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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테 Jun 21. 2020

페미니스트의 다이어트

나와 내 몸과 세상

석사 논문을 제출했다. 몸무게를 재어보니 63kg. 분명 지난 달까지만 해도 61kg이었는데 논문 막판 스퍼트를 달리면서 운동도 모두 그만 두고, 혼자 지내면서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먹을 시간도 기력도 없어서 원래는 한달에 한 번도 먹지 않던 라면을 며칠 연달아서 먹은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BMI 수치로 보면 21.3으로 지극히 정상 체중이다. 그렇지만 분명 좋지 않은 것들을 논문의 땔감으로 마구 몸에 집어 넣은 결과 붓고 만성 피로한 몸을 얻게 되었다.

어떤 증량은 기력과 건강을 되찾아주는 소중한 것이고, 어떤 증량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고강도 노동과 맞바꾼 수명 단축의 시그널이다. 당연히 이번 내 경우는 후자이다. 건강한 증량과 수명과 맞바꾼 증량은 얼굴 빛만 봐도 확연히 다르다. 내 얼굴엔 혈색이 전혀 돌지 않고 눈가는 잿빛이 되었다.

어떻게든 다시 건강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전에도 살을 뺐다가도 직장 생활이나 대학원 생활이 힘들어 질 때 마다 다시 살이 쪘다. 내가 고강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지금 휴식기에 잠깐 또 건강하게 살아봤자 취직을 하는 순간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페미니스트인 나는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내 몸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어떻게 지금의 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몸을 바꾸려 할 수 있는가? 바꿔말해, 이것은 어떻게 코르셋이 아닌가? 내 몸에 대한 어떤 결정도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2015년, 나는 나쁜 연애를 한 후 자존감이 낮아질대로 낮아져 섭식장애 언저리까지 간 적이 있다. 당시 내 인생 최고 몸무게인 67kg까지 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이어트에 성공한 유명 걸그룹 멤버의 팔뚝 사진과 내 팔뚝을 비교했었다. 당시 한 반년간 자기 혐오를 연료 삼아 끼니를 걸러가면서 58kg감량을 했었다. 

당시 감량을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었는데, 운동이라는 것은 정신 건강에 참으로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더라. 처음엔 자기 혐오로 살을 빼오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게 되었고, 애초에 나를 67kg 까지 찌게한 것 역시 자기 학대에 가까운 폭식과  방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야채와 과일을 내 손으로 사서 먹고, 더 이상 살을 뺀다기 보단 몸을 근육으로 채워나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고, 런닝 거리를 3km에서 5km, 그리고 7km, 10km로 차차 늘려 나가는 도전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 55kg까지 빠지게 되었다. 

2016년 봄 즈음, 나는 비거니즘을 시작했다. 건강을 이유로 한 건 아니었고, 당시 Cowspiracy 라는 육류 생산이 얼마나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더 이상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2019년에 실천을 중단했지만.)  살을 빼려고 시작한 비거니즘은 아니었지만 유제품, 특히 치즈를 먹지 않기 시작하니 살이 더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내 모습을 본 친오빠는 내게 걸그룹 멤버 같다고 했다. 오빠에게 처음으로 들어본 외모 칭찬이었다.

그리고 2016년 여름이 되었다. 당시 나는 학부를 마치고 베를린에서의 휴가와 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베를린으로 오고 내가 접할 수 있는 식품이 달라지니 뭘 먹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그래서 끼니를 점점 대충 때우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이 달라지니 운동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기력이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내 몸을 일으켜 수퍼마켓에 가서 장을 봐서 부엌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조차 힘들어졌다. 하루를 나가서 놀고 들어오면 이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기력이 없어졌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은 것 같다. 근육으로 차 있던 내 허벅지는 점점 더 말라갔다. 처음으로 내 팔뚝이 굵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 본 내 몸무게는 48kg. 1 년 만에 20kg가 빠진 것이었고, BMI 16.22의 몸으로 꽤나 저체중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건강하지 못한 몸무게라고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해 여름은 불안증과 우울증이 함께 했던 것 같다. 그 때 처음 취직해 들어간 회사에서 여자 동료들은 내가 너무 심하게 말랐으니 나는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고강도 주 60시간 이상 노동을 하다 보니 살은 다시 급속도로 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수면이 부족하다보니 몸이 ‘살려면 먹어야해’와 같은 비상 모드가 되었다.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 1년간 살이 10kg가 쪄 다시 58kg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제 하루 3끼를 꼬박 꼬박 잘 먹었기에 저체중일 때 보다는 훨씬 기력이 돌았다. 고강도 노동에 다크 서클이 진했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도 저체중일 때 보다도 꽤나 맘에 들었다. 

