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지 않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신경학 전문의인 작가가 임상에서 경험한 환자들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작성한 기록물이다. 이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궁금하다. 사람의 뇌는 우주만큼이나 방대하고 그만큼 미스터리하며 미지의 것이라고들 한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것보다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단의 현상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꽤 흥미진진하다.
“... 그는 소설 속에 나오는 사건들을 쉽게 기억해냈을 뿐만 아니라 줄거리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각적인 특징이나 시각과 관련된 사건 그리고 시각적인 장면은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는 등장인물들이 한 말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시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정보를 습득하는 데에 문제를 지니고 있는 이 남자는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수도 있는 것...
“이 끝없는 망각, 이 가슴 아픈 자기 상실을 지미는 알았다고도 할 수 있고 몰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문제를 그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런가하면 과거의 어느 시점 이후로 모든 것을 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낯설다. 그에게는 이십여년의 시간이 뭉턱 사라져있기 때문에 옆 사람이 그저 갑작스레 늙어버린 것으로 보일 따름이다. 1분 정도만 현재를 살 수 있을 뿐 1분이 지나면 다시 이십여년 전의 어느 날로 돌아가버리는 그의 끝없는 망각은 한순간 모든 것을 잊고 싶다고 외치고는 하는 우리들에게 공포를 선체험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몸의 감각은 세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각, 평형기관(전정계) 그리고 고유감각이 그것입니다. 환자분의 경우에는 그 가운데 고유감각을 잃었습니다. 보통 우리 몸은 이 세가지가 모두 협조해서 기능을 합니다. 하나가 기능을 상실하면 나머지 두 개가 그것을 어느 정도 보충하거나 대신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크리스티나라는 여성이 겪는 병증도 유별나다. 어느 날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한 순간 고유감각이라는 부분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오감은 고스란히 살아 있지만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다. 눈으로 보아 자신의 다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걸을 수 있고 물건과 자신의 팔을 눈으로 보아야 그것을 집을 수 있다.
“... 기본적인 지각능력은 보통 생후 몇 개월 만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사람이 60세가 되어 처음으로 몸에 익혔다는 사실을 도대체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앞도 보지 못하고 마비 증상까지 있었던 여성, 세상과 단절된 채 무기력하게 일생을 과보호 속에서 지낸 이 여성의 내면에 놀라운 예술적 천성의 싸앗이 숨어 있었고, 그 씨앗이 60년 동안이나 동면상태로 시들어 있다가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답게 활짝 꽃피우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시력을 상실한 체 태어났고 자신의 손을 쓰는 행위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평생을 보냈던 60세 여성이 갑작스레 조각가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야기 속의 노인을 통하여 이런 가능성도 밝혀진다. 모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목숨을 연명했던 노인이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물건을 집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만진 것들을 고스란히 조각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의 몸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이 밝혀진다.
“냄새로 가득 찬 세계, 너무도 생생하고 너무도 현실적인 그런 세계였답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순수한 지각의 세상, 모든 게 선명하고 생기 있는, 자족적이고 충만한 그런 세상이었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개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답니다.”
이 남자는 또 어떤가. 어느 날 갑자기 개의 후각을 가지게 된다면? 주변의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냄새를 통하여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어느 날 갑작스레 동물만큼이나 뛰어난 후각을 갖게 되고, 냄새를 통하여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성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곧 사라지고, 그는 갑작스레 생겼다 갑작스레 사라진 그 능력을 회상한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책 속에는 이외에도 이십여편의 사례들이 실려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흔히 정신병자 혹은 지체 장애자라고 알고 있는 그들은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힘을 빌려 치유하기도 하고 병증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책에서 작가는 이들을 향하여 위엄있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호기심 강한 과학자 혹은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로서 접근한다. 그는 이들의 병을 이해하기에 앞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그들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이러한 애정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리버 색스 / 조석현 역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 이마고 / 444쪽 / 2006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