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적 교류가 많던 주변국도 문제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재앙 수준으로 감염자를 늘려가고 있어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죠. 그렇지만 중국 정부는 다른 곳에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국 내 감염 확산도 문제이긴 하지만 중국 정부가 감염병 대응 실패로 인해 시진핑 정권에 대한 반대 여론 역시 폭증하고 있거든요. 시진핑 정권은 코로나19 대응 초기에 왜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했으며, 정권을 비판하던 이들은 실종은 왜 일어났을까요? 이는 중국 근대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데,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은 거기에 아주 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은 아주 옅어진 ‘공산주의’ 색채를 진하게 갖고 있던 과거의 중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쓰시는 말인데, 사실 우리가 아는 현재의 중국은 90년대 이후에야 등장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며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자 중국도 스스로 살길을 찾다가 소위 ‘자본주의 혁명’이라는 것을 진행했거든요. 이를 이끈 지도자가 덩샤오핑(한국식 음독으로는 등소평)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시작이 여기서부터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책은 덩샤오핑에서 시작해 시진핑까지 이르는 현대 중국의 정치사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중국식 사회계약은 ‘고속성장’
저자인 임명묵은 현대 중국의 성립과정이 일종의 ‘사회계약’을 새로이 맺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 마오쩌둥(한국식 음독으로는 모택동) 시기의 중국은 철저한 공산주의 국가로서, 국가가 주민들의 모든 것을 책임졌습니다. 시장경제 체제인 한국에서는 잘 상상하기 힘들지만, 국가가 주택과 식사 심지어는 직업까지 제공을 해줬거든요. 바꿔 말하자면 이주가 제한되고, 직업까지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권이 막강하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이런 단웨이(單位) 제도가 잘 작동했습니다.
그렇지만 90년대가 되며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 역시 공산주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현재의 북한처럼 일부 구역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단웨이 자체를 개혁하며 말 그대로 중국 전역에서 시장경제체제가 성립됐죠. 하지만 중국 지도층이 끝까지 놓지 못한 것이 있으니, 공산당에 의한 일당독재체제였습니다.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요소(티베트, 대만, 홍콩 등)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공산당에 의한 철권통치를 포기하긴 어려운 상태였거든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인민들과 중국 공산당은 일종의 사회계약을 맺습니다. 공산당이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책임지고 추진할 테니, 인민들은 정치적인 자유가 일부 제한되는 것을 용인하고 정부의 지도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개혁개방 이후 이 사회계약은 잘 유지됐습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어갔고, 인민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며 G2라 불릴 정도의 국력을 축적했으니까요. 그런데 사회계약의 한 축인 경제성장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진국 수준으로 올라가자 경제성장이 둔화 됐거든요.
공산당 내부의 노선투쟁 ‘다시 마오주의로’
경제성장이 둔화된 데 더해, 고속성장의 어두운 이면도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 화려한 야경을 빛내는 고층 빌딩이 올라가는 동안 농촌 지역의 경제는 박살이 났고, 같은 도시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화되자 아주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거면 대체 마오쩌둥이 왜 공산혁명을 했느냐는 것이죠. 중국 정부와 인민 간의 암묵적인 사회계약이 깨어질 위기에, 빈부격차가 심화되자 중국 공산당에서도 새로운 노선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강력한 국가통제를 시행하는 마오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입니다.
장쩌민을 비롯한 개방적 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은 공산당의 거버넌스를 민간으로 일부 이양하는 등 공산당의 강력한 국가통제를 완화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화적이고 시장친화적인 태도가 중국을 망쳤다며, 다시 공산당의 강력한 국가통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이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이의 갈등이라고 설명합니다. 개혁개방으로 나서다 보면 공산당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천안문)이 나타나고, 공산당 통제를 강화하다 보면 과도한 국가통제(문화대혁명)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두 가지 방향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큰 결단을 내립니다. 권력분산을 목적으로 만든 집단지도체제를 해체하고 강력한 지도자 1인을 내세우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 질서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방식을 통해 국가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집단지도체제가 갖던 비효율을 최소화하여 효율적인 국가 운영 역시 도모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시황제’라고 불리는 시진핑에 의한 1인 지도체제였습니다.
권한과 책임, 양날의 검
시진핑의 집권은 초기에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미·중 무역갈등이 불거졌지만 최고 책임자 1인의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되었고, 홍콩에서의 민주화 요구 역시 인민군을 투입하는 수준의 강력한 대응으로 분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집단지도체제 형태였다면 각자의 담당 분야가 나뉘어 있어 이런 방식의 대응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시진핑 1인 체제로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어려운 과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유행이 터집니다.
앞서 간략히 서술했듯(물론 책에서는 훨씬 자세한 배경이 나옵니다), 시진핑 정권은 강력한 국가통제를 바탕으로 성립됐습니다. 그래서 초기 우한 지역에서 나오는 보고는 단순히 무시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묵살되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우한 지역에서는 ‘양회(兩會)’의 사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양회란 중국 정치에서 가장 큰 행사로,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을 묶어서 부르는 말입니다. 시진핑 정권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의 성공을 가늠하는 예비행사가 고작 ‘폐렴’ 소식으로 덮어져서는 안 됐거든요.
결과적으로 우한 지역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구 1,000만 명이 사는 우한 시를 봉쇄하는 초유의 조치를 불러왔고, 우한 시가 속한 후베이성은 물론 중국 전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자 이에 대한 모든 권한을 쥔 시진핑 주석에 대한 책임론도 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망각하고, 그저 인민에 대한 강력한 통제만을 생각하다 보니 감염병 유행이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커져 버린 것입니다. 결국은 양회마저 연기가 됐고, 시진핑에 대한 불만은 겉잡을 수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요?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을 통해 현대 중국의 흐름을 살펴보면 나름의 답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방향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