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집가 May 17. 2017

삽질 총량의 법칙

모험생활자의 창업기록, 첫번째 이야기


우울과 무기력을 애써 견디며 강남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일년에도 몇십개씩 쏟아져 나오는 창업지원사업 중 조건에 맞는 몇몇곳에 지원서를 냈고, 한곳으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와서 막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으레 형식적인 과정이겠지. 지원금도 얼마 안되는데...' 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면접관들로부터 제대로 된 강펀치를 맞았다. 결코 예의가 없거나 불합리한 질문은 아니었다.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기관에서는 충분히 던질만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 사업, 정말 되겠어요?


'음, 그게, 저, 어쩌구저쩌구...'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사실 될 만 하다고 판단했으니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하겠다는거고, 그러나 실제로 될지 안될지는 해봐야 아는거고, 그들은 내가 어째서 안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검증된 가설과 창업자로서의 확신을 듣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화려한 수식으로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을만큼 비즈니스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없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가 이내 곧 불안해지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회초년생일 때 회사 대표님께서 주니어들을 불러모아 앉혀놓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 하지말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러나 창업을 결심한 이후 지금까지, 매일이 일희일비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말할 정도로 하루에도 몇번씩 멀미나는 롤러코스터를 탄다('아니,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해?'라는 질문을 나 역시 스스로에게 던진다, 잘 알고 있다...). 대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보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한 상태가 더 잦고 길다. '나만 이렇게 헤매나? 나만 바본가?' 하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일이 다반사고, '나 원래 안이랬는데? 왜 이렇게 중심도 뿌리도 없이 흔들리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모습이 낯설다. (자학을 경험하고 싶다면 창업을 준비해보세요...)


창업에 대한 수많은 책들은 말한다. 창업 그리고 경영은 셀 수 없이 거절을 당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창업자 스스로가 절대 자기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수많은 성공한 기업가들은 이렇게 보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은 그 단 1초의 충만한 행복감이 몰려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때문에 견디는 거라고. 


진짜로 그 순간이 올까? 찰나의 충만한 행복감, 그런 게 세상에 있기나 한 걸까?




며칠 전 업계에서 오래 알고 지낸 선배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아이고 선배님- 제가 요새 이렇게나 고민이 많답니다. 오구구 우쭈쭈 좀 해주세요' 했더니 선배는 내게 되물었다.


"꼭 창업을 해야 하는거야?"


잠시 숨을 멈추고 머리를 굴렸다. 단 3초만에 '창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내지는 하고 싶다'는 선택지에는 그 이유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러나 '창업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 내지는 하기 싫다'라는 선택지에는 딱히 매달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 막막함이나 두려움 정도일 뿐 그 무엇도 적절한 답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유일한 문제도 아니고(사실 그런 건 애시당초 없지만), 솔루션이 (아직은) 완벽하지도 않다. 이미 잘 짜여진 솔루션과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그리고 소셜미션에도 동의할만한 조직에 들어가 기여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내가 지난 2년 반 동안 해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런데도 나는 창업을 그것도 당장(이 뭐야, 아마도 평생) 돈도 제대로 못버는, 성공 가능성이 더 희박한, 소셜벤처 창업을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이것을 축복이라고 여겼다. 카일과 같이 시작한 이 모험은 단순한 사업도, 단순히 재미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경험이었다. 우리는 영업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산업을 학습해 나가면서 우리의 무지가 오만과 결합되었을 때 어떠한 대가를 치르는지도 알았다. 또한 역경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얼마나 회복력이 강하고 탁월하게 수완을 발휘하는지도 알았고, 사업상의 문제를 예측하고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종합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직접 운영하는 사업이 가져다주는 승리를 만끽했다.

<마우스 드라이버 크로니클 The MouseDriver Chronicles>, 존 러스크(John Lusk) & 카일 해리슨 (Kyle Harrison)


몸으로 구르고 머리로 배울 때 쟁취할 수 있는 축복에 나는 갈증이 났다. 사업이 엄청나게 잘 되서 누릴 수 있는 영광보다는(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업이 잘 안되고 벽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6개월 전에는 쪼무래기였는데 그나마 조금 나아진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인간으로 오늘을 살고 싶었던 거다. 물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소셜미션도 달성하고. 결국, '수익성 예측불가의 위험천만한 장기자산'에 즉, 창업이라는 놈에게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들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거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사업계획서를 썼다 지웠다 고치기를 반복하며 생각했다. '이 번드르르한 사업계획서는 어차피 곧 있으면 쓸모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될텐데 뭐 할라고 이렇게 공을 들이나?'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가는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내가 유일하게 믿는 법칙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삽질 총량의 법칙'이다. 무슨 말이냐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실행해야만 하는 삽질의 총량이 정해져있고, 미래에 할 삽질을 오늘 조금씩 조금식 땡겨다 쓰면 땅이 점점 단단해져 그 위에 세울 빌딩은 지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탄탄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즉, 스스로에게 일부러 발을 걸어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지는 이 삽질을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보수공사 하느라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또 기꺼이, 즐겁게 삽질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이 온 삽질의 과정을 섬세한 근육으로 전환하기 위해 즉, 내가 경험한 모든 배움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대단한 통찰력이 담긴 글이 될 것 같진 않지만(내가 피터 드러커나 필립 코틀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소중하니까), 누군가 그러던데 'Thinker'보다 'Do-er'가 위대하다고. 또 니체도 말했다, "악행과 선행 사이에 종류의 차이란 없다. 기껏해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속좁은 생각만 하고 있으니 차라리 악행이라도 저지르는 게 낫다고. 


훗날 혹시라도 나의 소셜벤처 창업기를 묶어서 책으로 낸다면, 아마 첫장의 제목은 이렇게 해야겠다. 


"천 번을 삽질해야 기업가가 된다." 


에이, 이건 너무 삽질이었지?



+ 보태기. 나를 우울함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그 지원사업은 어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