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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보이지 않는 선택의 법칙

by Raphael

이번에는 우리가 매일 수십, 수백 가지 결정을 내릴 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네 가지 강력한 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사회적 선호, 위험 선호, 기본값, 그리고 주목성. 이 네 가지는 당신이 오늘 어떤 회의에 참석할지, 어떤 프로젝트를 선택할지, 심지어 점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 불공정한 업무 배분과 최후통첩

월요일 아침 팀 회의. 이번 분기 신규 프로젝트 배분 시간입니다. 팀장이 발표합니다. "이번 A프로젝트는 박 대리가 70% 담당하고, 김 과장과 최 대리가 각각 15%씩 지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성과급은 기여도에 따라 나눌게요."

박 대리는 속으로 계산합니다. '70%의 업무를 하면서 성과급도 70%만 받는 건가? 그런데 김 과장은 15%만 하고도 과장이니까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겠네...' 순간 박 대리는 "팀장님, 이 프로젝트는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팀장과 다른 팀원들이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박 대리도 이 프로젝트가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 직장에서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행동경제학 실험에서 사람들은 불공정한 제안을 받으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 제안을 거부합니다. 전통 경제학이라면 "조금이라도 이득이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겠지만, 실제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s)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리의 거부는 비합리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정성에 대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팀 내에서 더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투자입니다. 만약 이번에 받아들인다면,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계속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며칠 후 팀장은 박 대리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업무 배분과 성과급 구조를 재조정했습니다. 박 대리는 단기적 손실(프로젝트 거부)을 감수하고 장기적 이익(공정한 대우)을 얻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팀 내 업무 배분은 훨씬 더 투명하고 공정해졌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불공정한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때로는 거절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선호는 우리가 단순한 경제적 계산기가 아니라, 공정성과 호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화요일 오후,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 얼어붙는 이유

마케팅팀의 정 과장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습니다.

선택 A: 기존 제품 라인의 마케팅 캠페인. 안정적이고, 실패 확률이 낮으며, 성과도 예측 가능합니다. 예상 성과급은 300만 원 정도.

선택 B: 완전히 새로운 제품의 런칭 캠페인. 성공하면 1000만 원의 성과급과 승진 가능성, 하지만 실패하면 팀 내 입지가 흔들리고 다음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계산하면 B의 기댓값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 과장은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A를 선택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이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입니다.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약 2배 더 강하게 느낍니다. 1000만 원을 얻을 가능성보다, 현재의 안정적인 위치를 잃을 가능성이 정 과장을 더 크게 압박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프레이밍하면 선택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만약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정 과장, A 프로젝트를 계속하면 앞으로 3년간 현재 위치를 유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B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내년에 차장 승진이 거의 확실합니다. 물론 도전하지 않으면 승진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갈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A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승진 기회의 손실'로 프레이밍됩니다. 같은 상황인데도 우리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 과장은 결국 A를 선택한 후 6개월이 지나 후회했습니다. B를 선택했던 동료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승진했기 때문입니다. 정 과장은 깨달았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 게 아니라, 잃지 않으려고만 했구나."

여러분도 새로운 기회 앞에서 "만약 실패하면 어쩌지?"부터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것은 당신이 소심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질문을 바꿔보세요. "실패하면 뭘 잃지?"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으면 뭘 놓치지?"

수요일 아침, 회의 시간은 왜 항상 1시간일까

수요일 아침, 이 대리는 캘린더를 확인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 회의는 항상 1시간이지? 정말 1시간이 필요한 걸까?"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회의가 실제로는 3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회의가 1시간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회사 캘린더 시스템에서 회의를 잡을 때 기본값(default)이 1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본값의 힘은 놀랍습니다. 장기 기증 동의율 연구를 보면, '자동 동의(opt-out)'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90% 이상의 동의율을 보이는 반면, '수동 동의(opt-in)' 방식 국가는 10-20%에 불과합니다. 같은 사람들인데도, 기본값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대리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 팀 회의를 잡을 때, 기본 시간을 25분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회의 초대장에 "필요하면 연장 가능"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회의는 정확히 25분 만에 끝났고, 연장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더 집중했고, 불필요한 잡담이 줄었습니다.

이 대리는 다른 기본값들도 실험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메일 답장 기한을 "가능한 한 빨리"가 아니라 "48시간 이내"로 명시했습니다. 회의 참석자 기본값을 "전체 팀"이 아니라 "필수 인원만"으로 바꿨습니다. 업무 문서 저장 위치 기본값을 "내 PC"가 아니라 "공유 드라이브"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작은 기본값의 변화들이 모여서, 팀의 업무 방식이 점차 효율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바꿔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저 기본값을 조정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기본값을 따랐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는 어떤 기본값들이 숨어 있나요? 회의 시간, 보고서 형식, 의사결정 프로세스... 이 기본값들이 정말 최선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랬으니까" 유지되고 있는 건지 한번 살펴보세요. 기본값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습니다.

