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혜순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여태 전위적인, 내게는 버겁기만 한 어떤 발견을 여태 발견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이곳엔 고요가 없다. 이곳엔 어둠이 없다. 이곳엔 고결한 정신 활동이 없다. 이곳엔 역사가 없다. 태양이 여러 개 떠오르는 행성처럼 낮에도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집집마다 틀어놓은 노래 때문에 동서양의 유행가를 수십 개 섞은 정체불명의 소음이 물결쳐온다. 건물들은 오랜 불면으로 피곤해 보인다. 이곳을 거쳐갔거나, 이곳에 뿌리를 박았던 사람의 흔적은 아침에 발견되는 휴지 조각이나 토사물 흔적으로나 남을 뿐. 떠나면 그뿐, 사라지면 그뿐... 누구나 ‘내’가 ‘내’가 될 시간도 없이 이 거리를 떠난다.” (p.182)


시인인 김혜순 선생의 (아내는 선생에게 문학을 배운 적이 있고, 선생은 여태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따라 시인을 지칭할 때 은연중에 선생이라고 말하게 된다) 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마도 이 책에서만 허용된 듯 한 작가의 자아인) ‘않아’가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바로 ‘애록’ AEROK (최인훈은 『태풍』에서 ‘애로크’라는 명명을 사용했다, 고 한다) 이다.


“도대체 우리의 일상적 자아도 아닌 시적 자아가 무엇이 솔직하고, 무엇이 솔직하지 않은지 어떻게 편가를 수 있단 말인가. // 시를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바퀴살 가운데에 둔 것처럼 망각의 기계를 전속력으로 돌려보는 행위다. 실용적인 잣대로 판단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의 재료로 삼을 수도 없는 저 부재를 생산하는 행위다.” (p.23)


찾아보니 작가의 시집 두 권이(《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과 《불쌍한 사랑 기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을 구매하면서 《피어라 돼지》를 함께 구입하였다, 그래서 세 권. 그런데 도통 작가의 시편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전위적인 사랑의 작가, 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이 떠오름을 아내에게 물어보려다 그만둔다. 대신 새로 구입한 이번 시집은 좀더 공을 들여 읽어야겠다, 라고 마음만 먹는다.


“시는 ‘나’에서 ‘나’를 박리해 ‘너’처럼, ‘당신처럼’ 되는 것. / 그 박리의 다반사가 않아를 불안감에 빠뜨린다. / 불안이 않아에게서 않아를 박리한다. / 않아에게서 않아가 한없이 멀어진다.” (p.377)


책에 실린 글들은 전위적인가? 예전에는 나도 전위, 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고는 했다. 책 안에도 종종 전위, 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주로 사용하였던 ‘전위’가 前衛 라면, 시인의 ‘전위’는 Avant-garde 일텐데 이 둘은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나의 문득 떠올림이 틀리지 않다면 시인은 여전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저 ‘애록’이 달라진 것일 뿐일 터이다.


“문학은 본래적으로 솔직하지 않다. / 시는 언어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며 / 소설은 현실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다. //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사라지면 거짓말만 남으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p.22)


‘애록’이 달라져서 (어쩌면 달라지지 않아서) 세상만사를 짜증 섞인 시니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한 시인이지만, 문학을 향하여 혹은 시를 향하여 무언가를 얘기할 때는 형형하기 그지없다. 이 순간만큼은 시인의 ‘전위’가 나의 ‘전위’와 비교적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시인은 지금도 문학의 최전선에서 문학을 호위하는 자신의 임무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여태 전위적이다.


“어떻게 ‘나’를 쓰지요? / 않아는 또 대책도 없이 대답했다. / 나에게서 너를 어떻게 발겨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시다. / 너에게서 네가 떠나면 떠날수록 오히려 네가 잘 보이고 발견하기도 쉽다. /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란 이름을 얻는다. / 자신에게서 자신을 벗어나고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다.” (p.279)


문학에 대한 시에 대한 호의를 버리지 않는 것은 여태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환갑을 넘긴 시인이 또 다른 자아 ‘않아’의 입을 빌려 발설해야 할 만큼 조심스러운 발견이니, 역시 내게는 버거울 발견이다. 아무래도 글을 작성하고 나면 아내에게 물어봐야겠다. 너를 가르칠 당시의 김혜순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니? 어쩌면 아내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책을 더 잘 이해해보겠다고 작가에 대해 묻는 것은 옳지 ‘않아’...


“시를 쓴다는 것은 시 속에서 내가 죽을 것을 목격하는 것. / 시의 절정은 죽음의 순간, 겨자씨 같은 죽음만 남고 모두 부재하게 되는 그 순간. / 그리하여 내가 지금 한 편의 시를 써나간다는 것은 시를 쓰면서 반딧불 같은 죽음을 작은 숨으로 감싸안은 채 견딘다는 것.” (p.74)



김혜순 / 이피 그림 /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 문학동네 / 391쪽 / 2016 (2016)



ps. 김혜순 선생에 대해 묻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좀 차지만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쫌 귀여워, 하지만 시인이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용탁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