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7 - 사사쿠라
가고시마는 쿠로부타(흑돼지), 쿠로게와규(흑모와규), 지도리(토종닭) 등의 고기가 맛있고 싸다는 걸로도 유명하고 가츠오(가다랑어), 키비나고(샛줄멸), 마다이(참돔), 사바(고등어), 이세에비(닭새우) 등의 해산물도 풍부하기로 유명한데요.
제 생각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쇼츄(焼酎)라고 생각합니다. 가고시마의 고구마(사츠마이모)를 이용한 증류주는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고, 그 맛이나 향의 스펙트럼이 꽤나 넓어서 마시는 재미가 있는 데다가 가고시마 현지에서는 가격도 아주 저렴하기 때문에 애주가들에게는 꿈의 도시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제가 가고시마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죠. 맛있는 음식들과 엄청난 종류의 쇼츄!
가고시마에는 쇼츄바가 많습니다. 쇼츄바를 표방하지 않는 그저 보통의 식당에서도 수십 종이 넘는 쇼츄를 보유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쇼츄바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에서는 당연하게도 수백 종이 넘는 심지어 천여종이 넘는 쇼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쇼츄바들 중에서 한 곳. 제가 좋아하는 쇼츄바 중에서 가장 현지인들이 많고 캐주얼한 곳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방문해서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사장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그냥 제 맘대로 안부 인사를 드렸어요. -0-), 쇼츄를 몇 잔 마시고 왔습니다.
텐몬칸(天文館) 분카도리(文化通り) 바로 옆에 있는 쇼츄바 사사쿠라(焼酎Bar酒々蔵)입니다.
이곳은 '바'인데도 불구하고 '음식' 메뉴가 아주 다양합니다. 가볍게 저녁을 먹으면서 한 잔 할 수도 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저는 보통의 경우 저녁을 거하게 다른 곳에서 먹고 사사쿠라에 들르기 때문에 가볍게 에이히레(えいひれ) 정도를 안주로 주문합니다. 우리나라의 오징어나 쥐포 정도의 위치에 있는 마른안주인데요, 가오리 날개 부분을 말린 걸 살짝 구운 안주입니다.
첫 번째 잔은 항상 '카오리계(香り系)'의 쇼츄를 소다와리로 마실 수 있도록 추천해 달라고 하는 편입니다.
카오리계라고 하면 '향' 중심의 최신 모던 쇼츄 트렌드를 말하는 거예요. 고쿠부슈조(国分酒造)에서 만든 야스다(安田)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는데요. 분명히 고구마만을 사용해서 만든 쇼츄인데 과일향, 꽃향, 허브향 등 다채로운 향이 피어나거든요. 그래서 소다와리로 만들면 마시기 편하고 향기로운 술이 됩니다.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쇼츄 소다와리를 캔으로도 만들어서 팔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카오리계 쇼츄인 GLOW EP05 Ride the waves를 첫 잔으로 마셨습니다. 멜론향이 지배적인 쇼츄였어요. 마치 멜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병 사서 귀국했죠.
두 번째 추천받은 쇼츄는 사츠마차야 카메시코미(薩摩茶屋 かめ仕込み)입니다. 첫 잔을 최신 트렌드로 마셨으니 두 번째 잔은 정통파 쇼츄로 추천을 부탁드렸거든요. 이 쇼츄는 3M 중의 하나인 무라오(村尾)를 만든 양조장에서 만든 쇼츄입니다. 무라오가 플래그십이라면 사츠마차야는 보급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는 역시네요. 이 녀석도 깊은 맛이 느껴집니다. 묵직한 정통의 느낌.
다음은 이치방 시즈쿠 더 퍼스트 드립(一番雫 The 1st drip)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무거운 녀석을 마셨으니 다음 잔은 깔끔한 맛이네요. 당시 시음 노트를 보면 '이슬 같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맑고 깔끔한 느낌의 쇼츄입니다. 이름이 첫 번째 방울인 걸 보면, 아마 첫 번째 증류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진 못했습니다.
안 마셔본 술들을 추천받았으니 이번엔 잘 아는 술을 오랜만에 마셔보기로 합니다. 사토 쿠로(佐藤 黑). 쇼츄의 최고봉에 3M이 있다면, 그 바로 아래에서 3M을 위협하는 1M 1S가 있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개를 함께 부를 땐 4M 1S라고도 부른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어요. ㅋㅋ 어쨌든! 바로 그 1S가 바로 이 '사토'입니다.
한 모금 마셔보면 확실히 그 퀄리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겹겹이 쌓여 있는 향기와 맛의 레이어, 그리고 그 밸런스. 정말 좋은 쇼츄입니다. 이 정도 급의 쇼츄는 리쿼샵에서 쉽게 구할 수 없거든요? 헌데 운 좋게 현지 리쿼샵에서 사토 쿠로를 한 병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도 한 병 사 왔습니다.
마지막 잔으로는 저를 본격적으로 쇼츄의 세계로 이끌어준, 카오리계 쇼츄의 선구자인 야스다(安田)를 소다와리로 마십니다.
음, 5~6년 전 처음 마셨던 야스다의 느낌과 지금에 와서 야스다의 느낌은 좀 다르긴 하네요. 처음 야스다를 마셨을 때는 충격적이었거든요. 이런 쇼츄가 아니 이런 술이 있다고? 이 향은 도대체 뭐지?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잘 만든 카오리계 쇼츄들의 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보니까 야스다가 그렇게까지 큰 감흥을 주지는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스다에서 풍기는 이 꽃향기와 허브향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여기까지 마시고 일어났습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고 쇼츄도 좋아하지만 네다섯 잔이 넘어가면 술이 취하기도 하고, 향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 뭐 그렇다고 호텔로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