목요일 오후,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의 비밀

기획팀의 한 차장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매주 작성하는 시장 분석 보고서가 있는데, 10페이지가 넘는 상세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임원진이 제대로 읽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회의에서 보고서에 이미 나와 있는 내용을 계속 질문받습니다.

한 차장은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데이터도 정확하고, 분석도 치밀했습니다. 그런데 왜 읽히지 않을까요?

문제는 주목성(salience)이었습니다. 보고서는 10페이지에 걸쳐 균등하게 정보가 분산되어 있었고, 무엇이 중요한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임원진은 하루에 수십 개의 문서를 봅니다. 복잡하고 길게 설명된 정보보다는, 간단하고 직관적이며 눈에 띄는 정보에 주목하게 됩니다.

한 차장은 보고서 구조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첫 페이지에 핵심 메시지 3가지만 크고 굵은 글씨로 배치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전략적으로 사용해서 주목해야 할 수치를 강조했습니다. 복잡한 표는 간단한 그래프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 보고서 제목을 "2024년 3분기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30억 시장"으로 바꿨습니다.

다음 주 회의에서 CEO가 먼저 말했습니다. "한 차장, 이번 보고서 정말 잘 봤어요. 특히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한 차장은 놀랐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거의 같았습니다. 바뀐 것은 정보의 '주목성'뿐이었습니다.

주목성의 원리는 이메일에도 적용됩니다. 영업팀의 김 대리는 중요한 제안서를 이메일로 보낼 때, 제목을 바꾸는 것만으로 답장률을 2배 높였습니다. "제안서 송부드립니다"가 아니라 "다음 주 화요일까지 검토 부탁드립니다"로 구체적인 행동을 명시한 것입니다.

마케팅팀의 박 과장은 사내 공지사항을 올릴 때, 중요한 내용은 이메일 본문 첫 줄에 배치하고, 덜 중요한 내용은 하단으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공지 숙지율이 40%에서 75%로 증가했습니다.

여러분의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고 있나요? 내용이 훌륭해도 주목받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주목성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명확하게 만드세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숨겨진 것을 눈에 띄게 만드세요.

금요일, 네 가지 힘을 통합하는 순간

금요일 오후, 인사팀의 조 부장은 새로운 복지 제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헬스장 이용권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 유사한 제도들이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청자가 적었고, 신청한 사람들도 몇 달 후 이용을 중단했습니다.

조 부장은 이번 주 배운 네 가지 개념을 모두 적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기본값을 활용했습니다. 직원들이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 없음"이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자동 제공, 원치 않으면 거부 가능"으로 바꿨습니다.

다음으로 주목성을 높였습니다. 복지 안내 이메일 제목을 "헬스장 이용권 제공 안내"가 아니라 "매월 15만 원의 건강 혜택이 대기 중입니다"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메일 첫 문장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음 주부터 자동으로 이용 가능합니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손실 회피도 활용했습니다. "헬스장을 이용하면 건강해집니다"가 아니라 "매월 15만 원의 혜택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됩니다"라고 프레이밍했습니다. 이득보다는 손실의 프레임이 더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선호를 자극했습니다. "팀 단위 헬스장 이용 챌린지"를 만들어서, 팀원들끼리 함께 운동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팀에 대한 책임감이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합니다.

3개월 후,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전 제도의 참여율이 15%였다면, 새로운 제도는 65%의 직원이 실제로 헬스장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에도 50% 이상이 꾸준히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조 부장은 깨달았습니다.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설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당신의 선택을 다시 디자인하기

이번 주 우리는 네 가지 강력한 힘을 살펴봤습니다. 사회적 선호는 우리가 단순한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공정성과 호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손실 회피는 왜 우리가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지 설명합니다. 기본값은 작은 설정의 변화가 큰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주목성은 내용만큼이나 전달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다음 월요일, 여러분이 마주할 상황들을 한번 이 프레임으로 바라보세요.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거절할 용기를 내세요. 새로운 기회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그것이 손실 회피 때문인지 자문해보세요. 조직의 비효율을 발견했다면, 기본값을 바꿔보세요. 당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주목성을 높이세요.

행동과학은 사람들을 조종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과 환경을 만드는 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수백 가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들이 조금 더 현명해진다면, 우리의 직장 생활은, 그리고 삶은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이제 그 변화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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