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아기 숫사슴 한 마리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아기 숫사슴에겐 분명 뿔이 없을텐데, 꿈이었으니까, 아기 숫사슴에겐 뿔이 있었다. 아직 자신의 다리로 제대로 서는 것도 버거웠던 아기 숫사슴은, 자그마한 코로 구석 구석 호기심을 채워보려다 지쳐 내 품에 안겨 꾸벅 꾸벅 졸았다. 나는 그 작은 동물이 너무나도 큰 세상의 피로를 회복할 때까지 어디에도 가지 않고 가만히 품어주고 싶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난 그 사슴이 너였다고 확신했다. 항상 내 곁에서 꾸벅 꾸벅 조는, 가느다란 허벅지를 가진 너. 자그마한 코로 겨우 숨을 쉬며 눈꺼풀과의 헛된 싸움을 하는 너.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기엔 아직은 버거운 너.
봄의 나른함이 우리 몸을 휘감아왔다. 우린 우리의 나른함을 봄의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우리는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 공간에서 한 감정을 느끼며 한 온도에 감싸 안긴 채로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는 사이였다.
특별함을 조심스럽게 키워야만하는 관계가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딘지를 파스텔로 그어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미소로 그 선을 문질러 흐리게 만든다. 흐려진 선 위에서 놀다가, 너와 더 가까운 쪽으로 다시금 선을 긋는다. 그렇게 너와 나는 선을 넘지 않는다는 명제를 지키면서도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