그 후 대학원을 두 번을 다니며 두 편의 석사 논문을 썼고, 석사 논문을 한 번 쓸 때마다 운동도 완전히 그만두고 끼니를 거르다가 가공식품등 그리 건강치 못한 음식으로 폭식을 하니 살이 쪘다. 그렇게 2020년의 나는 63kg이 되었다. 


2020년의 나는 분명 2015년과의 나와는 다르다. 먼저, 의학적으로 보면, 나는 2015년의 나보다 다섯 살이 더 많으며, 신진대사율도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의 나는 불안증도 심했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지만, 지금의 나는 일단 병리적인 자가진단으로는 정신이 건강하다. 이제는 거울 속의 나 자신을 그렇게 혐오하지도 않아서 반년동안 굶으면서 10kg를 뺄 동기도 없고, 일부러 ‘다이어트 자극’이랍시고 마른 여자들의 사진을 찾아보면서 지금의 내 몸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정서적으로 학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실 지난 5년간 불규칙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살이 찌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노력해도 예전처럼 빨리 살이 빠지지도 않더라.) 2015년에는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준 사람들이 내게 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2020년에는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아름다움을 믿으려 하고, 또 감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몸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평화를 되찾은 것도 아니다. 2015년의 나는 가부장제의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적 프레임으로 20kg를 뺀 것이라면, 그 후 5년간의 나는 자본주의의 성취주의적 압박의 프레임으로 자기 착취를 해가면서 15kg를 도로 찌운 것이니까. 이 5년의 시간동안 내 몸에 대한 주권을 내가 가지고 있고 행복했다고 느낀 때는 2016년 봄, 그나마 정상체중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먹었을 때 정도였으며, 내 몸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댓가로 당시 썼던 학사 논문 점수는 똥망해 흑역사로 남았다. 내가 지금 63kg의 내 몸무게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은 my body, my choice 라는 신체 긍정 운동으로 이룬 깜찍한 성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프레임에서 자기학대를 한, 내 수명을 깎아먹은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 페미니즘의 트렌드도 많이 바뀌었다. 2015년에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는 해시태그로 ‘내가 말랐던 아니던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하고 싶은 화장을 한다’라는 신체 긍정 운동이 주를 이뤘다면, 2020년에는 탈코르셋 담론이 훨씬 더 우세해졌다. 평생을 가부장제의 메일 게이즈 (male gaze) 속에서 신체적 자기검열을 하고, 자본주의가 파는 각종 화장품과 다이어트 제품에 돈을 주면서 살아온 한국 여자들에게 탈코르셋 운동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었지만, 어느새 내가 살을 빼고 싶은 욕구도 코르셋이 아닌지 또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 2020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서로 맞물려 아직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이루고 있을 때, 여자인 내가 내 몸에 대한 결정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인 프레임으로 재해석된다. 거기에 진정한 여성의 신체 주권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한 여성 개인이 신체에 대한 주권을 다시 잡고 살아갈 수 있을 까? 첫 번째 단계는 물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주입시킨 이상 신체형이 행복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탈코르셋과 비슷한 과정일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탈코르셋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탈코르셋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굳이 ‘비슷한’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그냥 또 다른 사회적 프레임에 내 몸을 맡겨두는 것에 불과하고, 그 어떤 사회운동가도 당신의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 다음엔 내가 어떤 식습관을 가질때,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할때, 내 체중이 얼마 정도일때, 얼마 정도를 꾸밀 때, 진정으로 행복하고 건강한지를 다양한 시도에 걸쳐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2015년의 나의 성장 과제는 살을 빼는 법이 아니라 나를 좀 더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였다면, 2020년 나의 성장 과제는 성취와 건강을 바꿔먹지 않는, 좀 더 지속 가능하게 건강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일단 시작은 COVID-19 졸업생의 영예를 안고 한가로운 백수 생활을 하면서 다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살이 빠질 수도, 안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하면 또 다시 취직을 하고 급여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자기 착취를 하지 않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치열하게 해야한다. 거기엔 나의 자존감을 나의 성취에 묶어 놓지 않는 것, 그리고 노동으로부터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경계를 명확히하는 것이 포함된다. 

2025년의 내가 되어서 다시 지난 5년을 되돌아 본다면, 2020년의 나 자신의 선택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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