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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말하는 것들

by Raphael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세요." 직장에서 흔히 듣는 조언입니다. 하지만 LSE 행동과학 강의에서 배운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는 뇌 손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환자들이 간단한 일상적 결정조차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정은 방해물이 아니라 필수적인 나침반입니다.

월요일 아침, 분노의 이메일을 보내기 직전

월요일 아침 9시, 기획팀의 재훈은 주말 내내 작업한 제안서가 담당 임원에게 단 한 줄의 피드백과 함께 반려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방향이 잘못됐습니다. 다시 작성하세요."

재훈의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이 떨렸습니다. 즉시 이메일 작성창을 열었습니다. "임원님, 이번 제안서는 지난주 회의에서 말씀하신 방향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설명 없이 다시 하라고만 하시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문장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쓰려는 순간, 재훈은 멈췄습니다. 어제 저녁 행동과학 강의에서 들었던 '우발적 감정(incidental emotions)'이라는 개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발적 감정은 현재 상황과 직접 관련 없는 감정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재훈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주말 내내 일했고, 잠을 제대로 못 잤으며, 아침에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로 이 이메일 때문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일까?'

재훈은 작성하던 이메일을 저장하고 닫았습니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5층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10분 후 돌아왔을 때, 다시 이메일을 열어봤습니다. 놀랍게도 방금 전에는 '정당한 항의'처럼 보였던 문장들이 이제는 '경력을 망칠 수 있는 감정적 폭발'로 보였습니다.

재훈은 이메일을 완전히 다시 썼습니다. "임원님, 제안서 검토 감사합니다. 방향 수정을 위해 30분 정도 미팅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부분이 기대와 달랐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한 시간 후, 임원과의 짧은 미팅에서 재훈은 깨달았습니다. 제안서의 방향이 틀린 것이 아니라, 임원이 금요일 오후에 받은 새로운 정보를 재훈이 몰랐던 것뿐이었습니다. 만약 아침에 그 감정적인 이메일을 보냈다면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게 틀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화가 난 상태에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인 적이 있나요? 그 순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말 이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감정일까?" 우발적 감정과 의도적 감정(현재 상황과 직접 관련된 감정)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화요일 오후, 직감이 말하는 것

투자심사팀의 수진은 두 개의 투자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A안과 B안 모두 재무적 지표는 비슷합니다. 매출 성장률, 수익성, 시장 규모 모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스프레드시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A안을 볼 때는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배에 묵직한 돌이 놓인 것 같은 느낌. B안을 볼 때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전통적인 직장 문화라면 "수진 씨, 감정은 배제하고 데이터를 보세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진은 최근 배운 소마틱 마커 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을 떠올렸습니다. 신경과학자 다마지오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상황에 신체적 반응을 연결시킵니다. 이 신체적 반응이 바로 '직감'입니다.

수진은 자신의 불편한 느낌을 무시하지 않고,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A안의 창업자 프로필을 다시 읽고, 사업계획서를 다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창업자의 이력서에 미묘한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3년간 근무했다고 적힌 회사가, LinkedIn에서는 1년 반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더 조사해보니, 창업자는 과거 다른 스타트업에서 투자금 용도를 잘못 사용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법적 문제는 없었지만, 투자자들과 신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정보는 수진이 한 달 전 다른 케이스에서 접했던 내용이었고,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수진은 B안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6개월 후, A안에 투자했던 다른 VC는 창업자와의 신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B안은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오와 도박 과제 실험을 보면, 사람들은 40~50번의 시도 후에야 의식적으로 어떤 카드 더미가 나쁜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신체 반응(땀, 심박수)은 10번 만에 이미 나쁜 더미를 감지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의식보다 먼저 압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직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직감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원인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 사람이 불편할까?" "왜 이 제안이 마음에 안 들까?" "왜 이 결정이 불안할까?" 직감은 종종 의식이 놓친 패턴을 포착합니다.

수요일 아침, 팀 회의에서 터진 감정

수요일 오전, 주간 팀 회의. 마케팅팀의 7명이 모여 있습니다. 팀장 민수가 지난주 캠페인 결과를 발표하는 중입니다. "이번 캠페인 ROI는 목표 대비 70% 수준입니다.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때 막내 유진이 손을 들었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제가 제안했던 인플루언서 마케팅 방식을 썼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제 의견은 왜 반영되지 않았나요?"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민수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유진 씨, 그 건은 이미 논의했고 예산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했잖아요."

유진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냥 안 된다고만 하셨잖아요. 저는 항상 제 의견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요."

민수도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거예요. 신입이 회사 사정을 다 알겠어요?"

갈등은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다른 팀원들은 어색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회의는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났고, 두 사람 모두 화가 난 채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감정적 휴리스틱(affect heuristic)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 모두 감정이 판단을 지배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진은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무시'로 해석했고, 이 부정적 감정이 상황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수는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다고 느꼈고, 이 위협적 감정이 방어적 반응을 촉발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민수는 유진을 따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유진 씨, 어제는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했어요. 미안해요. 사실 요즘 다른 프로젝트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거든요. 그게 어제 반응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인플루언서 마케팅 아이디어,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요?"

