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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pr 29. 2022

무용한 것들을 함께 즐기는 나의 종자기 승희에게

승희야 안녕.

흥미로운 화두로 가득한 편지 잘 받았어. 오늘도 혜령이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메시지를 받았을까. 혜령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회자될 사건이 생겼네. 나도 일곱 살 때 동물원에서 혼자 코끼리를 넋 놓고 보느라 가족을 잃어버려서 내 이름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었던 추억이 있어. 그런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더라. 어쨌든 부모님을 잘 찾았으니 지금 이렇게 그때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는 거지만 사실 그 순간은 나도 모르는 새 아찔한 갈림길 앞에 서 있었던 순간이었던 거야. 자칫 다른 길로 들어서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혜령이 사건도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 아닐까. 그럴 때는 이성을 잃고 눈물, 콧물 다 흘리는 게 맞지. 그런 순간까지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 수련까지는 하지 말자.     

 

처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때가 있느냐고 물었지? 그 질문에 오래 몰두했던 때가 있었어. 예전에 같이 이청준의 단편 <눈길>을 읽고 독후감 썼던 거 기억나? 그 글에 '나는 언제 어른이 된 걸까?'에 대해 썼었는데. 나는 어른이 된 순간에 쓴맛이 느껴졌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서울행을 결심했을 때 엄마가 내 손을 이끌고 내복 한 벌 사러 가자고 시장엘 갔었는데 내 손을 잡고 앞장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제 엄마의 세계에 속했던 나는 없다, 나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는다라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도 왠지 슬프다. 어른의 세계, 나의 세계로 들어갈 때 느꼈던 쓴맛 때문에 <데미안>에서의 한 구절을 특별히 좋아하기도 했어.


나의 세계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는 얼어붙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빨아들이는 새 뿌리가 되어 바깥에, 어둠과 낯선 것에 닻을 내리고 붙박여 있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은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내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데미안>- 두 세계 中     


너와 나의 어른이 된 시점엔 공통점이 있네. 고독을 느꼈고 그 고독을 온전히 감내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 어른은 그런 건가 봐. 엄마 등에 맡겨 놓았던 고독이라는 짐을 내 등으로 옮겨 짊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 처음엔 낯설고 버거워서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고독과 친구가 되었어. 그리고 고독 속에 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버렸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좋아. 얼마만큼 좋은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아. 무용한 것들을 이토록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해. 나는 또래 친구들의 관심사와 동떨어진 것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고 그래서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으로 정말 쓴 맛의 고독 속에 살게 될 뻔했는데 네가 있어 내 고독이 달콤해졌어. 작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나를 다른 이들은 정신 승리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할 텐데 너는 항상 멋지다고 해주잖아. 내 세계는 온통 돈벌이와 거리가 먼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다른 이들이 무능력하다고 말해버리기 쉬운 취향들을 가치 있다고 치켜세워 주기도 하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내 삶을 얼마나 빛나게 만드는지 몰라. 런 맥락에서 '사유원'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었던 거야. 처음에 '사유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너랑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거 있잖아. 네가 보고 싶어 하니까 같이 가줄게 하는 마음. 물론 고맙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건 좀 덜 즐겁잖아. 한쪽의 흥미에 다른 한쪽이 맞춰주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즐길 때 더 충만해지니까. 그래서 너였어. 그리고 고민 없이 떠오르는 이가 있다는 게 참 좋더라. 같이 수목원을 걸으면서 승효상 건축가의 건축들을 경험하는 시간을 함께 할 생각을 하면 벌써 너무 좋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가 9권까지 끝났어. 우리 참 멋지다. 중간에 몇 번 고비가 있었는데 벌써 10권이야. 다소 지루하기도 하고 쉽지 않기도 해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갇힌 여인' 편은 잃어가던 흥미를 다시 붙잡아주는 매력이 있더라. 발베크를 떠나 파리로 돌아온 주인공이 자기 방 침대에서 아침을 맞으면서, 날씨가 좋아서 일은 내일부터 하겠다고 게으름을 부리는 장면도 좋았고, 알베르틴이 잠든 모습을 지켜보면서 알베르틴을 완전하게 소유한다는 기쁨을 맛보는 것도 좋았어. 그런 하나의 장면을 몇 장에 걸쳐서 세세하게 묘사하고 설명하잖아. 그런 섬세한 표현들을 느긋하게 즐기는 게 이 소설을 잘 읽는 방법인 것 같아.

   

그날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소나기와 잠시 갠 하늘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다음 날부터 일을 하기로 맹세하면서 하루를 보냈다.....이처럼 햇빛이 찬란히 비치는 날, 더위를 피해 덧문을 닫듯이 하루 종일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은 허락되고 자주 하는 일이며, 건강에도 좋고 상쾌하고 계절에도 어울렸다. 바로 이런 날씨에서 발베크의 두 번째 체류 초기 때 푸른 밀물의 흐름 사이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곤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갇힌여인1 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렇게 네 생각이 나더라. 이 소설을 함께 읽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벅차게 느껴졌던 것 같아. 이 소설은 무용함의 결정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거든. 가끔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시간이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 아주 섬세한 심리를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한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는데 이런 기분을 이해해 줄 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현실적으로 도움 안 되는 책을 참 열심히도 읽는다고 핀잔을 들을 것만 같고. 그래서 혼자 읽고 있었다면 참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네가 함께 읽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해졌어. 무용한 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시간을 누리며 사는 우리 인생이 너무 멋지지 않아?     


나는 계산적인 성격이어서 손해 보는 건 싫거든. 뭔가 손해를 본 것 같으면 내가 지불한 돈이든, 시간이든, 정성이든 그게 뭐가 되었든 의미부여를 하려는 오래된 습관이 있어. 어릴 때의 마음은 뭔가 속상한 심정을 상쇄하고 마음 씀씀이 넓은 사람인 체하기 위한 안간힘이었을 거야. 하지만 처음엔 억지로 의미 부여해가며 만들어낸 가치였을지 모르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그 가치들의 진가를 알게 된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귀한 것들이 있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나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가도 알게 되었고. 정신 건강을 위해 선택했던 습관이 물질의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 보상이나 행운들을 발견하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아. 오랜 훈련 덕분에 공짜로 주어지는 행복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찾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라는 존재가 나의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4월이었어.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도 참 좋고 말이야. 우리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2022.4.30. 너에게 종자기를 맡기고 나는 백아가 하고 싶은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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