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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Feb 03. 2024

내가 좀 더 용감했더라면


 몇 해 전에 수진언니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았던 Untamed (언테임드: 길들여지지 않은)를 읽고 있다.

 매일 읽지는 못하지만 한번 집어 들면 반드시 두 챕터 이상 읽기로 마음먹고 실천하는 중이다.

 오늘의 챕터에서 작가 글레넨 도일 Glennon Doyle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What kind of life/relationship/family/world might I have created if I'd been braver?

내가 좀 더 용감했더라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가장 내밀한 마음속에 자리한 두려움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눈을 감고, 머리를 침대 헤드에 기댄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의 인생은 내 마음속의 어떤 두려움과 타협한 결과일까?


 1. 나는 안락한 생활환경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무서웠다.

 가난과 위험이 정말로 그렇게 두려운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나에게 주어진 안락과 안전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막연하게 '이 환경은 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중요한 울타리'라고 믿어왔던 것 같다.

 나에게 용기가 좀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진짜 멋진 사람과 연애를 해봤을지도 모른다. 내면이 성숙하고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20대의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첫 번째 필터로 '집안 배경'을 봤다.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데이트했다. 다행히 좋은 연애도 해봤고, 멍청한 연애도 했다.

 가장 멍청한 연애는 내가 꼭 나 같은 놈(?)을 만났을 경우였다. 그 사람에게도 필터가 있었겠지. 외모 집안 학벌, 그리고 아마 애교의 기술? 뭐가 되었든 필터 켜고 만난 사람들은 조건에 좀 더 부합하는 검색 결과가 나오면 미련 없이 떠난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왠지 그 필터 바깥세상에 굉장히 멋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만 같다. 아니어도 별 수 없고. 어차피 늦었다.



2.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두려웠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첫째,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세상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서 잘못된 조언과 기대를 하기도 한다.

 둘째, 나를 아낀다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너무 잘되는 건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지혜와 용기가 있었다면 나는 훨씬 빨리 한국에서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괜한 오해는 노노. 나는 누구보다 Korea를 사랑하고 K beauty와 K food에 열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의 공기와, 가족 & 친구들과, 몇 곳의 식당과 피부과와 엄청 자연스럽게 속눈썹을 말아주는 뷰티숍이 그립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남들의 생각은 내 인생을 사는데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여자 아이, 여자 사람에 대한 세상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참고,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남들에게 공을 돌리느라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 시간들이 아깝다. 나에게 미안하다.


 



 괜. 찮. 다.

 마흔 중반인 지금, 나는 딱 절반을 살았고, 앞으로도 운이 좋다면 약 마흔 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맞이할 테다.

 좀 더 용기를 내어 계속 살아가고 나를 알아가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좀 더 진짜의 내 모습이 되어 있을 거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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