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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8. 2018

펑펑 울고 따박따박 말하기

엄마와의 익숙한 대화 패턴 끊는 법

“잠깐 앉아봐” 점심상을 앞에 둔 엄마가 나를 불러 앉혔다. “엄마가 부탁 좀 하자” 나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엄마도 오랜 시간 밤잠 못자고 뒤척였을 거란 걸 알기에 군말 없이 앉았다. 어떤 부탁인지는 몰랐는데 대뜸 충주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남편의 본가이자 나의 시가인 그곳에 가서 나 대신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할 테니 같이만 가자며 나를 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앉았다.  ‘이건 엄마의 의견일 뿐이야. 엄마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잖아. 엄마가 부탁하는 거니까 들어줄 수 없다고 하면 돼’ 숨을 고르며 되뇌었다.


엄마의 부탁은 곧바로 설득을 가장한 강요로 변했다. 당신의 딸이 잘못을 저질렀으니 엄마라도 가야 한다고, 어른들이 이만큼 기다렸으면 너도 그만 해야 한다고, 네 시아버지 얼굴만 생각하면 너무 죄송해서 마음이 아프다며 어쨌든 가야한다고 못박았다. 날짜까지 정할 기세였다. 엄마의 손이 불쑥 내 가슴팍을 뚫고 안으로 들어와 엄마의 의도대로 주무르고 휘젓는 것 같았다. 한숨 길게 내쉬고 밥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가에서 십년간 설거지를 도맡아하던 내가 이제 설거지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며느리의 의무는 없지 않느냐 했던 내 행동이, 난데없이 왜 엄마에게 죄책감을 주는지 의문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했던 건 아닐까’라며 나 역시 내게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던 터라 엄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 사실 자체가 또 다시 분노로 올라왔다.


엄마와 나 사이에 굵은 실선을 긋고 또 그었다. 나는 식탁이 갈라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경계를 긋는데 바닷가 모래 위에 그은 선처럼 자꾸 흔적 없이 사라진다. 차분하고 분명하게 의견을 전하려고 말을 골랐다. 그 말이 곧 엄마와 나 사이에 그어질 경계일 테니. 나지막이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가 멈추지 않아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내 마음속을 헤집던 엄마의 손가락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내 피를 뚝뚝 흘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 나이 서른여섯, 그간 무수히 반복되었던 엄마와 나의 대화 패턴이다.


이십여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의 ‘레이어드 컷’과 비슷한 일명 ‘명세빈 머리’가 유행했었다. 층 없이 밋밋했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싶어서 미용실에 갔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 손에 머리채를 잡혔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까지 이러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하며 정신차리라고 했다. 난 단지 연예인 머리를 따라했을 뿐인데 왜 엄마를 사네, 못사네 하게 만드는 건지 흔들리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수많은 물음표를 띄웠었다. 난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혼자 벌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절망하게 만든 딸로 밤을 보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웃지 못했고 교실에 혼자 남은 체육시간에서야 책상에 엎드려 마음 놓고 울었다.



"마음이 어때?"

묻고 듣고 느끼는 것, 그것이 대화의 시작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에게 묻고 말하기로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설거지는 나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왜? 안 하겠다고 말할 수 있잖아. 왜 못해? 왜? 왜!” 울음이 터져나왔고 엄마는 놀란 듯 보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또 우네, 또 울어. 무슨 말을 못하게 울어. 그쳐!”라는 강압적인 말로 당신의 당혹스러움을 표현했다.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왜! 왜! 우는 게 어때서? 눈물이 나는데 왜 울지 말래? 울면 어때? 눈물이 나면 우는 거지!” 악을 쓰며 울었다. 깨진 무릎을 부여잡고 우는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이 끓어오르면 고일 새도 없이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가슴에 턱 자리잡았던 돌덩이가 눈물에 밀려 조금씩 움직였다.


엄마와의 오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가 수용할 만한 말들만 해왔다. 관계는 그럭저럭 이어졌지만 내 속에서는 배가 뒤집어질 만큼 큰 파도가 일었다.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말로 표현했을 때 엄마는 크게 흔들리며 주저앉을 것 같았다. 고스란히 내가 죄책감으로 가져올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 예상일 뿐이고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자의 몫이다. 또한 내 괴로움이 엄마의 절망을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커졌으므로 나는 파도에 소리를 실어 밖으로 내보냈다.


화난 사람은 나고, 제일 마음 불편한 사람도 나라고 호소했다. 물론 내 남편이자 엄마의 사위인 박서방과 같이 살면서 편치 않은 엄마 심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내 마음에 난 상처와 화가 먼저다. 난 그것밖에 안 보여서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건 엄마 걱정이니까 엄마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내 마음은 아직도 화가 나서 이렇게 뜨거운데, 내 속은 아무도 안 보고 왜 상황만 해결하려고 하느냐, 나는 내 마음이 먼저다. 엄마 마음 편하자고 겉보기에 좋은 관계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하지 말라 달라.


말을 꺼내자 울음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울지 말라고 소리 지르던 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도 어느 정도 가신 것 같았다. 엄마는 “알았어. 그럼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엄마가 일체 말 안 꺼낼게. 그럼 됐지?”라고 물었고 나는 번뜩 꼭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아니야, 말해도 돼. 물어봐 줘. 뭘 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줘. 그건 괜찮아.”


가만히 듣던 엄마는 내 말이 끝나자 풋 하고 웃었다. 꼭 그렇게 간지럽게 물어봐야 되냐는 눈빛으로 웃음을 섞으며 물었다. “아이고, 네네. 따님, 지금 마음은 괜찮으세요? 어떠세요? 이렇게 물으라고? 됐어? 하이고…” 평생 경상도 사람으로 살았는데 어떻게 말투를 바꾸냐며 네가 찰떡같이 들으라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몸서리치며 낯선 길로 한 발 내딛었다. 엄마는 웃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으니까. “응 그렇게 물어봐 줘. 물어봐 줘.”




엄마와 나는 솔직했고 잘못한 부분은 각각 인정하고 사과했다. 부탁으로 시작해서 강요도 있었고, 비난도 했었고, 감정이 격해진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혼나거나, 근래의 어느 때처럼 엄마에게 조목조목 옳고 그름만을 따지고 들던 패턴은 아니었다. 마음으로 들었고 인정했다. 사과했고 요구하고 받아주었다.


딸 선우의 하원 시간이 다 되었다.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엄마가 문틈 사이로 말을 툭 던졌다. “신경 쓰지 말고 다녀 와.” 다시 문을 열어 식탁에 앉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신경 안 쓰이는데? 나 괜찮아.” 정말 괜찮았다. 불편한 문제로 엄마와 부딪히고 나면 온몸이 젖은 듯 무거웠는데 웬일인지 홀가분했다. 엄마가 뒤돌아보자 씨익 웃었다. “엄마한테 퍼붓고 나니까 시원해?”라는 엄마 말에 얄밉게도 “응!” 하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뒤죽박죽인 마음을 보았다. ‘뒤죽박죽이네. 그렇네. 그렇구나’ 마음을 원래대로 복구하기란 불가능하고 나 역시 그걸 바라진 않는다. 어떻게 여며야 할까. 우선은 그대로 두고 느껴보기로 한다. 오늘의 나는 내 마음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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