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19 - 이시즈에
가고시마, 쇼츄. 이번 여행 포스팅 내내 계속해서 꺼내는 말입니다. 지겨우시죠? 하지만 어떡합니까, 가고시마는 정말 쇼츄의 도시인 걸. 그리고 제가 가고시마를 여행하는 이유는 쇼츄를 마시기 위함인걸요.
처음 가고시마라는 도시에 도착했던 것은 2017년 큐슈 일주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야쿠시마(屋久島)에 가기 위해 가고시마에서 페리를 탔고, 3박 4일의 야쿠시마 여행을 마치고(정말 좋았습니다!!)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와서 1박을 했어요. 당시엔 가고시마는 그저 시골의 작은 도시일 뿐이니까 야쿠시마에 다녀와서 1박 정도만 지내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날 밤. 이곳을 만났습니다. 텐몬칸 남쪽 구역에 있는 쇼츄바 이시즈에(礎).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일본 쇼츄를 즐겨 마시고 있었고, 가고시마가 쇼츄의 도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쇼츄바'로 검색해 찾아낸 곳이었습니다. 쇼츄바라는 곳을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이시즈에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천여 종이 넘는 가고시마의 쇼츄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죠.
쿠로부타 로스 오뎅, 천여 종의 쇼츄, 시로야마 전망대의 풍경, 시립 미술관 그리고 결정적으로 잔잔하고 고즈넉한 도시의 분위기. 그런 것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가고시마는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고, 코로나가 끝난 다음, 벌써 세 번째 가고시마 여행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는데요. 결국 이곳, 쇼츄바 이시즈에는 제가 가고시마에 반하게 만든 큰 이유 중 하나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들렀는데도 오너인 이케하타상은 저를 알아보시고 눈인사를 건네시더군요.
첫 번째 잔으로 소다와리를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타쿠미노하나(匠の華). 딸기향이 난다면서 주셨는데, 딸기잼 같이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납니다. 이 쇼츄는 독특하게 '블렌디드 쇼츄'라고 하는데요. 재료 단계나 주조 단계에서 이모(고구마)와 므기(보리)를 섞은 것이 아니라, 이모 쇼츄와 므기 쇼츄를 각각 완성한 다음 마지막에 두 종류의 쇼츄를 섞어서 완성했다고 하네요.
백 바를 보다가 마셔보고 싶었던 쇼츄를 발견했습니다. 사토(佐藤)의 노란색 레이블. 사토 므기입니다. 사토 시로(白)는 백누룩, 사토 쿠로(黑)는 흑누룩을 사용한 이모 쇼츄거든요. 거기에 시리즈의 마지막인 사토 므기는 이름 그대로 보리 쇼츄입니다. 다른 것들은 마셔봤는데 사토의 보리 쇼츄는 아직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로꾸로 마셔보니, 첫인상은 알콜이 좀 튄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잔잔하게 깔려 있는 보리의 구수함이 느껴지면서 사르륵~ 밸런스가 맞아 들어갑니다. 역시 사토는 술을 참 잘 만드는 양조장이네요.
오늘도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두 잔만 마시고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너가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하면서 갑자기 쇼츄를 한 병 들고 오십니다. 므기홋카(麦ほっか). 역시 오너는 제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셨지만, 에피소드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계시진 못하네요. 이 쇼츄, 제가 이시즈에에 올 때마다 추천해 주셨던 쇼츄입니다. 처음 왔던 날도, 그 다음 번 왔던 날도 추천해 주셨어요. 오늘도 이걸 가져오시네요. ㅋㅋㅋ 고구마 쇼츄인데 커피 향이 나는 재밌는 쇼츄입니다.
오너에게 웃으면서 이건 예전에도 추천해 주셨었잖아요. 라고 말했더니 이번엔 병을 보여주지 않고 잔에 술을 조금 따라서 주십니다. 이거 마셔보고 어떤 술인지 맞춰보라고 하시네요. 음, 문제의 의도를 알 것 같습니다. 마셔보니 위스키 같은 맛과 향이 나거든요. 그렇다면 위스키스러운 맛이 나는 쇼츄겠죠. 하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했으니 위스키라고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병을 보여주시네요. 샷슈 다마시(薩州魂). 오크통에 숙성한 보리 쇼츄라고 합니다. 최근 이렇게 위스키 같은 느낌이 나는 쇼츄가 많아지고 있어요. 저는 쇼츄가 위스키와는 달라서 좋아하는 건데 말이죠.
어쨌든 여기까지 마시고 호텔로 돌아갑니다. 이번 여행은 컨디션 때문에 술을 도통 많이 마시지 못하네요.
쇼츄바 이시즈에(礎). 아주 많은 양의 쇼츄를 보유하고 있고, 클래식한 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깔끔한 곳입니다. 쇼츄바 로쿠(鹿 ROKU)와는 오너가 같은 자매점이에요. 최근에는 쇼츄 비스트로 고(郷)를 오픈했다고 하네요. 텐몬칸에서 가장 사업을 잘하고 있는 쇼츄바가 아닐까요? 만석인 경우가 많으니 꼭 대안을 생각하고 가는 게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