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인 헤어짐을 통하여 만난 슬픔을 향하여 안녕...
“나는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그해 여름 나는 열일곱 살이었고 완벽하게 행복했다...” (p.11)
소설은 위와 같이 시작된다.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제목에서 안녕은 bye가 아니라 good morning에 해당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 직역된 제목 속의 안녕은 자꾸 bye로 읽히려고 한다. 소설의 첫 번째 문단 이후에는 곧바로 ‘그해 여름 나는 열일곱 살’이고 행복하였다는 문장이 따라 붙는다. 절정의 행복감을 누리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녀의 한 복판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이 치달을 것임을 진하게 그러나 아직은 흐릿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 빠르고 격렬하고 일시적인 사랑, 이런 개념에 나는 매료되었다. 나는 당시 정절 같은 것에 매혹되는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몇 번의 데이트, 입맞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권태 이외에는.” (p.20)
열일곱 살의 세실은 이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생활한다. 아버지는 아직 젊고 더욱 젊은 여자들과 만난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생활을 (존중한다기 보다는) 방치하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 현재 나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현재의 정부인 엘자와 함께 휴양지에 머무는 중이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시릴이라는 청년과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이 평화로운 상황에 위기가 닥친다.
“어떻게 해서든 분발해서 아버지와 나, 우리의 지난 삶을 되찾아야 했다. 내가 최근까지 영위해온 유쾌하고 불안정한 이 년, 지난 번 내가 그토록 재빨리 부정해버린 그 이 년이 갑자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매력적으로 비치다니······? 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나는 점토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토는 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p.80)
바로 어머니의 친구였으며 어느 순간 나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안이 그들에게로 뛰어든 것이다. 나는 안에게 이중의 감정 그러니까 저렇게 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는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한 안이 아버지와 엘자 사이에 균열을 만들더니 급기야 결혼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제 세실은 진부해 보이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파격적인 술수를 부린다.
“... 나는 지루함이 죽도록 싫었다. 시릴을 진심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된 후 권태의 영향을 훨씬 덜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시릴과의 사랑은 많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엇보다도 권태가, 고요가 두려웠다. 우리,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는 내적으로 고요해지기 위해 외적인 소란이 필요했다. 그리고 안은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으리라.” (p.159)
세실은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릴을 이용하고, 숨길 수 없는 아버지의 욕망을 이용하여 자신이 얻으려고 하였던 결과에 이른다. 세실은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마음 먹었지만 안의 죽음이라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다. 세실은 맞닥뜨린 ‘슬픔’을 향하여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헤어짐을 통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은 것인지 무엇을 잃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내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p.186)
열여덟 살의 프랑수아즈 사강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출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칠십여 년 전인 1954년이다. 작가의 나이가 너무 어렸고, 소설의 완성도는 높아 대필 의혹까지 있었지만(읽어보면 과연 그럴만도 하다, 싶다) 이후 많은 소설을 발표하여 이를 불식시켰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주목을 받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넘치도록 치른 프랑수아즈 사강은 2004년 지병으로 병원에서 숨졌다.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 김남주 역 / 슬픔이여 안녕 (Bongour Tristesse) / 267쪽 / 2019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