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16 - 텐진보 마루신
이번 여행의 주제가, 사실은 '생일맞이' 여행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생일이죠. 오늘 저녁엔 꽤 비싼 식당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가볍고 소화가 잘 되는 걸로 먹고 싶었어요. 입도 짧은 사람이 과음으로 컨디션도 안 좋으니 속을 잘 달래 두어야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이럴 때 생각나는 건 역시 소바입니다. 메밀면은 소화가 잘 되잖아요. 따끈한 국물의 온소바를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죠. 그래서 타베로그를 이용해 가고시마의 소바집들을 검색해 봅니다. 그렇게 찾아낸 집은 텐몬칸 북쪽 구역에 있는 텐진보 마루신(天神房 丸新). '타베로그 소바 WEST 백명점(百名店) 2024, 2025'에 2년 연속 뽑힐 정도니 가고시마에서는 탑급이라는 뜻이겠죠.
참고로 타베로그 WEST는 서일본 구역을 말하고요. 타베로그에서는 매년 서일본/동일본/도쿄 이렇게 3개 구역으로 나눠서 백개의 가게를 뽑습니다. 서일본에서 100등 안에 들었다는 건,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은 가게라는 뜻이죠. 서일본이 땅 넓이로 치면 일본의 2/3 정도 된다고 하니 아주 넓은 구역입니다.
일본에서 '소바집'의 의미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한국에서의 소바가게는 말 그대로 소바만을 파는 곳이잖아요? 일본에서의 소바가게는 소바를 주축으로 해서 다양한 요리도 취급하고 니혼슈나 쇼츄를 마실 수도 있는 곳입니다. 저도 일본인 친구가 소바가게에서 만나자고 해서 '음? 저녁인데 소바를 먹자고?'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가, 막상 도착해서 여러 가지 요리를 주문해 니혼슈를 마신 적이 있어요.
어쨌든,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서 가게 앞에 도착했습니다. 타베로그 평점 3.5가 넘는 가게니까 자칫 늦으면 줄을 길게 서야 할 수도 있거든요. 이럴 땐 역시 오픈런입니다.
간단한 거, 간단한 거,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소바를 주문하고 싶었습니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나메코 소바(なめこそば)를 주문했습니다. 나메코는 자연산 팽이버섯과 생긴 건 비슷한데 버섯갓 부분에 점액질이 있어서 미끌미끌한 식감이 나는 버섯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은 나도팽나무버섯인데 그냥 나메코 버섯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드디어 소바가 나왔습니다. 버섯의 줄기 부분은 잘라내고 버섯갓 부분만 모여 있어요. 아주 버섯을 듬뿍 넣었습니다. 버섯에서 나온 점액질 덕분에 국물도 더 걸쭉해져 있습니다. 소바면은 메밀 특유의 살짝 거친 느낌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먹기에 편합니다. 햇메밀이라 그런지 메밀향도 풍성하고요.
전반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얌전하고 건강한 맛이라고 할까요? 따뜻한 국물과 소바를 먹으니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컨디션이 회복되는 느낌! 거기에 건강한 맛이 나는 나메코 버섯까지 더해지니, 오! 오늘 점심 메뉴 잘 선택했는데요!
보기엔 양이 부족하겠다 싶었는데 먹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배가 부릅니다. 간단하고 가볍지만 건강하고 배부르게 점심 식사를 마쳤네요.
텐진보 마루신은 '가고시마의 특색'을 가지고 있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텐몬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것치고는 분위기가 아주 조용하고 깔끔합니다. 가고시마 여행 중 돈카츠나 쇼츄로 부담스러워진 속을 다스리고 싶을 때 추천할만한 가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