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한 배심원의 기억
어느 봄날, 나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법정에 앉아있었다. 피고인석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술에 취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곤 했고, 과일가게 주인을 향해 녹슨 식칼을 들었다는 혐의였다. 검사는 9년을 구형했고, 다른 배심원들도 비슷한 수준의 형량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6개월이라는 형량을 적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고민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물음으로 이어졌다.
법의 형식성과 정의의 간극
검사가 구형한 9년이라는 시간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수백억의 사기를 저지른 경제사범이 받는 형량과 비교해볼 때, 이 할아버지의 범죄에 대한 9년이라는 형량은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살인미수라는 동일한 죄목에 대해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정의의 실현일까?
법은 형식적 정의를 추구한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 동일한 처벌을 내리는 것, 이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정의가 때로는 실질적 정의와 충돌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로운 노인의 일탈과,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를 과연 같은 잣대로 재단할 수 있을까?
능력주의의 허상을 넘어서
이러한 고민은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수능이나 각종 시험에서의 '공정성' 논란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의 평등만을 이야기하며, 출발선의 차이를 외면한다. 어떤 정서적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어떤 교육적 기회를 가졌는지는 철저히 무시한 채, 오직 시험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이는 법정에서 마주친 그 할아버지의 사연과 닮아있다. 우리는 그의 인생에서 어떤 상처와 결핍이 있었는지, 어떤 사회적 고립이 그를 술과 절도로 이끌었는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단지 법조문에 따라 형량을 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조화를 향해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보며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은, 법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되어 오히려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는 법치주의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할 것이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의 형식성을 넘어서는 실질적 정의에 대한 고민이다.
나가며: 새로운 정의를 향한 물음
배심원석에서 느낀 그 무거운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 노인의 형량을 결정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의는 법조문 속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속에서, 그리고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는 실질적 정의에 대한 고민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결코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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