유진도 한 발 물러섰습니다. "저도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어요.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게 회의에서 튀어나온 것 같아요. 죄송해요."

두 사람은 30분간 차분히 대화를 나눴고, 결국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소규모로 테스트해보기로 합의했습니다. 만약 민수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만약 유진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자각하지 못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게 틀어졌을 것입니다.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왜 화가 났지? 이 화가 정말 이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 간단한 질문이 갈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목요일 저녁, 이직 결정 앞에서

목요일 저녁 7시, 경력 5년 차 개발자 현우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개의 이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회사 A: 대기업, 연봉 30% 인상, 안정적, 명확한 커리어 패스, 하지만 업무는 현재와 비슷하고 성장 가능성은 제한적.

회사 B: 스타트업, 연봉 10% 인상, 불안정, 스톡옵션, 새로운 기술 스택, 빠른 성장 가능성, 하지만 실패 위험도 높음.

엑셀 시트를 만들어 장단점을 비교했습니다. 점수를 매기고, 가중치를 부여했습니다. 결과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현우는 며칠 밤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행동과학 강의에서 배운 '소마틱 마커'를 활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봤습니다.

먼저 회사 A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깔끔한 사무실, 체계적인 프로세스, 정시 퇴근, 예측 가능한 업무... 그리고 신체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편안함, 안정감, 그리고... 약간의 답답함? 가슴이 약간 답답하고, 에너지가 빠지는 느낌.

다음으로 회사 B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작은 사무실, 빠른 의사결정, 밤샘 코딩, 불확실성... 그리고 신체 반응은? 약간의 불안, 긴장,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끝이 저리고,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

현우는 깨달았습니다. 머리로는 A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B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흥분은 사실 같은 생리적 반응입니다. 차이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현우는 한 가지 더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10년 후 나는 어떤 선택을 후회할까?" A를 선택한 미래를 상상했을 때, "그때 B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가 느껴졌습니다. B를 선택한 미래를 상상했을 때는,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시도는 해봤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우는 회사 B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우에게는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몸이, 그의 무의식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계신가요? 머리로만 계산하지 마세요. 몸에게도 물어보세요. 각 선택지를 상상할 때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세요. 가슴이 답답한지, 숨이 편한지, 에너지가 올라오는지 빠지는지. 우리의 몸은 종종 우리의 머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 프레젠테이션 5분 전

금요일 오후 2시 55분. 영업팀의 지혜는 5분 후 중요한 투자자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떨립니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반복됩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지혜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진정해. 긴장하지 마. 괜찮아."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긴장됩니다.

그때 지혜는 최근 읽은 연구를 떠올렸습니다. 긴장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재해석하라는 것.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나는 진정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흥분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지혜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거울을 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긴장한 게 아니야. 흥분한 거야. 이 심장 박동은 두려움이 아니라 에너지야. 내 몸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거야."

놀랍게도, 같은 신체 증상인데 프레이밍을 바꾸자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두려움이 아니라 날카롭게 만드는 각성으로 느껴졌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지혜는 자신감 있게 질문에 답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 동료가 물었습니다. "전혀 긴장한 것처럼 안 보이던데, 비결이 뭐예요?"

지혜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긴장 안 한 게 아니에요. 긴장을 흥분으로 바꾼 거죠."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재해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불안과 흥분은 생리적으로 거의 같습니다. 차이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라벨링하느냐입니다. 다음에 중요한 발표나 미팅을 앞두고 긴장된다면, "긴장하지 마"라고 말하지 마세요. 대신 "나는 흥분했어. 이 에너지를 활용할 거야"라고 말해보세요.

감정이라는 나침반 다시 보기

한 주간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감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역할을 합니다. 감정은 제거해야 할 노이즈가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신호입니다.

분노는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불편함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일 수 있습니다. 긴장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후회의 예감은 가치관과 어긋나는 선택이라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감정을 인식하는 것. "나는 지금 화가 났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나는 지금 흥분했다" 단순히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지배력은 약해집니다.

둘째, 감정의 출처를 파악하는 것. 이 감정이 현재 상황 때문인지(의도적 감정),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것인지(우발적 감정) 구분하는 것입니다. 주말에 못 쉬어서 화가 난 건지, 정말 이 제안이 불공정해서 화가 난 건지 구분해야 합니다.

셋째, 감정을 재해석하는 것. 같은 신체 반응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려움이 될 수도, 흥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월요일, 강한 감정이 올라올 때 즉각 반응하지 마세요.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 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그 답을 듣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첫걸음입니다.

감정과 이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이성이 놓친 정보를 제공하는 또 다른 지능입니다. 둘의 조화가 진정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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