아... 예약을 잘 못 했다. 날짜를 하루 뒤로 예약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여행 하루이틀 해보는 것도 아니고, 렌터카 예약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시던 술이 확 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잠깐 보낸 다음,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갑자기 렌터카가 수배될 리는 없었고, 이후의 료칸 예약때문에 여행 일정을 바꿀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렌터카 예약을 취소했다.


보통의 경우 몇 번이나 예약 확인을 하는데 이런 실수는 처음이다. 심지어 혼자 여행도 아니고 일행도 있는데...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쨌든 계획했던 일정이 증발했고 구마모토에서 온전한, 무계획의 하루가 생겼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여유롭게 구마모토를 돌아보자!


늦잠도 푹 자고 보통 사람들은 잘 다니지 않는 특이한 스팟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친구가 '목욕탕'을 가보고 싶다는 거다. 온천도 사우나도 아니고 정말 그냥 작은 동네 목욕탕. 우리나라랑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내일은 좋~은 료칸을 가게 될테니 극과 극을 체험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스이젠지를 둘러 보고나서 커피를 한 잔 하러 들른 작은 카페에서 뜬금없이 근처에 '목욕탕'이 어딨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온천(溫泉,온센)'을 알려주길래 이런 곳 말고 작은 '목욕탕(銭湯,센토)'을 찾는 거라고 얘기했더니, 정말 한참을 검색하고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하더니 지도를 보여주며 목욕탕을 하나 추천해줬다.


그때 그들이 보여준 사이트 주소를 외워뒀다가 나중에 다시 찾아봤는데, 자그마치 '구마모토 목욕탕 조합'의 홈페이지!


http://kuma1010.com/


구마모토 목욕탕 조합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이미지


이런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한데, 홈페이지도 너무 귀엽다 ㅋㅋㅋㅋ


어쨌거나, 카페 쥔장과 알바생이 한참을 고민하고 추천해준 동네의 작은 목욕탕에서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를 들으며 목욕을 하고, 카운터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두꺼운 안경을 쓰신 할머니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추가로 그날 밤, 우연히 들른 바에서는 뜬금없이 '훌라춤' 공연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비록 연습이었지만 라이브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 그리고 훌라춤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술 마시며 얘기하고.


렌터카를 잘못 예약하는 바람에 온전하게 구마모토를 구석구석 돌아다닐 시간이 생겼고, 그덕에 특이한 경험과 재미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약을 잘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훌라춤을 구경할 때는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엄청 뻔한 말. 그래 이런 게 여행이지. 가 딱! 어울리는 날이었다.




from 2018.02.06의 페이스북

현 시점에 맞추어 조금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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