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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19. 2018

부모님의 이혼은 하나의 사건일 뿐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거든요"

딸 선우의 하원 시간마다 같은 반 엄마 네 명과 함께 아이들을 기다린다. 며칠 전 목요일에는 지난 일요일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느라 월, 화를 건너 뛰고 선거일이었던 수요일을 지나서 오랜만에 그들을 만났다. 적게는 두 살부터 아홉 살 많은 언니들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언니가 어디 다녀왔느냐며 묻길래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고 알렸다. 그러자 언니의 표정이 의아하다. 내가 장례식장을 지켰던 이틀 동안 딸 아이의 등하원을 친정 엄마가 대신했는데 며느리인 친정엄마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는 데에 물음표가 생긴 듯했다. 나와 언니는 잠깐 동안 눈빛을 주고받았다. 언니의 표정을 내가 해석한대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선우…… 할머니가 데리러 오지 않으셨어요?”라고 언니가 물었다. 고마운 물음. “네. 저희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는 잠깐 인사만 드리고 오셨어요.”  




해가 뜨거운 낮 1시 30분, 5, 6, 7세반의 엄마들 스무 명 정도가 모여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병설유치원 교문 앞이었다. 딸 아이 친구의 엄마로 만나 알고 지낸 지는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언니였다. 그와 나와의 거리는 1m 정도, 귓속말이나 소곤소곤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가령 부모님의 귀농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거리낌없이 밝혔다.  


나의 에너지는 부모님의 이혼을 숨겨야 하나 말해도 되나 고민하고, 대부분 숨기는 쪽으로 결정지은 후 아닌 척하는 데에 자주 소모되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이 알게 될까 꽤나 마음을 졸였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으며 ‘왜 나는 평범한 가정 환경이 아닌가, 명절 때마다 왜 오빠와 단둘이서 할머니댁에 가야 하는가’와 같은 불평들을 나에게 쏟아 부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들키면 큰일나는 것처럼 겉으로는 평온하게 지냈다. ‘어른스럽고 대견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평범함’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를 꺼내 놓고 한발 물어난 태도로 행동한 덕분이었다. 할머니댁에서 누군가 ‘밥 먹어라’ 해도 꼼짝 않다가 ‘미연아 밥 먹어’라는 말을 듣고서야 밥상으로 다가갔던 것처럼 보통의 집단에 속하지 않았음을 몸에 새기며 자랐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다.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두려웠다. 나조차 평범함을 정상성으로 이해한 채 나의 환경을 비정상이고 예외적인 상태로 여겼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현실을 외면한다 한들 이혼 가정, 엄마가 홀로 키우는 한부모 가정, 동사무소로부터 얼마간의 지원금과 쌀을 받는 저소득 계층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처한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라는 깨달음은 서른이 넘어서야 왔다. 그것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서서히 가져오다가 행동에 옮긴 시점이 아마도 며칠 전 그 후문 앞이 아닐까 싶다.  


십대와 이십대를 거치면서 부모의 이혼을 알리는 횟수는 늘었지만, 숨겨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태도는 여전했다. 이 일을 알게 됨으로써 나를 보는 상대의 시선이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또한 바뀐다 한들 그것이 나와 부모를 향한 비난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에 벌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불편한 상황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제는 타인의 태도를 내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김애란의 소설 「가리는 손」의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라는 말에서도 힌트를 찾는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내가 상상한 만큼 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는다. 학기초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노려보며 아빠의 이름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자랐던 비밀의 역사를, 나의 과거를, 나의 일부분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혼과 동시에 주어지는 이혼선택권


이혼은 결혼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 하나이다. 나 역시 기혼자이기에 이혼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혼이 곧 불화, 불행, 고통, 결핍, 순탄하지 못한 삶으로 연결되고 다수의 시선이 여기로 향하기에 이혼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역시 불편한 시선에 떠밀려 자꾸만 뒤로 물러나며 자란다. 결혼의 목표가 ‘이혼하지 않기’는 아니지 않은가. 결혼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삶의 한 사건인 이혼을 한 사람의 인생 전체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누군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예나 지금이나 축하를 전한다. 결혼을 앞뒀을 때의 설렘과 신혼 때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좋겠다’와 같은 부러움도 표현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뒤따라 붙는 마음이 있다. 웃음과 깨소금만, 배려와 위로만, 따듯함과 부드러움만 존재하는 것이 결혼이 아님을 알기에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이 머문다. 이혼이 곧 불행한 앞날을 의미하지 않듯 결혼이 마냥 찬란한 미래만을 뜻하지 않기에 정반대에 있던 결혼과 이혼이라는 말이 한 테두리 안에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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