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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20. 2024

아스카 후지모리 《미크로코스모스》

아스카가 전하는 아스카식의 아스카 시대...

  잔혹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와 역사 비틀기로서의 우화 그리고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철학과 사변이 하나의 소설에 자리잡고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기가 저녁 방송대에나 틀어줄법한 애니메이션을 닮았다. 근대 역사와 고대 역사가 병렬되면서도 뒤섞이고, 버젓이 존재하는 과거가 아니라 마치 오늘 혹은 엊그제의 일처럼 그려지고 있으니 이또한 난감하다. 물론 전작인 『네코토피아』에서 보여주던 예의 그 덤덤한 잔인함은 여전하다. 

 

  “... 통역은 어찌나 취했는지 사태를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두 명의 덩치 좋은 망아니에게 붙들려 작은 방으로 끌려가 처형대에 머리가 올라갔을 때도 그는 음식을 씹던 중이었다. 취기로 인해 클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망나니의 도끼가 목을 내리쳤고, 그의 입과 콧구명에서는 침과 뒤섞인 음식물 몇 조각이 튀어나왔다...” 

 

  소설의 한 축이자 가장 중요한 축은 소가 히토시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태어난 소가 히토시는 ‘소가’라는 성을 쓰고는 있지만 정확히 그 유명 가문의 일족인지 불확실하다. 어머니는 동네 사람 누구에게든 치마를 열어주는 것으로 유명하고, 남편이 전쟁에 참가하느라 중국 땅에 간 뒤에는 훨씬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소가 히토시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결국 아버지는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죽고, 아버지의 부음을 접한 어머니는 그 순간 모든 남자 관계를 끊고 히토시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속의 소가와 함께 소가 가문이 중심에 있는 고대 아스카 시대가 소설의 또다른 한 축을 형성한다. 천황조차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소가 우마코,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우마코의 아들 에미시를 거쳐 아무나 보면 죽이러 달려드는 이루카에게 그 피가 이어진다. 그 사이 일본 최초의 여제인 스이코 천황을 거쳐 스물이 넘어까지 여제의 젖을 빠는 아무나 보면 달려들어 덮치고 보는 우마야도를 거쳐, 최악의 공주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가구야 공주로 이어지는 아스카 시대는 그야말로 야만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천 년을 훌쩍 넘기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만적인 이들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한 복판에 있는 소가씨의 횡포로 도배되어 있는 소설의 또 한 켠에는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또는 대립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가득하고, 이들이 설파한 학문과 이들이 주장하고자 한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전작인 『네코토피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듯 싶은) 글자체를 달리하며 학술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작가의 본심인 듯한 (그런데도 비아냥은 여전하지만) 이 부분까지가 모여 소설은 하나로 완성된다. 

 

  “뿌리 깊은 일부 진부한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겁이 없고 모험가이며 수다쟁이이다. 과학자들은 주장하는 견해도 대담하거니와 성질 또한 옹고집이라 그네들 사이에서 신랄한 논쟁이나 쓰디쓴 경쟁 관계가 다발하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중세 대학들의 싸움, 정의에 대한 인도인들의 논쟁, 선택의 문제에 관한 현대의 논쟁이 그 예이다.” 

 

  물론 소설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는 주인공은 역시 제국주의 시대의 소가 히토시이다. 과학자에서 논리학자로 변모하고, ‘소가’라는 성에 집착할 뿐 아니라, 동시에 까탈스러운 천재이고, 유아살해를 특기로 하며, 의회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싫어하며 그래서 전체주의에 이끌리는 소가 히토시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매력적이다. 

 

  “... 서양인들은 의회민주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제도인 것처럼 굴지만 그것이 유럽에서 억지로나마 자리를 잡는 데는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진 한 세기가 필요했다. 애초 자기네 땅에서 태어난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으면서도 오늘날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허겁지겁 그 괴상한 사상을 받아들인다.” 

 

  고대에서 근대까지 끊이지 않는 일본의 우스꽝스러운 역사적 행보에 대한 비아냥으로도 읽히고, 동양과 서양 중 극심하게 서양에 편향되어 있는 일본의 현재에 대한 비아냥으로도 읽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스카식 캐릭터의 집대성으로 읽히기도 한다. 여하튼 딜레탕트로 보이는 작가의 좌충우돌 행보가 독특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스카 후지모리 / 홍은주 역 / 미크로코스모스 (MikroKosmos) / 문학동네 / 454쪽 / 20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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